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건너다 남은 냄새

모든 게 사라졌다고 믿었지만, 마음엔 여전히 젖은 냄새가 남아 있었다.

by 서녘

기억은 종종 냄새로 되살아난다.


눈으로 본 것도, 귀로 들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코끝을 스치는 한 줄기 향이
오래전에 건너온 시간을 다시 불러낸다.


그건 비가 내리던 날의 공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옷깃에서 스쳐 지나간 향수일 수도 있다.


그 냄새 하나가 마음의 물결을 건드린다.


이미 건넜다고 믿었던 강이,
다시 한 번 잔잔히 출렁인다.


그날도 그랬다.


비가 내린 뒤의 거리,

젖은 아스팔트의 냄새가 묘하게 낯익었다.


발끝에서부터 무언가 스며들었다.


그건 분명 지금의 냄새였는데,

동시에 아주 오래전의 냄새이기도 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들이켰다.
기억 속의 그가 내 옆을 지나가는 듯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사라졌다고 믿었던 시간은

여전히 내 감각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그건 회상도, 미련도 아니었다.
단지 내 몸이 기억하는 냄새의 잔상이었다.


그건 말보다 더 솔직했고,
기억보다 더 오래 남았다.


사람은 기억을 잊을 수는 있어도,
감각을 완전히 지울 순 없다.


그건 너무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표면 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곳에
그 사람의 온도와 숨결이 스며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를 속인다.


다 잊었다고, 괜찮다고.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비가 내리고, 공기가 젖으면
그 냄새가 나를 다시 데려간다.


그때의 나로, 그때의 마음으로.


기억 속의 장면은 흐릿해졌지만
냄새는 늘 또렷하다.


그건 시간의 바깥에서 존재하는 감정 같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는 무언가.

나는 그걸 완전히 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 냄새는 내가 지나온 시간의 증거이자,
한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흔적이기도 하니까.


그걸 없애면 나도 함께 지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냄새를 따라 걷는다.
그 길의 끝이 다시 그에게 닿지 않더라도.


이제는 그 향이 그리움이 아니라,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기억의 숨결이 되었으니까.


어쩌면 삶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건너고, 또 건너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계절을, 마음을.


그러다 어느 날,
건너온 자리마다 남은 냄새를 하나씩 발견하는 일.


나는 그 냄새를 밟으며 살아간다.


완전히 마르지 않은 마음으로,
조금은 젖은 발끝으로.


그리고 그 모든 향이 결국 내 삶의 냄새가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물이 마른 자리엔 여전히 냄새가 남아 있다.


그건 슬픔의 냄새이자,
살아 있었다는 증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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