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아이러니, 파괴의 순환

'보호'의 총알은 결국 '자멸'로 돌아온다.

by Binz

C. 더글라스 러미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와 만화 『진격의 거인』이 말하는 성장의 아이러니와 순환적 담론

좌: C. 더글러스 러미스 저자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우: 이사야마 하지메 작가 『진격의 거인』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발전과 성장을 요구한다. GDP 상승, 기술 발전, 자원 확보 등의 성장만이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더글라스 러미스 저자의『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이하 경제성장론) 라는 책은 이러한 성장 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한다. 성장의 끝없는 추구가 반드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메시지는 만화『진격의 거인』과도 닮아 있다. 두 작품 모두 욕망과 생존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집착이 어떻게 파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1. 진격의 거인과 경제성장의 본질적 딜레마


경제성장론은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사회가 붕괴할 것이라는 공포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공포는 사회적 불안과 끝없는 경쟁을 낳으며, 더 많은 자원과 부의 축적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강박이 부를 더욱 집중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이 책의 핵심 논지다.


진격의 거인에서도 이러한 성장과 생존의 딜레마는 명확히 드러난다. 벽 안의 에르디아인들은 마레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더 강해져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에렌 예거는 이 믿음을 받아들여 세계를 파괴하고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선택을 한다. 그는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어. 싸워라."는 극단적 파괴논리에 갇혀 있었고, 결국 지구를 짓밟는 진군(럼블링)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는 마치 현대 사회가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착취하는 행위와도 닮아 있다.

못 이기면 죽는다. 이기면 산다
- 미카사 아커만 -


2. 성장이 가져온 비극: 발전인가, 파괴인가?


경제성장론에서는 성장의 추구가 단순히 부를 창출하는 것을 넘어서 환경적, 사회적 파괴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성장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며, 이로 인해 환경은 황폐화되고 부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이는 진격의 거인에서도 에르디아인과 마레인 간의 갈등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에르디아인들은 거인의 힘을 사용해 자신들의 생존과 성장을 도모했지만, 이 힘은 지속적인 전쟁과 증오의 순환을 불러왔다. 결국 성장과 발전의 결과는 풍요가 아니라 끊임없는 보복과 폭력으로 이어졌고, 그 끝은 세계적인 파괴였다. 에렌은 성장을 통해 마레를 넘어서고자 했지만, 그의 선택은 평화가 아니라 더 큰 비극을 초래했다. 이는 현실에서 우리가 직면한 환경 위기와 사회적 불안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과 발전을 외치며 자원을 무분별하게 소비할 때, 그 끝은 파멸일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3. 멈출 수 없는 욕망과 순환의 종말


진격의 거인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욕망과 증오의 순환이 깨지지 않으면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에렌과 마레의 지도자들은 모두 상대방을 제거함으로써 완전한 평화와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러한 믿음은 오히려 더 큰 폭력의 순환으로 이어졌다. 이는 경제성장론에서 다루는 성장이라는 무한 경쟁의 함정과도 유사하다.


책에서는 경제 성장을 멈추는 것이 불안과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성장의 강박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불행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진격의 거인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든 갈등은 자원과 힘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고, 그 집착이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4. 새로운 길은 가능한가?


경제성장론은 성장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공동체적 가치와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에서는 이러한 해답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에렌은 결국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갔고, 그 결과는 파괴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카사, 아르민 같은 주인공과 가까운 주변 인물들의 선택이다. 그들은 에렌의 극단적인 파괴 논리를 거부하고, 이해와 공존을 통해 순환을 끊으려는 길을 선택했다. 이는 현실에서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상징한다. 경제성장론이 제안하는 성장이 아닌 다른 가치에 기반한 삶은 진격의 거인이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인간성의 회복과도 연결될 수 있다.


5. 성장을 넘어서 진정한 ‘풍요’로


진격의 거인과 경제성장론이 궁극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같다. 성장은 도구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장을 무조건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그 끝은 파멸과 불행일 수밖에 없다. 진격의 거인에서 에렌은 이 교훈을 몸소 보여주었고, 경제성장론은 이 교훈을 현대 사회에 적용해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함을 일깨운다.


결국, 진정한 '풍요’란 성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욕망의 순환을 멈추고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돌아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금의 세계는 더 많은 성장과 발전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해와 화합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아닌 지속 가능성과 상호 협력에서 나오는 평화로움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풍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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