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정하지 않은 사람의 변명
나는 한동안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로 걸어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무엇을 이루겠다는 분명한 목표도 없었다.
남들은 묻곤 했다.
“그래서 결국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어쩐지 불안정해 보였고,
스스로도 확신이 없다는 걸 들키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한동안은 억지로 방향을 만들어보려 했다.
이 길이 맞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이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방향을 분명히 정해놓을수록 마음이 더 좁아졌다.
틀릴까 봐 두려웠고,
벗어날까 봐 조심스러웠다.
정해진 길은 편해 보였지만,
동시에 숨이 막혔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방향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단지 이름 붙이지 않았던 걸까.
분명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붙잡고 있었다.
글을 쓰고,
생각을 기록하고,
괜히 바람 소리를 오래 듣고,
사소한 장면들을 눈에 담았다.
그 모든 것들이 당장은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점들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의 선이 되어 있었다.
정해진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돌아갈 수 있었고,
멈출 수 있었고,
다른 길로 새어 나갈 수도 있었다.
그 유연함이 나를 오래 걷게 했다.
방향이 분명한 사람들은 빠르다.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가고,
망설임 없이 선택한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늘 한 번 더 돌아봤고,
괜히 옆길로 빠졌고,
굳이 필요 없는 생각들을 오래 붙잡았다.
하지만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더 많이 보게 되었다.
급하게 달리지 않았기에
풍경을 보았고,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고,
내 안에서 흔들리는 작은 마음까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향이 없어서
나는 자주 헤맸지만,
그 헤맴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곳까지 닿았다.
정해진 길은 끝이 보인다.
언제쯤 도착할지,
어디쯤 와 있는지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름 없는 길은 다르다.
걷다 보면 방향이 바뀌고,
걷다 보면 목적이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걷는 그 시간이 좋아서 계속 걷는 사람.
그게 어쩌면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였는지도 모른다.
요즘도 나는 여전히
정확한 방향을 말하지 못한다.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어디에 닿고 싶은지 묻는다면
아마 또 한참을 망설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정해진 방향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
틀렸다고 생각되면 돌아서면 되고,
지루하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
그 자유가 나를 오래 걷게 했다.
길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
어쩌면 멀리 간다는 건
정확한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상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