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아름다운 섬, 립시1)
나는 사모스의 오토바이 소리가 싫었다. 더 고요하고 한적한 작은 섬으로 가고 싶었다. 나는 다시 항구에 있는 여행사로 가서 오토바이가 없는 섬을 소개시켜달라고 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립시 섬을 추천했다. 립시 섬은 에게 해의 작고 조용한 섬이었다. 그녀는 립시 섬에는 오토바이는 없지만 누드 비치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서둘러 민박집 주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립시행 배를 탈 수 있는 피타고론 항구의 작은 포구로 향했다. 배를 기다리면서 이 배가 어디서 오고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아마도 인근 섬에선가 출발한 배일 것이다.
배에 올라가자 멋쟁이처럼 옷을 차려입고 사모스 주변의 섬으로 가려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비해 보였다. 나는 지식인의 눈빛을 갖고 있는 한 이탈리아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의 이름은 마르코였다. 왜 이렇게 이탈리아 사람만 배에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이탈리아의 해상국가들이 오스만 제국과 통상을 하면서 이 부근의 섬들을 조차했고, 2차 대전 당시에는 무솔리니가 이 근처의 섬들을 점령해서 그렇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마르코는 약혼자와 같이 배에 타고 있었는데 배가 요동치면 그녀를 꼭 붙들어 주곤 하였다.
배가 선착장에 가까와지면서 그 앞에 있는 가게에서는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대는 터키풍의 그리스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중독성이 있었다. 마르코와 그의 약혼녀 클라우디아도 이 섬에 같이 내렸다. 클라우디아는 고전 그리스어를 배웠기 때문에 지나가는 그리스 농부들과 서투르지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리스 현대어는 문법이 단순해지고 민중들의 삶을 표현하듯 투박한 생활 단어들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우리는 포도밭 사이에 난 좁은 길을 걸으면서 숙소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다시 선창가의 가게로 돌아왔다. 이 가게 2층에는 이 섬에 딱 하나뿐인 호텔이 있었다. 가게 앞에는 그 가게의 주인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라키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우리들은 그 남자의 집에 민박을 하기로 했다. 그 집에 들어가자 그 남자의 딸이 나에게 동양남자인데 키가 크다며 놀라워했다. 내가 그녀의 방을 빌려 쓰기로 되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그 방에는 아테네의 그림과 비잔틴 성화가 걸려 있었다. 나는 현대의 그리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문화보다는 비잔틴 제국의 역사나 튀르키예의 지배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고 느꼈다.
그 방의 앙증맞은 작은 나무 창에서는 지중해가 바로 보였다. 나는 그 창을 통해 지중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한밤중에 보이는 검푸른 바다에서 고독하게 항해를 하는 선원들을 내려다보며, 그 집에서 만든 포도주를 마시다 잠이 들곤 했다.그녀의 방에는 아기 예수를 앉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 걸려있었고 책꽂이에는 프로코피우스의 역사라는 책이 있었다. 나는 비잔틴 세계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나는 아시아가 그리웠고 한국어와 가까운 튀르키예어가 들리는 셀추크가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