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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dhope Nov 16. 2023

Yosemite 원정 등반 준비 D-2개월

클라이머들의 성지인 미국 요세미티로 등반 원정 떠나는 첫 번째 발걸음 3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원정 준비가 이제는 2달 차에 이르렀다.

첫 달에는 크랙 위주의 등반을 연습하였고, 인공외벽에서 꾸준히 근지구력 훈련을 실시하였다.



두 달 차부 터는 아래와 같이 훈련을 준비하였다.

인수봉 크랙 등반 & 캠 설치 연습 / 주 1~2회
인공 외벽에서 등반 / 주 2회
달리기 / 주 2회
요가 / 주 2~3회



5월 달 목표는 체중 감량 + 등반 실력 향상하는 데 우선시했다. 


삼성산에서 짧은 크랙을 등반하며 캠 설치하는 연습을 하였으니, 이제는 실전에 나설 때였다.

다른 이들보다 훈련 진도가 꽤나 빠른 편이었는데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등반을 많이 다닌 경험과 기초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이밍은 4살 때부터 부모님에 의해 시작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때부터는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 꾸준히 나가 입상을 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등반 햇수로 따지자면 꽤 고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월등하게 등반 실력자인 부모님과 오빠가 있었기에 등반 다니면서 선등을 도전해볼 일이 드물었다. 간간히 기회가 왔었지만, 쉬운 단피치만 선등 서볼 뿐, 하나의 코스를 완전히 소화해 낸 적은 없었다. 딱히 선등을 원한 것도 아니었고, 선등에 대한 두려움도 큰 편이라 만년 후등자였는데, 요세미티를 준비하다 보니 선등을 필수로 연습해야만 했다.


'굳이 선등을 연습할 필요가 있을까? 난 어차피 요세미티에 가서도 후등으로 등반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께 '어차피 요세미티에서 선등을 설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버지뿐인데, 굳이 제가 선등을 연습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다. 무책임한 의미로 물어본 것은 아니었고, 그저 정말 궁금했다. 내가 아무리 남은 2개월 동안 선등을 연습한다고 한들, 요세미티에서 쉬운 코스 하나조차 선등을 서지 못할 텐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소망아. 등반을 다니다보면 선등자가 등반 중에 추락해 다칠 수도 있지 않니? 요세미티에서도 마찬가지야. 만일, 내가 선등을 서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선등을 못 서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나 대신 누군가 선등을 서줘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탈출을 이끌어 줄 사람도 필요할 테고. 또 다른 이유로는 네가 선등을 서는 연습을 하다보면, 장비 설치 및 등반 실력도 빠르게 늘 수 있어. 그게 빠른 방법이지.'

나는 곧바로 아버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나로서는 원정을 준비하면서 '나만 잘하면 돼.'라는 생각인데, 여러 경우의 수를 대비해 준비하는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태 원정 준비하며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크게 한방 맞은 기분이었달까.






2023년 4월 24일. 

이렇게 나의 첫 선등이 시작되었다.

첫 선등 코스로는 인수봉 취나드 B. 인수봉의 대표 코스이면서, 루트의 난이도가 쉬운 편이었다.

그러나 확보물 설치하기 까다로운 구간도 있었기에 신중을 가하면서 통과해야 하는 코스.


사실, 나의 첫 선등은 정신없이 시작되었다.

오빠의 쉬는 날에 맞추어 아버지, 나 셋이서 인수봉에 등반을 하러 간 날이었다.

어떠한 코스를 등반할지도 모른 채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도착한 곳은 인수봉 취나드 B 코스였다.

평일임에도 점차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지 등반을 온 팀들이 몇몇 있었다. 우리와 등반 루트가 겹칠 수도 있어 바위 앞에 도착하자마자 후다닥 빠른 속도로 등반 준비를 했다.


