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의 향기 6화.

사모스 섬으로 가는 배

by 굿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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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쿠사다시 항구, 출처: https://ko.spotblue.com/guides/turkey/kusadasi/)


나는 튀르키예에서 출발하여 그리스의 사모스 섬으로 떠나는 배에 올라탔다. 출발지인 에페소스의 외항 쿠사다시 항구에는 새하얀 연락선과 요트들이 거미줄처럼 묶여져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선창가의 술집에서는 선원들이 창밖을 쳐다보면서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라키를 계속 마시고 있었다. (*주:라키는 튀르키예에서 생산되는 증류주이다. 주로 해산물 요리와 함께 마신다.) 나는 양 내장으로 만든 수프와 빵 그리고 진한 시리아 차로 아침을 먹으면서 신문을 보았다. 신문의 헤드라인은 <튀르키예에는 민주주의가 없다>였는데 나는 이것을 보고 튀르키예에는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문에는 디아르바크르에서 쿠르드 반군 토벌에 대한 기사와 튀르키예의 여가수 세젠 악수가 이스탄불의 흑해 변에 있는 비잔틴 성에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로 가득 찼다.

나는 국제선 구역으로 가서 입국 수속을 한 다음 배에 올랐다. 해군과 비슷한 하얀 제복을 입은 그리스 선원이 튀르키예어로 세관관리에게 무슨 얘기를 한 다음 항구에 묶여있었던 밧줄을 풀었다. 그리스로 가는 연락선이 서쪽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배의 배기통에서 나오는 가솔린 타는 냄새가 바닷바람에 섞여 밀려오고 쿠사다시의 선창가가 손에 잡힐 만큼 작아지자 내가 튀르키예에서 지냈던 날들이 하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배의 속도가 빠를수록 기억은 더 빨리 사라졌지만 푸른 에게 해를 바라보면 희망이 느껴졌다.



내가 젊은 시절에 에게 해를 여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었다. 배기통에서 나오는 연기가 바다 표면을 때리면 잠잠했던 에게 해 바다가 놀랐는지 물 속에 펼쳐놓은 푸른 물감처럼 흰 파도와 파란색 바다의 표면이 섞여 춤을 춘다. 물결이 출렁거릴 때 마다 미소를 머금는 그리스 여성 여행자를 보면서 지중해가 만든 와인, 미인, 자유 그리고 종교나 국적에 관계없어 넘나들 수 있는 레반트 도시들의 국제주의에 대해서 고마워했다.(*주: 레반트는 서아시아에서 동지중해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오스만 투르크가 쇠퇴하면서 에페소스에서 한 시간 걸리는 스미르나, 레바논,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동지중해의 도시들에는 서구인들을 위한 조차지가 생기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유대인들이 아랍어나 튀르키예어를 쓰는 하인을 부리면서 자기들 교회와 자기들 민족 언어를 쓰는 학교 그리고 자기들의 빵집과 신문사를 갖고 젊은이들은 성적 자유를 즐겼는데 세계대전 이후 숨 막히는 민족주의가 국제주의를 없애버리기 전 그 과거의 레반트 도시와 바다를 그리워해서였는지 이 배를 탄 유럽인 승객들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사모스 섬에 도착하여 만난 해변의 모습은 나른한 지중해의 주말 정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스는 서양이다. 음악도 음식도 튀르키예와 비슷해 보이지만 무언가 다른 게 있었다. 그것은 개인주의다. 사람들마다 자기의 개성을 의식하고 자기의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산다. 식당가에서 멋있는 선글라스를 끼고 하얀 칼라가 아름답게 흐트러져있는 셔츠를 입은 그리스 젊은이들이 카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실에서 나에게 미소를 지었던 그녀는 긴팔 소매를 반쯤 걷고 나타난 그리스 미남의 품에 안겨 키스를 한 후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급하게 빠져나가 버렸다. 나는 잠시 전까지 그녀와 이 섬에서 멋진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그리스의 여신 같은 그녀를 연인으로 만드는 상상을 했었다. 방금 전 나의 꿈은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흩어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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