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의 향기 1화

에페소스로 가는 길

by 굿닥터

나는 90년 여름 어느 날 이스탄불 교외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에페소스로 가는 심야 버스를 탔다. 근처에는 동로마 제국 시절 만든 이 도시를 고트족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테오도시우스 성곽이 있었다. 도시에서 성곽은 도시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역사가 있는 도시라는 점을 보여준다. 신대륙에 성곽의 풍경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테오도시우스 성곽은 마르마리스 해안에서 금각만(金角灣, Golden Horn)을 연결하여 도시를 포위하고 있는 위대한 구조물이다. 이 지역은 도시가 확장하면서 이스탄불의 일부가 되었다.

터미널 근처의 성곽은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해풍에 그을리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서민들은 허물어진 성곽 사이에 있는 공간을 활용하여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닭을 키웠다. 과거에는 이곳에 배치된 비잔틴 군인들이 아바르나 훈족의 침략을 막아내면서 도시를 지켰다. *주)아바르(Avars)는 5~9세기에 중앙 유럽, 동유럽에서 활약했던 기원이 불분명한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연맹체이다.* 이제 사람들은 무기나 용기가 아니라 저임금과 먹고 살아야겠다는 원초적인 본능으로 이스탄불을 지키고 있었다.

성곽에는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서 서울의 수유리 장미원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젊은 시절 남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장미를 백송이 산 다음 장미원에 사는 여학생에게 바친 적이 있었다. 나는 백만 송이 장미꽃이라는 노래를 믿었다. 가난한 조지아의 화가가 창문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소녀에게 장미를 사서 바치면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그 가사의 취지를 믿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여인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자 장미가 더 구차하게 보였나 보다. 그녀는 떠났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낸 후 그녀를 잊기 위해서 남쪽 항구도시에 가서 군함을 타고 더 멀리 떠났다.


버스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 아시아로 달려가고 있었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동시에 흑해와 마르마라해(海)를 잇는 해협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해 이스탄불의 아시아 구역을 지나면 나오는 첫 도시가 이즈미트다. 이즈미트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인 니코메디아가 이어져 온 곳이다.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를 막기 위해서 동방에 만든 로마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과 이즈미트를 연결하는 해안선은 우리들의 몸이 반수면 상태일 때 가장 아름답다. 정신이 어렴풋한 상태에서 자다 깨다 하기를 반복하면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 그리고 오스만 터키와 현대를 다 느낄 수 있다. 우리 감각은 원래 초현실적인 것이어서 항상 그 안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 갖고 있다. 현재 속에서만 사는 사람은 없다. 인간이 진화하여 뇌가 생기고 상징적인 존재가 된 후 우리는 항상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갖고 산다. 과거의 회상만으로 행복한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안개비가 내리는 밤중에 고대도시를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 자신을 대면하는 그 고독한 시간에 차바퀴가 빗길의 아스팔트를 긁는 소음이 더 잘 들렸다. 낮이라면 포도밭, 사이프러스 나무, 올리브 나무 이런 것들을 배경으로 지중해와 푸른 초원이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나를 대면할 공간이 없었을 것이다. 나 자신의 과거보다는 인류의 과거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 더 쉽다. 인류의 과거를 대면하기 위해서는 책만 내 옆에 있으면 된다. 나의 과거를 대면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정신적 힘 그리고 솔직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의 과거에서 비롯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이겨내는 데에 역사책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역사를 읽는 것은 감정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다. 로마의 황제들도 짧은 인생을 살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들의 생애를 읽으면 내 일상이 로마제국의 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 읽기는 정신과 치료가 될 수 있다. 나는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예약한 적이 있었는데 한 번도 진찰을 받은 적은 없다. 나는 병원에 가는 대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었다. 철인황제가 다뉴브강 참호에서 죽어가는 순간까지 나에게 말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슬픔은 작아지고 삶에 대한 새로운 용기가 생긴다.


