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의 향기 7-2화

에피쿠로스의 고향, 사모스섬 2)

by 굿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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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출처:https://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13)


우리가 그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단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의미와 싸워야 한다. 바다를 보더라도 낚시를 하더라도 인생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정당화하려하고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규정하려고 하는 인생의 문제와 인생의 질문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주인은 밤마다 아테네 시내에서 산 명품 옷을 입고 항구의 바에 가서 영국인 여성 관광객을 유혹하려고 한다. 그는 아니 인간은 자신을 상대방과 사회에 투영하면서 거기서 자신을 발견하고 기쁨을 확인하려 한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이 멋진 것이었다고 정당화하려는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단순하고 신비롭고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집주인을 보면서 에피쿠로스가 왜 이 섬에서 행복을 탐구했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섬에는 바다, 빛, 미인, 와인 이런 것들이 많아서 인생의 행복을 연구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것들을 누리면서 이런 쾌락에 종속되지 않는 진정한 행복의 상태를 규명하고 실천해보려고 한다. 에피쿠로스는 14살부터 철학공부를 시작하는데 이오니아 학파 철학의 중심지인 소아시아의 도시들을 떠돌다가 나중에 아테네에 정착해서 학파를 만든다. 그는 자기 가족, 친척 그리고 친구들을 모아 일종의 모임을 만들어서 공부도 같이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행복을 탐구했다. 일단 그는 별다른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후원으로 먹고 살았다. 그는 쾌락이 좋은 것이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보았다. 그는 몸을 중요시하고 지상의 행복을 우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쾌락의 근원은 우리 위(胃)에 있다고 한다. 인간은 속이 편해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속이 편하다는 것은 배고프지 않고, 포만감이 있거나 배에 가스가 차지도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면 몸이 행복하고 몸의 일부인 우리 뇌가 행복한 기억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식사는 대부분 물과 빵에 불과했다. 그는 사치품이나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피했다. 그는 사치스러운 음식과 물건들은 사용하게 되면 그 후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보았다. 우리가 가장 행복한 상태는 과식한 후의 포만감이 아니라 적당히 먹고 배고프지도 않고 너무 배부르지 않은 균형의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제력과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지혜(Prudence)라고 표현했다.

에피쿠로스는 성적인 쾌락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성적인 쾌락은 우리가 아주 운이 좋지 않는 한 대부분 우리에게 불행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뒤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성적인 욕망은 브레이크가 없는 전차와 같은 것이어서 우리를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일시적인 기쁨에 불과하고 마음의 혼돈이 가져다줄 수 있는 불행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 참여도 심각하게 경계했다. 정치적 생활이 사적 생활을 압도하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라고 보았다. 권력을 추구하다보면 우리의 성공을 질투하는 적을 만들 수밖에 없고, 결국 적들은 우리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스토아 학파 철학과 마찬가지로 평정심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그 본질적인 차이는 중심이 몸이냐 정신이냐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과국소민, 안빈낙도 사상과 비슷해서 정치나 큰 사업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잘 살고 너무 기름진 것 먹지 말고 채소나 과일 같은 것으로 소식하고 가까운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위와 장을 가볍게 비우는 것을 중요시했다. 몸과 마음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몸에 기반을 둔 철학이다. 그래서 그런지 에피쿠로스는 먹는 것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중요시한다. 너무 배고파도 너무 배가 불러도 우리의 마음은 혼돈스럽다. 고대 사회에서 인생의 경이로운 기쁨은 배고픔의 해결이다. 지중해 세계에서는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지중해 연안은 배고픔이라는 경계선에서 좀 더 유리한 쪽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사회는 빈곤이 일상화된 무자비한 노예경제사회였다. 가혹한 처벌과 강제이주 그리고 폭력은 삶의 일부였다. 이 모든 것들은 먹는 것을 더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에피쿠로스가 먹고사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한 것은 고대 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중해에서 서양 고대 문명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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