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작은 통로가 연대의 통로가 되어

영화 여름정원 <The Friends> 1994 / 2024(Re)

by Binz

죽음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진리다. 그리고 그 죽음은 언제나 무겁고, 아프고, 두려운 것으로 우리 곁에 자리해왔다.


하지만 1994년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The Friends〉(여름정원) 은 죽음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노인과 아이의 연대, 그리고 여름이라는 계절을 통해 죽음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어쩌면 산뜻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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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 명의 아이들 ― 키야마(사카타 나오키), 카와베(오 다이키), 야마시타(마키노 겐이치) ― 와 홀로 사는 노인 덴포(미쿠니 렌타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장례식에서 죽음을 처음 의식한 아이들은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품고,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의 집을 기웃거리며 그의 삶과 죽음을 지켜본다.

노인의 집은 높은 담장과 무성한 풀들로 가려져 있었다. 아이들은 그 틈새를 통해 안쪽을 들여다보며, 낯설고도 두려운 세계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호기심은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친근감으로 바뀌며, 아이들은 점차 노인의 일상에 스며든다. 무더운 여름날 수박을 함께 먹고, 허물어진 집을 손보며 벽을 칠하고, 마당에 코스모스를 심는다. 그렇게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 노인이 오래 품어온 전쟁의 상처와 외로움도 서서히 드러난다.


90년대 일본 사회는 전후(戰後)의 기억과 죄책감이 여전히 남아 있던 시기였다. 굳게 닫힌 담장과 고립된 노인의 삶은 그 시대의 그림자를 닮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방문은 그 담장을 허물고, 오랫동안 봉인된 고통을 치유하는 계기가 된다.


소마이 신지는 이 과정을 통해 죽음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여름 햇살, 보여지고 들려지는 여름의 언어들, 느릿한 카메라 워킹 속에서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순환됨을 보여준다. 노인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가 겹쳐지는 순간,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만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다.


영화 <여름정원>은 결국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그 끝에 남는 것은 슬픔과 상실감이 아닌 연대와 치유다. 아이들은 노인을 통해 결국 죽음을 성찰하며 여름같이 눈부신 삶을 배운다. 이는 안희연의 시 <슈톨렌>과도 닮아 있다.


펑펑 울고 난 뒤엔 빵을 잘라 먹으면 되는 것
슬픔의 양에 비하면 빵은 아직 충분하다는 것

너의 입가엔 언제나 설탕이 묻어 있다
아닌 척 시치미를 떼도 내게는 눈물 자국이 보인다
물크러진 시간은 잼으로 만들면 된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기억을 졸이면 얼마든 달콤해질 수 있다

안희연「슈톨렌」中 (* 슈톨렌 -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조금씩 잘라 먹는 독일의 전통 빵)


시 속에서 죽음은 단순히 견딜 수 없는 상실이 아니라, “조각조각 잘라 먹는 기다림의 빵”으로 다시 살아가는 자들의 몫이 된다. 영화가 여름 햇살과 정원의 꽃과 나비, 아이들의 순수함으로 죽음을 환기시켰다면, 시는 설탕 묻은 빵 조각으로 죽음을 이야기한다. 두 작품 모두 죽음을 결코 가볍게는 말하지 않지만, 남겨진 자들이 다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언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서로 울림을 주고받는다.


오늘날처럼 갈수록 개인화되고 이웃과의 연결이 약해지는 사회에서, 영화와 시는 우리에게 작은 질문을 남긴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 질문 너머에 결국은 이렇게 되묻는다.


허물어진 담장의 틈이, 잘라낸 빵 조각이, 우리를 다시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통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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