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눈동자에 내가 있었다

마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by 서녘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특별한 건 없었다.


익숙한 얼굴들 속 하나,

낯설지 않은 온도의 사람.


그런데 문득,

그 눈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오랜만에,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서 내가 있었다.


그건 거울처럼 비치는 ‘나’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나였다.


그게 이렇게 낯선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대화를 이어가며

나는 자꾸만 그 눈을 의식했다.


말보다 눈빛이 먼저 내 마음을 건드렸다.


오래 닫아두었던 문이

조용히 들썩였다.


그 사람이 웃을 때,

눈가에 작은 주름이 생겼다.


그 주름이 파도처럼 번지며

내 마음에 닿았다.


이상하게, 그 순간만은

내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목소리의 울림,

단어의 리듬,

숨이 닿는 간격 같은 것들에만 집중했다.


그건 오래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온도’를 듣는 일.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나는 다시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낯설지만, 어쩐지 따뜻했다.

그 온기가 내 하루의 마지막까지 따라왔다.


예전의 나는 사랑이란

어디서 시작되는지도 몰랐다.


그저 어느 날 무너지고,

다음 날 울고,

그다음 날 버티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무너지지 않았고,

버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마음이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그게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눈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직도 내 안엔 빛이 남아 있었구나.’

그동안 아무도 못 본 그 빛을

그 사람이 먼저 알아봤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 거울을 볼 때,

표정이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세상이 갑자기 밝아진 건 아니었지만,

공기가 내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내가 있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나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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