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의 향기 7-1화.

에피쿠로스의 고향, 사모스 섬 1)

by 굿닥터
사모스섬_8e47e13a-city-7135-16f858b4850.jpg 사진: 사모스섬(출처 : https://www.holylandgreece.com/samos)

사모스 섬에 도착했다. 항구의 이름은 이 섬에서 태어난 피타고라스를 기념하여 피타고리온이었다. 아니다 기억은 항상 선택적이다. 나는 피타고리온 반대편에 도착했다. 나는 이 섬을 떠날 때 피타고리온에서 닙시로 가는 작은 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해변부터 시작된 도로에는 종려나무들과 플라타너스가 심어져 있고 낮은 산들은 산복도로(山腹道路)로 연결되어 있었다. 해변 도로 옆으로는 하얀 페인트로 벽이 칠해져있고 파란색 창문들이 바다 색깔처럼 보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평창동 가나 아트센터에서 올라가면서 보이는 북악산의 풍경과 비슷하다. 하나는 바다고, 다른 하나는 산이다. 사모스 섬에는 아테네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산다. 평창동에는 강남의 번잡한 생활을 피해 잘 꾸며지고 풍경이 좋은 수도원 같은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산다. 사모스 섬의 산복도로에서는 밤중에 터키로 가는 배의 불빛이 보이는데 평창동에서는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이 보인다. 나는 두 불빛을 모두 고독한 영혼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철지난 잡지 표지처럼 좀 식상해 보였지만...

사모스 섬은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태어난 곳이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행복의 추구라고 말했다. 진정한 행복은 고통이 없는 것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없었다가 존재하고 다시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지금 서울에서 떠나와 이 섬의 산 중턱에 있던 별장의 정원에 앉아서 에피쿠로스에 대한 책 한 권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철학을 얘기하고 에게 해를 바라보면서 와인을 마시면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사상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축복받은 섬이야 말로 행복에 대한 철학을 발견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장소임에 분명하다고 느끼게 되었는데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다의 존재다. 에피쿠로스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했다. 에피쿠로스는 젊은이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잘 산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은 아직도 항해를 하고 있고 거친 파도에 휩쓸려 갈 수 있다. 그들의 신념은 좌우로 출렁거린다. 그들은 한눈팔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고 항해해야 목적지에 도달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항구에 도착했고 과거의 행복을 회상하면서 정박할 수 있다. 그리스는 지중해의 선물이다. 이곳에서 나는 그리스의 철학들은 바다 위에 떠있으며 그 문명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부두에는 그리스의 지도가 창문에 붙여져 있는 여행사가 즐비하다. 한 여행사 건물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에게 해 바다와 섬들의 풍경을 배경으로 이마에 건강한 주름살이 잡힌 얼굴의 그리스 어부들이 배에서 그물을 들어 올리는 사진들이 걸려있다. 그 여행사에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조각처럼 생긴 여성이 혼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담배는 몸에 좋지 않아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술, 붉은 고기,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는 당신의 걱정이 더 건강에 좋지 않아요. 건강을 아껴서 언제 써먹을려고요” 그녀의 낙천주의가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나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말로 떠들고 있고 그녀는 실천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름기 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술을 많이 마시는 그리스인들은 유럽에서 제일 오래산다. 그들은 작은 공동체에서 살고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사에서 준 주소를 손에 들고 도로로 연결되어 있는 구릉으로 걸어갔다. 구릉을 올라가다보면 반대편 항구 쪽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데 표지판에는 피타고리온이라고 써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의 정석에서 배운 피타고라스가 이렇게 가깝게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문득, 수학 참고서에서 봤던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라는 문제와 답이 떠올랐다. 민박집으로 가는 길에는 잿빛 바위 사이로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촘촘히 심어져 있다.

나는 사모스 섬의 개인별장을 개조한 민박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이방인인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자신은 수십 년간 외국에 나가서 사업을 하면서 부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 그 사람들이 불행해 보였다고 한다. 이 부자들은 한결같이 사업에서 성공한 다음 은퇴해서 아름다운 풍경의 지중해 섬에서 어부처럼 고기를 잡고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말을 듣고 민박집 주인은 외국생활을 그만 두고 고향인 이 섬에 와서 바다 전망이 좋은 구릉에 집을 지어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짐을 풀고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멀리 에페소스가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주인이 잡아서 만든 생선구이와 붉은 와인 한 병 그리고 쌀을 집어넣어 고소하게 구워진 그리스 식빵이 있었다. 그리고 집주인은 정성스럽게 보라색의 라벤다 풀을 올리브 나무로 만든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그 이유는 식사를 한 다음 섬의 냄새를 맡으라는 섬세한 배려였다. 나는 지금도 사모스 섬을 라벤다 향기로 기억한다. 정의고 경제성장이고 다 집어치우고 행복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철학의 주체를 생각하게 만드는 향기다.


과연 우리는 평범한 삶을 통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평범하지 않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죽으라고 일해서 돈 벌고 애 키우고 여유가 생긴 다음 이런 섬에 와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겨야 하는가? 내가 묵고 있던 집의 주인처럼 통통배를 타고 다니면서 해안가를 돌아다니고 고기를 잡은 다음 집에 가져와 그것들을 숯불에 구워서 먹고 같은 동네에 포도밭이 있는 친구 집에서 가져온 와인을 마시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런 즐거움은 진정한 행복인가? 한번 더 인생을 항해로 비유해보자. 승객들은 한 달걸리는 여정을 하루로 줄이고 싶어한다. 과학기술로 하루로 줄일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여정을 줄여서 얻은 29일을 유튜브 보는데 허비하고 만다면, 차라리 우리는 게으르게 한달 동안 항해를 하면서 주변풍경을 보고 낚시를 하고 배 안에서 파티를 하면서 노는게 훨씬 가치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게을러야 하고 게으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는 잔소리에 무감각해야 하고 무료함과 싸우면서 그 무료함을 즐기고 무료함을 자기만의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 민박집 주인은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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