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의 향기 2화

셀추크

by 굿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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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스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대개 에페소스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항구도시인 쿠사다시에 있는 관광호텔이나 펜션에서 지내기 마련이다. 그 곳에는 해양 스포츠, 음식점, 바, 나이트 클럽이 해안가에 즐비하기 때문이다. 나는 쿠사다시 항구 대신 배후에 있는 셀추크라는 마을에 여장을 풀었다.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한다면 그 대개 이 마을에 있는 그리스 신전을 보기 위해서다. 이 신전은 세계 문화유산이고 인류역사의 신비이기도 한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단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마을 이름도 셀추크라서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셀주크의 본산인 중앙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의 본토가 더 가까운 이 마을이 셀추크라고 불리는 것이 맞는지 궁금해졌다.

셀추크 마을은 아나톨리아 반도가 시작되는 완만한 구릉과 지중해의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주) 아나톨리아 반도는 예전에 소아시아라고 불리우는 지역으로 유럽과 연결된 아시아의 시작점으로 현재 튀르키예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을로 들어가면 흙 색깔의 벽돌로 지은 중동 식 시골집들이 나오는데 과거 그들의 조상이 중앙아시아에 머무를 때 거주하던 유목텐트를 나무와 벽돌로 바꿔 만든 것처럼 보인다. 남자들은 거리에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서 차를 마시면서 장기를 두고 있고 아이들은 큰 길 앞까지 나와 축구를 한다. 집안에 들어가면 닭들이 돌아다니고, 방바닥에는 페르시아식 카펫이 깔려 있다. 여자들은 마루에서 카펫을 수놓고 있다.

이것만 보면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미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그 어느 곳도 먹고 사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인도로 가는 길, 산티아고로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튀르키예로 가는 길이 내가 갖고 있던 현실적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나는 한국에서 취직을 하면 큰 조직에서 구속을 받으며 나의 시간을 팔아가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면서 이 마을에 들어와 잠시 관찰자 시점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묶었던 곳은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3층 목조 여인숙이었다. 주인 하산은 독일에서 10년 이상 일해서 돈을 모아 카펫 가게를 차리고 그 2층과 3층에는 펜션을 열었다. 내가 쓰던 2층에는 독일에서 온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넓어 흰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연 분홍빛의 얼굴을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청년 고고학자였는데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적을 발굴하고 연구해서 학회에 발표하기 위해서 장기간 그 펜션에 묵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한스였다.

나는 낮에는 가게 주인 하산과 함께 카펫을 팔았다. 카펫 하나를 팔면 일주일 정도 더 묵을 수 있는 돈이 나온다. 카펫 2개를 팔면 그리스 섬에 다녀올 수 있다. 하산은 나에게 독일어로 소리를 질렀다. 그는 냉혹한 시선을 갖고 있는 중년의 투르크인인데 이런 차가움은 그가 독일에서 이주노동자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이다.

“체코 사람들에게는 흥정하지 말고 돌려보내. 그들은 돈이 없어. 자신들이 독일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거들먹거리지만 가게에서 카펫도 사지 않고 나가버려”


한스와 나는 아르테미스 신전 위로 노을이 지면 큰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앉아서 이 지방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한스는 튀르키예어에는 아랍어가 많이 들어 있어서 아랍어의 분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양인들에게는 중앙아시아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온 투르크족에 대한 지식이 신비적이고 왜곡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튀르키예가 멀리 몽고와 서만주 지방에서 살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페르시아와 인도, 중국은 모두 동방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유라시아 민족들의 역사는 오페라나 낭만적인 소설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공주는 잠 못 들고’라는 노래로 유명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칼라프는 타타르의 왕자이고 그 아버지는 티무르다. 서양인들은 고대 중국의 수도 북경에 나타나 벌이는 이야기를 들으면 몽고와 튀르키예, 타타르를 모두 섞어서 이해하곤 했다. 이런 오해 때문에 우리 민족은 중국의 일부로 이해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중국을 키타이라고 불렀는데 키타이는 거란의 러시아식 발음이다. 거란은 고구려 제국 하에서 살던 몽고의 한 종족이었다. 서양인들이 알타이족인 한국인과 중국인을 동일시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제 서서히 유교적 문화를 포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고 여겨졌던 유교가 사라지면 우리는 어디서 역사적 연대를 찾는다는 말인가? 우리 민족은 이제 스스로 홀로서야 한단 말인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바로 유라시아에서 찾을 수 있다.


튀르키예의 지리적 역사와 투르크인의 역사는 다르다. 셀추크 마을은 언어나 관습으로 볼 때 이들의 조상이 오래 전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투르크인임을 보여주는 곳이다.

투르크는 중국인들의 발음으로 돌궐이라고 불린다. 시베리아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투르크인들이 몽고와 고구려 부근의 들판에 내려와 고대국가를 세웠을 때 그들의 피부와 머리카락은 우리와 비슷했다. 투르크족들은 군사적으로 압도하기 어려운 동쪽의 고구려를 피해 그리고 목초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진을 하게 되었다. 10세기 정도에는 페르시아 지방에 들어와서 정착하였고 점차 코카서스 외모를 얻게 되었다. 돌궐의 한 일파인 셀주크 부족이 그리스인들이 지배하는 동로마제국에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서기 1071년이었다. 셀주크 부족은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는 반 호수에 나타나서 이 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아르메니아인 군대를 격파하고 그리스인 동로마 황제를 생포하고 순식간에 에페소스까지 밀고 들어왔다. 이후 셀주크 부족은 동로마제국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리스인들과 섞여 그들의 피부는 더 창백해지고 이목구비는 한국인보다는 그리스인의 모습을 더 닮게 되었다. 이것은 에페소스에 지금 사는 투르크인들의 역사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가게 앞에 앉아서 대화를 하고 튀르키예어로 단어 잇기 놀이를 하는 것을 하며 한스에게 튀르키예어와 한국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본 한스는 신기해했다.

현재의 삶은 항상 과거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움직인다. 투르크인의 문화는 엄청난 연속성을 갖는다. 그들은 천 년 전 페르시아로 이주해서 셀주크족이라는 이름으로 농사를 지으면 살고 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이전의 투르크인들은 물과 신선한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양을 따라서 메마른 들판을 향해 돌진하고 했지만 풍요롭고 여성스러운 축복받은 아나톨리아 평원에 와서는 유목생활을 그만두고 그리스인들과 섞여 농부가 되었다. 투르크인은 이곳에 살고 있던 기독교인 그리스인들을 대신해서 이 아나톨리아와 지중해 세계의 주인이 된다. 투르크 문화가 그리스 문화를 흡수해 버린 것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시간이 아니면 에페소스 유적지에 가서 관광객들에게 엽서나 관광책자를 판다. 그 책자에 나오는 그리스 신전과 그리스 조각품들은 투르크인들이 원래 살던 중앙아시아에 퍼져 있던 샤머니즘과 투르크 조상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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