버스는 이즈미트로 가는 길 중간에 바다를 건너기 위해 거대한 수송선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밤중에 벌어지는 놀라운 의식이었다. 버스는 이즈미트에서 고대 트로이 유적이 있는 에게해 서쪽으로 가기 위해서 마르마르 해협의 동쪽 바다를 건너는 것이다.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갑판에 올라와 주변의 배들에서 나온 불빛이 검푸른 파도와 그리고 안개와 섞여서 만든 몽환적인 바다 풍경을 본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큰 바다에서 그리고 바다보다 더 큰 역사 속에서 한 점에 불과한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수송선이 로마 시절 비티니아라고 불리는 소아시아 서북부에 상륙하자 버스는 다시 새벽의 아시아를 달리기 시작한다. 버스는 이제 이즈니크 호수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이 호수는 바다보다 더 창백한 터키색을 품고 있다. 아직 어둡지만 호수 가에는 올리브 구릉, 포도밭들이 펼쳐져 있는 윤곽들이 보였고 창문을 열어보면 유칼립투스 향이 많이 났다. 이 향은 우리의 정신을 안정시키고 치료하며 우리를 과거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로 데려가기도 한다. 이 호수의 반대편에는 이즈니크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직자들과 관리들을 모아 놓고 초대 기독교 교리를 확정한 종교회의를 개최한 니케아다. 니케아 아니 이즈니크는 페르시아식 타일과 유리세공품으로 유명하다. 1071년 만지키에르트 전투의 승리로 페르시아 고원에서 아나톨리아 반도에 쏟아져 내려온 셀주크 터키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니케아를 점령한 다음 자기들이 페르시아에서 배운 카펫과 금속세공업을 이 도시에 가져왔다.

버스는 다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야로바로 향한다. 야로바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태어난 도시다. 황제는 여인숙의 여급이었던 엄마를 위해서 이 도시에 신성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고대에 이 도시의 이름은 헬레나폴리스이다. 버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에게 해변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튀르키예에서는 장기 노선 버스를 타면 지키는 격식이 있다. 먼저 차장이 레몬냄새가 나는 물수건을 주고 나서 진한 터키차나 물을 가져다 준다.

나는 이제 잠들 시간이다. 여름이라서 에어컨을 키고 달렸는데 사람들이 잠들자 에어컨을 꺼버린다. 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불완전한 영화의 필름처럼 이것저것 섞여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 나의 수면을 방해했다. 나는 흔들리는 차 속에서 힘을 주어야 머리를 편안하게 고정시킬 수 있고 팔꿈치의 위치를 좌석에 가지런히 놓아야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담배연기 때문에 자주 자다 깨다가를 반복했다. 터키 남자들은 전쟁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그 용맹심을 평시에는 담배 피우는데 보여주는 것 같다. 공기가 너무 답답해서 창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았다. 새벽이다. 이슬이 비타니아 평원에 내려앉고 있었다.

버스가 해안도로에서 약간 벗어나 언덕을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한다. 나는 출입문 옆의 좌석에 앉아 철지난 신문의 글자 맞추기 게임에 터키 단어를 적어 넣고 있는 버스 차장에게 물어보았다. 투르바가 어디에 있냐고 그러자 그을린 피부의 이 젊은 남자는 투르바는 벌써 한참 지나쳤다고 답하면서 해맑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가지런하게 난 구렛나룻 그리고 금발기운이 있는 갈색 머리를 보고 나는 그의 모습에 이 버스가 지나온 그리스 로마 비잔틴과 튀르키예를 다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투르바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전쟁을 한 오디세이가 활약한 트로이라는 도시의 튀르키예식 발음이다. 버스는 밤중에 두어 번 휴게소에 내리는데 거기에는 그 새벽 시간에 꼬치를 파는 튀르키예식 대중식당인 로칸타시가 있고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선물용품점 그리고 주유소가 있다. 화장실 구석에는 빵에 고등어를 넣어서 만든 케밥이 신문에 쌓여있는 형태로 먹다만 채로 버려져 있고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와 그것을 먹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놀란 고양이가 자기 새끼를 입으로 물고 도망가 버렸다.


