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이름을 닮았다

세상 속에서 나를 다시 부르는 소리

by 서녘

요즘은 공기가 다르게 들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 안엔 늘 누군가의 온기가 섞여 있다.


창문을 열면,

먼 데서 흘러오는 목소리들이 섞여 공기를 채운다.


어디선가 웃는 소리,

버스 정류장에 울리는 안내 방송,

빵집에서 들려오는 반죽 기계의 리듬.


이 모든 게 뒤섞여

하나의 ‘소리 없는 합창’이 된다.


나는 그 속에 내 이름이 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


예전엔 이런 소리들이 너무 버거웠다.


다른 사람들의 웃음소리,

가벼운 대화,

내가 들어갈 틈이 없는 세상의 리듬.


그 모든 게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리듬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마치 공기처럼, 나를 감싸고 흘러간다.


오늘은 혼자 걸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단지 걸음과 숨이 닿는 속도를 맞추며.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꽃잎이 흔들릴 때마다

바람이 작은 말을 건넸다.


“너도 이 안에 있다.”

그 말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생각보다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아래의 모든 공기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공기가 내 뺨에 닿았다.


그 감촉이 부드러웠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불러주는 듯한 온도였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내 이름처럼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세상은 한 번도 나를 놓지 않았다는 걸.

다만 내가 너무 조용히 있었을 뿐이라는 걸.


오랫동안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기억되지도, 불리지도 않는 이름이라 믿었다.


그런데 공기는 언제나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모른 척한 것뿐이었다.

길을 걸으며 속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낮게 내뱉은 목소리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되돌아와 내 안에 닿았다.


내가 나를 부르고,

세상이 나를 따라 부르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창문을 닫지 않았다.


공기가 방 안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그 안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도 숨이 고르게 이어졌다.


그 호흡이 내 이름 같았다.


아무도 부르지 않아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공기가 이름을 닮았다는 건

아마 이런 뜻일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누군가의 부름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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