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사건』- 한강 『소년이 온다』가 마주하는 접경지대
202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작가의 『사건』과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이 두 작품은 모두 ‘사건 이후’에 대해 말한다. 피할 수 없었던 고통의 순간보다 더 길고 질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남아 있는 상처에 대해. 그리고 그 상처는 단지 개인의 고통에 머물지 않는다. 제도, 사회, 국가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폭력과 침묵, 그로 인해 부서진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공간—나는 그것을 ‘문학적 폐허’라 부르고 싶다.
에르노의 『사건』은 자신의 낙태 경험을 단지 개인의 사적인 고통으로 그리지 않는다. 1960년대 프랑스 사회 안에서 그녀의 ‘몸’이 법과 의료, 그리고 사회적 시선 속에서 존엄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뤄졌는지, 그 몸을 둘러싼 제도적 폭력이 어떻게 개인을 해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라는 역사적 실재 속에서 국가가 국민을 억압하는 기이한 풍경을 포착한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진 죄책감, 반복되는 기억, 그리고 잊히지 않는 목소리들. 이 두 작품은 모두 과거를 그리되, 그 고통이 현재에도 계속된다는 점에서 ‘기억’이 아닌 ‘실재’를 말한다.
나는 이 두 작품을 마주하면서, 물리적으로 일어난 ‘실제’와 사건 이후에 남는 ‘기억’으로서의 ‘실재’ 사이의 간극에서 첨예하게 벌어지는 고통과 트라우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간극은 때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온다. 결국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경험한 자-경험하지 못한(또는 않은)자 사이는 가깝고도 먼 거리다.
하지만, 문학은 이 불가능한 거리를 견디게 만든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 고통의 언저리에 다가서게 하고, 불편함을 직시하게 하며, 낯선 타인의 고통을 타인의 것이 아닌 듯 느끼게 만든다. 독자는 두 작품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때로는 불쾌감마저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감정의 밀도 속에서, 우리는 침묵 속에 남겨진 몸의 존엄, 파괴 속에서도 이어지는 공동체적 기억과 애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하려는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 이 주제를 놓고 한 수업에서 다른 조의 토론 발표를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접한 적이 있다.
“왜 이 두 작가는 반복적으로 ‘아픔’과 ‘상실’을 문학의 주제로 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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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폐허를 직시하고 기록할 때, 정말로 ‘치유’는 가능한가?”
이 질문은 나의 사유를 한층 더 밀도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에르노와 한강의 작품을 떠올릴 때, 그들이 ‘상처’ 자체보다는 상처를 마주하는 인간의 시간과 태도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단순히 고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흔적을 붙잡고 기억하려는 저항의 몸짓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학은 어디까지 이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 그리고 문학이 남긴 ‘폐허’는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데 그칠까, 아니면 인간성을 회복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문학이 쥔 붓을 넘어 뻗어나가는 물감은 과연 세계 모든 곳, 모든 인간 조건에까지 색칠될 수 있을까? 혹은 문학 역시 선진국의 문화와 언어, 제도 안에 갇힌 특권적 감각의 산물로 머무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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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답을 다하지 못한 채 이 질문들 앞에 서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학이란 상처 입은 존재들이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는 방식을 끊임없이 묻는(또는 되묻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라면, 우리는 문학 속 폐허를 마주하며 그 속에서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