아침이 되자 차장이 승객들에게 올리브 기름을 손에 발라준 후 식사 세트를 주었다. 아침 식사는 짱과, 고기 계란 오믈렛, 요구르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떠오른 태양이 중천에 이를 때 즈음 버스는 에게 해변에 들어섰다. 이 곳은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자연적으로 가장 축복받은 지역이다. 그래서 이 곳은 바로 호머의 오디세이가 활약하던 장소였다. 그리스 문명은 해양문명이다. 그리스는 본토는 물론이고 그리스가 개척한 식민지는 대부분 지중해 그리고 일부는 흑해 연안에 있었다. 그리스가 만든 나폴리, 바르세유, 바르셀로나, 흑해변의 바르나 그리고 크림반도의 헤르손은 모두 바다를 접한 도시였고 이 도시들은 바닷길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이곳에 와서 도시를 건설하고 트로이를 함락시키면서 세력을 확장했으며 페르시아인들은 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 그리스와 전쟁을 벌였다. 에페소스는 키루스가 세운 고대 페르시아가 그토록 탐했던 도시다. 키루스는 기원전 6세기에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준 왕이다. 이 왕은 에페소스를 장악하면 지중해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세계 전체를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키루스는 에페소스를 굴복시킨 다음 에게해 바다를 건너 사모스 섬을 차지했다.

나는 고독하고 침울해 있으면 기원전 5세기에 할리카르나수스(지금의 터키 보드름)에서 태어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는다. 헤로도토스는 그 강력한 페르시아도 중동지방에서 위력을 과시한 전차와 기마부대로 자유정신으로 충만한 그리스인들을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이 위대한 업적에 대한 기억이 시간에 의해 소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로마제국이 에페소스를 손쉽게 외교로 차지한 후 아시아 속주로 편입하면서 로마의 경제적 중심지는 동쪽으로 이동한다. 소크라테스의 친구이면서 제자였고 소크라테스의 대화론과 심포니아를 쓴 위대한 아테네의 철학자 크세노폰은 페르시아의 젊은 왕인 키루스의 용병이 되어 내가 달리고 있던 이 에게 해변에서 출발해 아나톨리아를 관통한 후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싸운 후 돌아온다. 그는 아테네 사람이 그리스에 적대감을 드러낸 페르시아의 황제를 위해 싸우는 것이 꺼림칙하여 소크라테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나는 크세포논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죽음을 무릎선 용병의 여행을 감행한 철학자의 철학은 편안한 도시국가에 익숙한 소피스트들의 철학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 크세포논의 사상은 미지의 사막을 걸으면서 목마름과 배고픔을 이겨낸 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적인 요소의 혼합은 고대의 이 지역을 문명적으로 가장 우월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로마는 군사력으로 이 지역을 정복하고 로마문명을 이식했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 이 지역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졌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이 에게 해 근처에는 그 배후지에 가장 기름진 구릉들이 있다. 이것은 항구와 함께 에게 해 도시들의 경제적인 기반이 되었다. 이 들판은 아나톨리아 반도의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다. 이 곳이 바로 그리스 철학의 황금기인 이오니아 학파 사람들이 플라타너스 나무의 밑동에 기대어 앉아 철학을 논한 곳이다. 그리스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들은 본토가 아니라 여기에 다 있었다. 이 부유한 에게 해의 도시를 만든 사람들은 노예들이다. 여기에 노예상인들의 무서운 눈길을 받으면서 끌려오는 절름발이 남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바로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스토아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에픽테토스다. 로마가 약화되면서 다시 이 지역은 중세 이후에 그리스적인 로마인 비잔틴 문화로 변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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