하네스와 쵸크통을 착용하고 마지막으로 헬멧을 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내 하네스 장비 고리에 캠과 퀵드로우를 걸어주었다. '뭐지..?' 싶었는데, 등반 준비를 모두 마친 날 보더니 '소망아, 이쪽으로 올라가면 돼. 사람들 오니까 우선 빨리 올라가자!'라고 하더니 얼떨결에 내가 선등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엥.. 이게 아닌데.. 뭐지? 일단, 다른 팀들이랑 코스가 겹치면 힘드니까 빨리 올라가자!'라는 생각뿐이었다.


오아시스로 향하는 1 피치 슬랩은 조금 쫄렸지만 바위에 질감이 잘 느껴져 생각보다 가뿐하게 올라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느꼈는데, 언제까지 내가 선등을 서는 거지 싶었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데..

후등으로 올라오는 아버지와 오빠는 매우 빠른 속도로 연등하며 올라왔다. 아버지는 올라오자마자, 오아시스 슬랩을 주춤하지 않고 생각보다 빠르게, 잘 올라왔다며 칭찬해 주셨다. 그러더니 다음 피치 루트를 알려주시0.며 내게 회수한 캠과 퀵드로우 장비를 건넸다. 코스를 살펴보니 도전해 볼만하다 싶어 나도 장비를 받아 다음 피치 선등을 준비했다.


슬랩과 페이스로 이루어진 2 피치에 언더 크랙을 잡으며 침착하게 등반을 시작했다. 아직 캠 설치는 미숙했지만, 하나하나 침착하게 등반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남은 피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아버지와 오빠의 격려 속에 등반을 하는 데, 4 피치 침니는 쉬우면서도 추락 시 크게 다칠 위험이 있어 많이 긴장되었다.

등줄기에 옅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며 등반을 이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4 피치 확보지점에 도착했다.



5 피치는 양쪽 핸드 재밍이 되는 쉬운 구간이었는데, 삼성산에서 열심히 배운 재밍을 연습하기 딱 좋았다.

재밍을 할 줄 몰랐다면, 레이백으로 안간힘을 쓰며 올라갔을 텐데! 재밍을 할 수 있게 되니 손과 발을 사용하는 게 꽤나 편해졌다. 그렇게 올라오다 보니 얼떨결에 취나드 B, 선등 첫 도전만에 자유등반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어떻게 올라왔나 싶다가도 남 모를 굉장한 뿌듯함과 성취감에 너무 기뻤다.

이렇게 나의 첫 선등 도전은 취나드 B였다.





2023년 5월 1일.

그렇게 다음 프로젝트 선등 코스는 취나드 A였다.


취나드 A의 가장 어려운 부분 직전까지는 수월하게 등반을 했는데, 3 피치부터는 고생하기 시작했다.

재밍을 배웠지만, 재밍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첫 번째 시도에 추락을 했다.

추락한 이유는 재밍을 해야하는 크랙 코스를 레이백으로 올라가다보니, 내 모든 힘이 소진되었고 캠을 설치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하게 추락을 했더니, 온몸이 경직되어 선등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도저히 남은 등반을 이어 갈 자신도, 체력도 없어 오빠와 바통터치를 했다.



2023년 5월 8일.

다시 일주일 뒤 도전하는 취나드 A

3피치는 레이백이 아닌, 재밍으로 등반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 번 더 방법을 바꾸어 도전했다. 그러나, 뜻대로 재밍이 쉽지 않았고 크럭스가 끝나가는 지점에서 힘이 다 빠진 나는 텐션을 외쳤다.

그래도 끝까지 무브를 풀고 나니 조금 자신감이 생겼는데, 당일에 다시 도전하기에는 힘이 많이 들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심우길 선등을 서는 오빠를 따라 후등으로 등반하며 마무리했다.

심우길


2023년 5월 15일. 

세 번째 취나드 A 자유등반 선등에 도전했다.

세 번째라 이제는 코스에 필요한 캠도 알아서 챙기고, 모든 등반이 꽤나 수월해졌다. 나를 힘들게 했던 3피치는 이번에도 수월하지는 않았으나, 40분 동안 고군분투한 끝에 자유등반으로 성공했다.

