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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Oct 24. 2021

뉴 노멀 시대

"저 재택 하겠습니다"

업종에 따라 카페에 앉아서 랩톱으로 업무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직종이 있다. 주 업무가 보고서 작성, 이메일 작성, 소프트웨어 개발, 화상회의를 하는 일이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모바일로도 작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집이나 카페에서 랩톱으로 일한다면 과연 그들은 사무실 직원인가 아니면 프리랜서인가? 직원과 프리랜서의 차이는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 안에 있느냐 아니면 다른 공간에서 따로 일하느냐의 차이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업무를 한다는 측면에서 같을지라도 같은 시공간에 있지 않으면 조직에 대한 귀속성이 약해지고, 같은 공간에 있을 때보다 업무 전달이 늦어져 일 처리가 지연되기도 한다. 재택근무를 하면 자연스럽게 회사 조직의 재구성과 해체가 이루어진다. - < 공간의 미래 , 유현준 (지은이) > 중에서

"자, 이제부터 순환 재택 시행합니다"

 작년 3월이었다. 코로나라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이미 세상을 뒤 흔들고 있었다.

그전까지 "일은 사무실에서"라는 생각을 갖고 업무를 해오던 우리들에게, 회사에서는 N개 조로 나누어 재택근무를 연습하고 준비하라는 예비명령을 내렸다. "종화야, 너 이번에 대상이야" "아니 진짜 바빠 죽겠는데, 집에서 일이 되겠냐고요...." "어쩌겠냐, 까라면 까는 거지"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내 말인즉, 바쁜데 왜 이렇게 불필요한 마루타를 시키냐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조차도 이렇게 뉴 노멀 시대가 오래갈 줄 모르고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3일을 재택근무를 하며, 느꼈던 점은  "불편함&신세계" 이였다. 불편함에 대한 나의 그 당시 생각은 다음과 같다.

상시 울리는 메신저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조금 더 신경 써서 응대를 해야 했다.

사람 얼굴을 보고 물어보면 바로 나올 것을, 문서화하고 온라인 미팅할 시간을 갖는 예비 동작이 많아져 불편했다.

사외 망을 통한 회사 업무 접속용 가상 PC 사양이 너무 낮아 개발업무 수행이 불가하였다.

아무래도 도입 초기다 보니, 불편한 것들은 위의 사항들이 매우 불편했던 거 같다. 반대로, 신세계라고 느꼈던 경험도 존재했다.

출퇴근 시간의 아까움이 사라졌다.

점심 먹고 내가 좋아하는 카메라를 갖고 산책을 하러 나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피곤할 때 이불 펴놓고 잠을 자도 내 일만 잘해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하여 당시 재택이 가능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미리 재택근무를 수행하기 위한 트레이닝을 회사에서 미리 시켜두게 되었다.


"재택 시켜 주세요"

 작년 4월에서 5월까지는 자세한 사유를 알 수 없으나 코로나 감염자가 급감하여 정부에서는 방역 성과에 대한 포장에 열을 올린 시기였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재택 시켜 주세요"라는 말은 사실상 금기어에 속했다.

상황은 급변했다. 5월 이후 이태원 발, 그리고 8월 보수단체 발 코로나 판데믹의 시작으로 인해 사내 게시판에서도 재택 허용에 대한 여론이 폭주했다. 그러나, 회사는 아직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 '비용'을 이유로 업무 접속용 가상 PC에 대한 연결망도 확충이 안된 상태였고, '이러다 말겠지' 하는 안일한 눈높이로 코로나 펜데믹을 바라보는 경영진들의 입김도 셌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점은 12월, 코로나 확진자 수가 000명이 아닌 0000명으로 네 자리 이상을 기록하며 회사와 경영진도 결국 적극적으로 직원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 오늘부터 순환 재택을 시작합니다. A, B, C조로 각각 나누어 3일씩 연달아 재택을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재택을 할 여건이 되는 사람들부터 재택근무에 돌입했고, 우리는 '뉴 노멀'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재택이 좋아 출근이 좋아?"

이렇게 약 1년 정도를 순환 재택을 수행하며 느꼈던 나의 경험으로, 나에게 재택이 좋은지 출근이 좋은지를 물어본다면 '출근이 좋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개인의 호불호, 직장부터 집까지의 출퇴근 거리의 변수 등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적어도 출근이 더 선호되는 업무 방식이다. 그 이유로는 아래와 같다.

회의시간이 보통 오후인데, 아이 하원 시간과 겹쳐 아이들 노는 오디오와 나의 업무 하는 오디오가 혼재되어 상당히 독특한 음색을 내곤 했다.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카페에서 4시간 이상 죽치고 앉아있기도 어렵고, 집도 사실상 재택근무를 편히 하기 위한 공간이 없다.

아무리 가상 업무공간의 성능이 올라가도, 결국 회사에 가서 직접 PC를 이용해 업무 하는 것이 속도적인 측면에서 월등히 좋았다.

아울러, 나는 '개발' 직무로서 위에 유현준 교수가 적어둔 항목대로 딱히 장소의 구애를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몰입해서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된 회사라는 곳이 참 좋았다. 그래서 나는 저번 달부터 '순환 재택근무 취소' 신청을 내고 온전히 출근하여 업무를 처리 중에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어 거대 사옥도 사라지고 같은 시공간을 나누는 출근 문화도 없어진다면 회사는 거대한 프리랜서의 집단과 같아질 것이다. 이러한 흩어진 개인들을 묶을 수 있는 방법은 기업 철학밖에 남지 않는다. 재택근무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기업 철학이 없는 기업은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다. - < 공간의 미래 , 유현준 (지은이) > 중에서

"팀 케미도 뉴 노멀"

 예전 '라테는' 아담이라는 사이버 가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 사람이 사실 누구였을지 궁금하다. 분명 목소리를 제공하여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존재하였을 텐데..

어쨌든, 코로나는 팀 케미도 뉴 노멀로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같이 식사하러 가고, 커피도 한잔하며 '같은 팀'이라는 팀워크를 만남을 통해 가꾸어 나갔다면, 이제는 상대방이 '무엇'을 어려워하고, 고민하는지 물어보지 않고, 그 사람이 답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재택'근무 가 노멀인 세상에 살고 있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않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보면 '아 어려움이 있나 보다.' '로또 되었나? 기분이 좋은가 부네?'등 유추하여 업무 하는데 조금이나마 기분을 봐 가며 일을 할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되었고, 결속력이 코로나 이전부터 강하지 않았던 동료라면, 더욱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출근하는 사람 또한 큰 틀에서는 회사에서 회식이나 대면회의 등을 금지할 수밖에 없게 되어 '결과'만 잘 납품하면 이상이 없는 그런 사회로 점차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이러한 것이 '개인주의'의 가속화의 영향이 더 큰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가 '기름을 끼얹은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작은 팀들부터, 조직의 '팀 케미'는 결속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낼 것이다."

 나는 결국 재택을 앞으로 하던 안 하든 간에, 팀 케미로 커버를 하던 전체의 업무 결과가 개개인 별로 세분화되어 쪼개져 평가를 하고, 그것들이 모여 팀의 평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이 절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이 조직의 눈치를 덜 보고, 스스로의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결과물을 팀에 잘 녹일 수 있도록 노력을 먼저 해야 하고, 그 결과물은 집단이 주도한 TopDown방식보다 더 우월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재택근무 등의 예를 통해 얻게 될 개개인들의 자유를 남용하여 본인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고 하면, 그것들에 대한 평가는 더욱더 엄격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사회는 적응해갈 것이고, 그 안에 속한 우리도 적응하며 즐겁게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과 적응하며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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