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Oct 23. 2021

나만 겪고 있지 않을 이야기

시간은 그 차이를 알려주었다. 스타트라인부터 앞선 놈들은 해가 거듭할수록 여유가 생겼고 능력과 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 반면 이제 경만은 탄약이 고갈되어 곧 맨몸으로 돌진해야 하는 참호 속 병사가 된 심정이었다. 아무리 벌어도 써야 할 돈은 늘어만 가는 반면 자신의 체력은 갈수록 깎여나가는 게 느껴졌다. 유일한 장점이던 성실함과 친절함의 바탕은 체력이었고, 나이가 들어가며 딸리는 체력은 성실함과 친절함을 무능력과 비굴함으로 변화시켰다. 체력은 정신력조차 지배하게 되어 멘탈이 털리는 날이 늘어났고, 곧 대표와 동료들의 무시로 돌아왔다. - <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 중에서

"주어진 것을 잘하고 싶었던 나"

 초중고 시절부터, 무엇하나 특출 날 것이 없던 나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 언제나 중간/기말고사 이후엔 나의 시험지를 자신 없게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내밀며, "ㅇㅇㅇ야, 이거 답 4번아니야?" "아닌데? 3번이야" "하 나는 도대체 왜 이러지.." 하며 자괴감을 갖던 학생이었다. 그 답이 내가 선택했던 4번이던 아니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부 잘하는'아이가 3번이라면 그 당시는 3번인 것이었다.

 "주어진 것을 잘해보고 싶었다." 그것인 것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잘했어야 할 공부는 나와는 인연이 정말 없었고, 문과를 다니는 친구 한 테마저도 "너는 나보다도 수리영역을 못 푸니"라는 조롱 섞인 말까지 들어가며 학창 시절을 그저 버텨내는데 급급했던 거 같다.

 대학을 와서도 전혀 나아진 것은 없었다. "비슷한 또래들끼리 경쟁이면, 내가 잘해!"라는 망상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보기 좋게 1학년 때부터 어긋났다. 나름 공부를 하겠다고 그 안에서 인기 많았던 소모임에 무려 '면접'을 통과해 들어갔지만,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공짜로 소스코드를 구걸" 하기 위해 들어갔던 나를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1, 2학년 때 전공인 컴퓨터 관련 과목이 없을 때에는 잘 나오던 점수가, 3, 4학년 때 전공과목 위주로 개편되자 처참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컴퓨터랑은 맞지 않아' 혹은 '쟤는 부모가 돈도 많아서 노트북도 사주고 하니까 잘하는 거겠지' 라며 스스로 도망가기 바빴던 거 같다. 그럼에도 그 당시, 나는 "주어진 것은 잘해보고 싶었다."



"좋아하려고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지 않나?"

 대학 4년을 그렇게, 도망치듯 겨우 버틸 수 있었다. 4학년 말미 졸업작품이라는 것을 하는데, 그때에도 내 친한 친구에게 묻어서 겨우 졸업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도피성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가게 되었고, 시간은 유수와도 흘러 전역을 앞둔 2010년 3월을 맞이했다. "정보처리 기사 시험을 봤단다 종화야, 너도 할 수 있어" 친한 동기의 카톡이었다. "그거 나도 할 수 있을까?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데?" "응, 야, 나도"(광고 아님)

사실 큰 힘이 되었다.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퇴근 후 진지하게 컴퓨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게 5과목 중 1과목 , 컴퓨터 과학 과목을 40점 턱걸이로 겨우 합격하며 기사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내가 향한 공부는 Java 프로그래밍 공부였다. "10번은 공부해보세요, 그러도고 안되면 포기하셔도 됩니다" 자바의 정석 네이버 카페 남궁성 대표의 말을 새기며, 공부하다 보니, 3번 4번 정도 외우니까 머릿속에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보충하며 운이 좋게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고, "IT를 좋아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어디로 가야할 지 누군가 나침반이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했던 젊은 시절

"밑천은 나게 되어있다."

 입사하고 나의 조직에서의 생존 전략은 Fast&Perfect 전략이었다. 장교 시절 배웠던 상사 모시는 법과, 사람을 다뤄봤던 이력은 나에게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딱히 더 성장시킬만한 포인트가 없이 완성형이었다고 생각하고, 다만 위에서 서술했던 '내가 노력하지 않아 약했던 주특기인 IT 개발 실력'을 어떻게 높일까를 매우 고민하며 얻어낸 전략이었다. "일이 주어지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완벽에 가깝게 업무를 처리한다. 타인과의 격차를 최대한 벌려 긍정적 피드백을 받고, 또 다른 업무를 받아 처리하며 점점 작은 눈사람이 큰 눈사람이 되듯 인정을 받는다. "

 10년간은 무탈하게 이러한 일들을 해 낸 거 같다. 나에게 기대하는 것 대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았다. 충분히 좋은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 프로젝트 팀장을 맡으면서 "내가 여태껏 일구어온 평판들이, 팀장이 되어서도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 혼자 밤을 새워서 끝낼 수 있는 일을, 누군가에게 시켜 그 사람 또한 성장시켜야 하며 조직원으로서의 가치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팀원을 납득시켜가며 최대한의 목표 근사치에 다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Fast&Perfect"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통용될 수 없는 나만의 이상이었던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 전략이 먹히려면 나는 실무자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위에 단락에서 언급했듯, "좋아하려고 노력은 했으나, 결국 생존을 위한 몸부림용"으로 나의 본업인 IT를 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점점 Fast&Perfect 전략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통용이 될 수 없는 전략이 되어 가게 된 것이었다.


"점점 감정 회복의 탄력성이 줄어들 고 있다."

불편한 편의점의 일부 문구를 인용했듯, 나이를 들며 점차 감정 회복의 탄력성이 약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고객사로부터 들은 안 좋은 소리도, 동료로부터 듣는 부정적인 업무 피드백도, 그저 흘러 넘기면 되는 것들임에도 내 귀에 꽂히면 잘 잊히지 않는다. 그것들이 다음 나의 업무를 함에 있어 어항 속에 낀 물때처럼 조금씩 누적되어 피로감을 유발하고 감정을 상하게 만든다. 이 또한 10년 간 나의 주 전략이었던 Fast&Perfect 전략의 대한 관성 일지 모르겠다. 짧게 분석해 보건대, '별거 아닌 나에 대한 긍정적 평판'을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에서 비롯된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것은 결국 내가 앞으로도 해결해 나가야 할 나의 제일의 숙제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린"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최소한 뒤로는 가지 말자, 조금씩 다름과 변화를 추구하여 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팀장 역할을 맡기면 그에 맞게 지금보다는 관대함으로 대할 것이며, 실무자의 역할을 맡긴다면 실무를 깊게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나의 주특기를 갈고닦을 예정이다.


"우린 모두 깐부니깐, 앞으로도 즐겁게 삽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뉴 노멀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