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Jul 10. 2024

빤스런

마렵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반기 별로 "오픈"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다른 회사에서는 전환배치라고도 부르는데, 용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나, 사내 인적 리소스 재분배 차원에서 사람이 필요한 부서의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합격하면 해당 부서로 '이직'할 수 있는 제도이다.


 약 3년 전, 부서 내 동료 직원과 문제가 있은 후, 나를 옹호해 주지 않던 팀 리더에게 큰 실망을 한 뒤,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모시던 분께서 좋은 오퍼를 주셨었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명예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지금까지 이 부서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이번에 올라온 공고는 정말 오랜만에 나에게 집중해서 보게 만든 공고들이었다.

사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지금 너무 안 좋다고 생각한다. 원래도 고객사로부터 들어오는 일들이 너무 많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어 어떻게든 버텨낼 수가 있었는데, 요새는 그것도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이렇게 괴로운데, 이런 나와 함께 일하는 그분의 심경도 얼마나 참 어려울까... 하는 연민의 생각이 들다가도, 너무 많은 일들이 몰리고 몰려 다들 퇴근하고 난 뒤에 나머지 동료들이 해놓고 간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그제야 하나하나 챙겨보면서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을 홀로 토로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 불길이 치솟을 때도 있다.


 그냥,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본인일 잘하는 게 제일 맘 편하다는 생각이 요새는 절로든다. 군 생활 때도 그랬고, 회사에 입사해서도 리더의 역할이 주어질 때마다 어떻게든 일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편이었지만, 요새는 정말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말이다...


 빤스런 하기 위해, 서두에 이야기 한 '오픈' 가능한 부서들의 JD를 잘 살펴봤다. 결국 파랑새는 없는 듯했다. 만고 불변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것. 


 일에 대한 설명이 좋아 도전해 보려고 해도, 필자가 지금 일하는 곳이 아니다. 저 멀리 가야 한다... 아쉽지만 패스. 

사무실 장소는 마음에 드는데, 일은 마음에 들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사업관리를 하란다... 이것도 패스. 

오 여기는 사무실도 좋고 일도 괜찮은데...? 조직도를 좀 볼까? 누가 있나... 아! 이 아저씨가 있네 여기도 패스...


 결국 브라우저를 닫았고, 그저 멍하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조용한 메신저 창과, 쌓이지 않는 메일함을 보며 오늘도 마음속으로만 빤스런하는 상상을 잠깐 하며 밀린 잔업을 씁쓸히 마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늘 하던 일, 언제나 감사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