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은 잊혀질수록 선명해진다
사라지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남아버리는 마음이 있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어떤 감정은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사라진다.
그때의 마음이 충분히 끝났기 때문에,
혹은 아주 후련했기 때문에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희미해진다.
반대로 어떤 감정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오래 남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미련이라고 부르고 싶다.
충분히 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었던 순간들,
전하지 못한 말들,
그때의 나를 조금 더 사랑하지 못했던 후회.
그런 것들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정리되지 않아
우연처럼, 혹은 무의식처럼
불쑥 떠오른다.
내가 원해서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다시 열리고 마는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조용하다.
어떤 날엔 갑자기 떠오르던 장면이 희미해지고,
어떤 날엔 목소리의 온도가 먼저 사라진다.
그 사람의 뒷모습만 남기도 하고,
그 시간이 가졌던 공기만 남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기억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형태로 남는다.
그게 ‘사라짐’이다.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지만
더 이상 나를 흔들지 않는 모양으로 바뀌는 것.
하지만 ‘남음’은 다르다.
남는 마음은 항상 조금 불안하고,
조금 불완전하고,
끝났는데 끝나지 않은 형태를 하고 있다.
마치 문장을 닫지 않은 채로
쉼표만 찍어두고 돌아온 느낌과 비슷하다.
쉼표를 찍는 건 내가었지만,
그 뒤를 끝내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내 안에서 무언가 덜 채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흔히 남아 있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진짜 사랑이었다면
이미 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완전한 형태로 남지 않는다.
끝난 사랑은, 그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멈춰 있다.
아프지만 단정하고,
따뜻하지만 멀어진 채로.
그러나 미련은 다르다.
미련은 계속 움직인다.
계속 떠오르고,
계속 되짚고,
계속 ‘다른 선택’을 상상한다.
미련은 사랑보다 오래 간다.
왜냐하면 미련은
사랑이 아니라 ‘부족’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만족감이 덜하니까
자꾸 자책하듯이 떠올리고,
우연한 계기로 떠올리고,
어떤 날엔 아무 이유 없이 떠올린다.
마치 잊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가 남은 것처럼
마음의 어디쯤에 조용히 눌러앉아 있다.
사라짐과 남음 사이의 거리는
사실 그렇게 멀지 않다.
사라질 건 저절로 사라지고,
남을 건 끝내 남는다.
내가 붙잡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의식보다 무의식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보다 감정이 오래 버틴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그 두 감정의 경계에 서 있다.
사라져야 하는 감정과
남아버린 감정의 틈 그 사이에서
조용히 흔들린 채로 서성이고 있다.
사라짐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애쓰고,
남음이 전부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으려
천천히, 아주 느리게 나를 들여다본다.
내가 붙잡지 않아도 사라지는 마음이 있다.
내가 놓치지 않아도 남아버리는 마음이 있다.
그 둘을 구분해내는 일은
어쩌면 인생의 많은 순간들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떤 마음은 잊혀질수록 선명해진다.
그건 미련이든 사랑이든,
사라짐과 남음 사이에서 나를 만든 감정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