어찌나 기쁘던지. 엄청난 성취감과 함께 무사히 등반을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스포츠 클라이밍의 어려운 루트를 끝낼 때도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데, 이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과 느낌들이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오빠의 응원 속에 무사히 등반을 마칠 수 있어 감사했다. '이래서 멀티를 하는 건가..!'.

하산을 하고 나서 오빠는 벚길에 도전했고, 나는 그 뒤를 이어 등반했다.

취나드 A
취나드 A
취나드 A 선등 성공 후 하강
벚길






이후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시간이 되는 날마다 가족과 함께 인수봉으로 등반하러 다녔다. 일주일에 1~2번씩은 꼭 등반을 하고, 선등을 연습했다.









2023년 5월 22일.

 나의 세 번째 선등 코스는 하늘길로 택했다.

아버지는 순차적으로 코스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주로 크랙으로 이루어진 코스들에서 훈련을 시키셨다.

힘들 것으로 예상했던 1, 2 피치의 크랙 코스는 생각보다 무난하게 지나왔다. 물론,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올라왔지만. 그러나 최대의 난 코스는 6 피치부터 시작되는 슬랩 구간이었다. 이곳에서 엄청나게 오토바이를 타며, 등반을 하는 데 한 순간의 성급함으로 7 피치 중반부 크럭스에서 추락했다.

몸이 뒤집어지며 바위를 데굴데굴 굴러 3~4m가량 추락을 했는데, 눈 떠보니 나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멘탈이 흔들려, 등반을 마저 끝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아버지와 오빠가 실망할 듯하여 다시 용기를 내어 등반을 진행하였다. 다행히도, 8 피치 끝까지 선등을 하였으나 안타깝게 추락하였으니 자유등반에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굉장히 의미 있는 등반이었다.

하늘길



하늘길 등반을 마치고 나서 오빠가 선등을 서는 남측슬랩을 등반했다. 슬랩은 참 무섭지만, 그 아찔함과 떨림이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두 개의 코스를 마치고 하강하는데, 체력이 그새 늘었는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하산하면서 다리가 매우 후들거렸다.

남측 슬랩



27년 동안 20년 가까이 등반하며 이번에 처음으로 도전한 선등은

얼떨결에 등반을 시작해 얼떨결에 마무리하면서 큰 두려움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선등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으며 두 번째 도전부터는 나에게 많은 무서움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요세미티에서 등반을 멋지게 하고 싶었기에 내 한계에 부딪혀가며 선등을 계속해서 도전해 나갔다.

선등을 설 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요세미티는 인수봉의 10배 이상의 길이에 달하는 코스들로 이루어져 있어 요세미티가 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이때부터는 '내가 요세미티에서 등반을 잘 끝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과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래도 요즘처럼 이렇게 등반을 즐겁게 등반해 본 날들도 오랜만이었다.

자연에 나와 콧바람도 쐬면서 내 모든 신경을 발끝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등반하니 짜릿했다.

무섭기만 했던 선등이 엄청난 성취감으로 보상되었고, '나도 등반을 못하지는 않는구나'싶은 생각에 자신감도 생겨났다.






주로 등반 연습은 인수봉에서 했지만, 인공 외벽도 갈 수 있을 때마다 가서 등반을 했다.


한 달 정도 꾸준히 등반하다 보니 외벽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 코스를 완등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이제는 5.12a의 루트를 시도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한참 부족하지만, 그래도 '잘 준비하고 있구나'싶으면서도 뿌듯했다.

나 혼자라면 열심히 못했을 텐데, 가족들이 함께 도와주니 나도 힘을 내어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5월 한 달은 등반으로 꽉꽉 채워 보낸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내 체중감량에는 정체기가 왔는지, 5월 한 달 동안 1kg만 빠졌다.

근육량이 많이 늘었을 거라고 합리화하며 알차면서도 뿌듯한 한 달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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