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교회
셀추크 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마리아의 교회가 있다. 성모 마리아가 요한과 마지막 생애를 보냈다는 전설을 기독교가 인정해서 마리아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에 세워진 교회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많은 교황들이 이 교회를 방문했다고 한다.
요한과 성모마리아가 이곳에 살았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상당히 어렵다. 성모 마리아가 살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곳까지 이동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또한 당시 마리아와 같은 보통 유대인들이 이주해서 살 수 있는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페소스는 요즘으로 치면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의 지역이다. 유대인 공동체도 에페소스에 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지중해 무역을 통해 부유한 상인들이다. 에페소스의 사람들은 주로 당시의 그리스어를 사용한 반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일반 서민층에 속했으므로 당시 유대인들의 언어인 아람어를 썼을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50년 뒤에 이 도시에 나타난 바울의 경우는 다르다. 바울은 유대인인지만 소아시아 반도의 국제 무역항인 타르수스에서 태어났고 아람어말고도 그리스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한 지식인이었다. 로마의 지중해변 대도시에서 철학자들과 문필가들은 그리스어를 주로 쓰고 관료와 군인들은 라틴어를 썼는데 바울은 라틴어도 구사했으므로 성모 마리아와는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바울은 문화적 번역의 대가였다. 그는 탁월한 언어 능력과 글로벌 감각으로 유대교를 기독교로 변신시켰고 그 기독교를 로마화하였다. 그는 아람어를 쓰는 에페소스의 유대공동체에 들어가서 그들과 토론 배틀을 벌였고 거기서 이긴 다음 에페소스에 있는 주류시민인 그리스 로마인들 속에 파고든다. 고대의 대리석 조각품들이 즐비하게 장식되어있는 에페소스 도서관 앞에서 논쟁을 하는 소피스트들 그리고 상인들로 넘치든 가도와 빌라에서 그리고 목욕탕에서 와인을 마시고 그 비옥한 흙에서 나온 곡물로 만든 빵을 만들어 먹고, 그 곡물을 사료로 먹고 자란 양을 잡아 구워먹으면서 방탕하게 놀다가 다시 시간이 흐르면 포럼에 모여서 이성을 가지고 도시국가의 일들을 논하던 바로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의 말을 전파했다. 바울은 칼이 아니라 언어와 글로 로마 정복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마리아와 요한이 에페소스에 살았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전설은 아마도 프리기아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한다. 프리기아 왕국은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경쟁하던 기원전 5세기에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프리기아의 가장 유명한 왕은 마이더스의 손으로 유명한 마이더스 왕이었다. 이 마이더스 왕은 당시 최고의 강대국인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면서 소아시아 평지에서 만든 밀과 올리브를 지중해 각 지역으로 수출하여 번성한 국가를 만들었다. 모든 것을 만지면 금이 될 수 있었다고 하니 이 지역이 얼마나 부유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리기아인들은 기원전 6세기 히타이트의 일종인 키메리아인들에게 패배한 후 점차 그리스인들과 동화되어 버렸다. 키메리아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웠는지 지금도 악마의 화신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프리기아인들이 모시던 대지의 신은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승계되었고 그래서 아르테미스 신전이 이곳에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프리기아인들이 숭배하던 야수의 애인이 이 지역이 기독교화되면서 성모 마리아로 변신하게 된다. 그래서 성모마리아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 동방박사들이 쓴 모자와 의상은 프리기아식이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에도 소아시아 서부 지역에서 인도유럽어의 일종인 프리기아어는 실제로 존재했다.
바울의 전도여행이 끝난 200년 후 로마가 만든 시민사회와 관료조직 그리고 원로원과 궁정은 모두 교회의 몸을 만드는 구성품들이 되었다. 가톨릭은 제도 그 자체다. 가톨릭은 로마의 제도에 바울이 격렬한 내면의 갈등을 통해서 만든 기독교의 사상을 얹어 놓은 것이다. 그 제도의 정점에 있는 교황은 초대 기독교인들의 신앙심을 통해 만들어진 이 제도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한 가톨릭 제도 하에서 프리기아인의 설화가 변형되어 마리아와 요한이 이 곳 에페소스에 여생을 살게되었다는 이야기가 뿌리를 내렸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교회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