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 머무는 빛

빛은 늘 위에서 비추지만, 마음은 아래에서 피어난다.

by 서녘

햇빛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언제나 낮은 자리다.


풀잎의 끝, 물웅덩이의 표면,

그리고 고개를 숙인 사람의 어깨 위.


나는 그 사실을 오래 걸은 끝에야 알게 되었다.


한때 나는 빛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고 믿었다.


위로 향하는 것이 성장이고,

아래로 내려가는 건 퇴보라고 여겼다.


그래서 늘 스스로를 끌어올렸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더 단단해야 한다고,

더 멀리 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자꾸 메말랐다.


햇빛은 강했지만,

그 밝음 속에서는

오히려 나 자신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선명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흐릿했다.


어느 날,

비가 그친 오후에 길가에 앉아 있었다.


무심코 내려다본 발끝 근처에

햇빛 한 줄이 조용히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바닥,

거기에 빛이 스며드는 속도는 느렸다.


그 느림이 좋았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빛이 꼭 위에서만 오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때로는 낮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그림자 옆에서,

세상을 비추는 빛도 있다는 걸.


그 빛은 강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 머물렀다.


그건 번쩍임이 아니라,

천천히 번지는 온기였다.


나는 이제 조금 다른 속도로 걷는다.


예전엔 반짝임을 찾아 위를 올려다봤다면,

지금은 바닥을 본다.


내 그림자와 함께 걷는 법을 배우고,

그림자에도 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빛은 꼭 닿아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그저 머물 수 있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밝게 빛나는 대신,

조용히 스며드는 빛.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더 잘 어울린다.


낮은 곳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바람이 잦아드는 자리,

햇살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거기엔 지나간 사람들의 온기와

묵은 시간의 숨이 남아 있다.


나는 그 아래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나를 세운다.


세상이 너무 빠를 때,

나는 의도적으로 느려진다.


높이 올라가려는 대신,

낮게 앉아 세상의 결을 느낀다.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이제는 안다.

빛은 위에서 비추지만,

마음은 아래에서 자란다.


사람이 단단해지는 건

빛을 더 많이 받았을 때가 아니라,


그 빛이 사라진 뒤에도

자신의 온도로 버틸 수 있을 때다.


나는 오늘도 낮은 곳에 앉는다.


잠시 머물다 가는 빛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작게 반짝이는 나를 본다.


그게 삶이라면,

그건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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