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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ul 13. 2024

적절한 거리두기

전염병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렇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업무 할 때 빛담 프로를 불편해해요. 앞으로는 개별 컨텍은 삼가 주셨으면 해요."

"그렇군요...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앞으로는 직접 일 챙기지 말고 위임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업무 하는 Agency 대표로부터, 앞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당시 냉정함을 유지하기는 참 힘들었지만, 억지로 표정을 관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구나... 나랑 일하는 동료들이 많이 불편해했구나. 


 필자는  주어진 실무를 다른 사람들 보다 빠르게 처리를 하기도 하고, 업무 또한 주도성을 지니고 하다 보니, 주로 TM(테크니컬 매니저) 역할을 부여받아 다른 동료들의 결과물을 챙기는 직무를 부여받곤 하였다. 'ㅇㅇㅇ담당자'라는 직함을 달게 되면, 그야말로 '퍼블릭 변수'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은 업무에 대한 '퍼블릭 변수'를 찾아 연락하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업무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 모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다구리 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업무와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스스로 생각하곤 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이야기는 많이 해주는 편이라 나의 업무 방식이 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다. 아울러, 필자는 TM 보직을 수행하는 동안은,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원칙에 대해 팀원들과 공유하고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 업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실행자로 하여금 수행범위를 명확하게 해주는일

 - 모르는 부분들에 대해 히스토리를 보충해 주고, 실행자가 두세 번의 리소스 낭비 없이 한 번에 업무를 마칠 수 있도록 돕는 일

 - 이런 행동들을 바탕으로 잔업을 최소화하여 워라밸을 지켜주는 일


 우리 팀의 '퍼블릭 변수'는 내가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개발자는 개발 결과물을,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 기량을 뽐내길 바랐다. 코어 하지 않은 일들은, 내가 맡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서 이야기 한 세 가지 원칙을 팀원들과 공유하며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던가? 

필자와 마음이 맞는 사람은 호흡이 척척 맞아 업무수행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며, 이 분들은 나의 업무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직접 이렇게 누군가를 통해 들으니, 솔직히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러면 여기서 왜 일하고 있는가.'  


 현재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고객사는 끊임없이 요구사항을 내며 '퍼블릭 변수'인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다. 미숙한 결과물로 인해 점차 내가 고객사에게 '죄송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늘어만 가고 있으며, 이는 좋은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물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나의 세 가지 원칙에 대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팀원들이 먼저 느끼게 된 것 같다.


 팀원이 없으면, 리더도 없다. 팀원이 고객이다. 내가 바뀌어야만 할거 같다. 업무적으로, 그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적극 수용하며, 결과물을 올리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할 거 같다. 나 혼자 필드에서 뛰어다니고, 정리하고 가공한다고 하여 우리 팀의 결과물이 오르는 시기는, 이제 지나간 거 같다. 


 다만, 태도적으로도 변화는 동반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결과물만 주고받는 정도의 관계,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관계 정도로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나 혼자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친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는지, 그런 오해로 인해 내가 그들의 바운더리에 '침입'한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와 팀원 모두를 위해선 적절한 '거리'두기가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냥 TM역할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가장 확실한 답처럼 보인다. 딱히 내가 맡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이 환경이 싫다. 나로 인해 누군가 즐거움을 느껴야지, 그 반대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아직도 그날 Agency대표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꽉 차서 대사 하나하나가 뇌를 점령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괴로움이 잘 해소되지 않아 더 괴롭게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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