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리

끝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다시 걷게 만든다.

by 서녘

어쩌면 우리는 평생을

‘도착’을 향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어떤 상태

다다르기 위해,


혹은

‘이제 괜찮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지점을 향해.


그곳에 도달하면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삶이 안정되고,


마침내 내가 찾던 것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도 그랬다.


이 길의 끝 어딘가에는

분명히 그런 순간이 있을 거라고,


언젠가 마침표를 찍는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는다.


그런 자리는 생각보다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멈춤의 시간을 지나,
질문을 품고 걸음을 옮기고,


욕망과 진심 사이의 경계를 마주하고 나니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으로 계속 걸어가는 일.


이 말은 처음엔 어딘가 불안하게 들렸다.


목표 없는 여정, 끝을 모르는 길,

끝내 손에 쥐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불안은 점점 ‘평온’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으로

‘결과’가 아닌 ‘방향’을 따라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끝을 정해놓고 움직였다.


합격이라는 이름의 끝,

성취라는 이름의 끝,

인정이라는 이름의 끝.


그 끝이 나를 증명해줄 것이라 믿었고,

도착해야만 살아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도착을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걸음을 옮기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되는 시간을 살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걷는다.


비로소 내가 나를 따라잡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이상하리만큼

단단하고 잔잔한 위안이 된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건 실패가 아니다.
그건 내가 여전히 걸을 수 있다는 증거다.


길이 남아 있다는 뜻이고,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다.


무언가를 향한 갈망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자리에는 아마 ‘정답’도,

‘완성’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아주 작고 조용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멈추지 않고 걸어온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어떤 표식 같은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게 전부여도 좋다.


나는 여전히 갈 길을 모른다.


여전히 욕망과 진심의 경계를 오가고,

여전히 질문을 다 풀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있다.


나는 지금,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리를 향해 걷고 있다.


그 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내가 그곳을 만들어갈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길 위에서만 나는,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는 것.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