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이 말을 대신하던 날

닿음의 언어에 대하여

by 서녘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잔잔했다.

햇빛이 부드럽게 깔린 거리,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나는

손끝에 남은 온도를 계속 떠올렸다.


처음엔 우연이었다.


작은 인사,

가볍게 건네는 손짓,

그 모든 게 아무 뜻 없는 제스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끝이 닿는 순간,

짧은 숨이 안쪽으로 밀려들었다.


그건 따뜻함과 놀람이 동시에 스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의 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나는 그 차가움을 온기로 착각했다.

아니, 어쩌면 진짜로 그렇게 느꼈다.


피부 아래로 전해지는 체온보다

그 순간의 공기가 더 뜨거웠으니까.


그날 이후로,

말을 아끼게 되었다.


대신, 작은 동작들을 더 많이 신경 썼다.


눈을 마주치면 짧게 웃기,

잔을 건넬 때 손끝을 조금 더 천천히 두기,

헤어질 때 괜히 한 번 더 고개 돌리기.


말은 사라져도 손끝은 기억한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예전엔 모든 감정이 입에서 시작됐다.


확신이 없으면 아무 말이나 내뱉고,

그 말이 나를 설득하길 바랐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건 마음이고,

그 마음이 닿는 곳은 언제나 손끝이었다.


우리가 함께 걷던 골목,

저녁빛이 서서히 길을 덮었다.


그 사람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겹쳤다 떨어졌다.


걷는 속도도, 숨 쉬는 박자도 비슷했다.


나는 그걸 알아차리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걸었다.


그 사람 옆에서,

손끝이 말을 대신하도록 두었다.


헤어질 무렵,

그 사람이 살짝 웃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 한 번의 손짓이

모든 말보다 분명한 대답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끝이 계속 뜨거웠다.


그 온기를 털어내지 않았다.

그 온기 속에 말들이 숨어 있었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온도,

그게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언제나 손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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