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의 향기 8-2화.

작고 아름다운 섬 립시2)

by 굿닥터
7-2화. 립시_images.jfif 립시(출처: https://www.greeka.com/dodecanese/lipsi/sightseeing/)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마르코 커플과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섬의 포도밭 산등성이를 넘어 반대쪽으로 가면 비치가 있는 바다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우리는 거기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그리스 처녀가 이탈리아식 아침식사로 케이크에 카푸치노를 가져왔다. 그리고 테이블에 이탈리아어로 된 하루 지난 신문과 독일어로 된 카프카의 소송이라는 소설이 놓여 있었다. 소설책은 클라우디아가 읽고 있었고 신문은 마르코가 보고 있던 것이다. 신문에는 사담 후세인의 사진이 일면에 나왔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했다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마르코는 밀라노에 사는 지리과목 교사였는데 매우 진지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깊고 지적이고 이타적인 눈을 갖고 있었는데 그 눈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국제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살리기 위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용기 있는 젊은 의용군을 떠올리게 했다. 클라우디아는 이태리 중세 문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녀는 카프카를 좋아했다. 나는 그녀와 공통점을 찾았다. 지리적으로 떨어진 나라에 살고 있지만 카프카를 통해서 우리는 지식인 계층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르코는 트리에스테에서 크로아티아의 해안지방을 따라 유고연방을 여행한 후 오스만 투르크의 초창기 수도였던 소아시아 반도의 부르사를 거쳐서 에페소스에서 배를 타고 사모스를 지나 이 섬에 왔다. 마르코는 사회주의는 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고 연방에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겪으면서 사회주의의 끔찍한 시체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유고연방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민족주의적 갈등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내전이 일어날 것 같다고 예언했다. 사회주의는 지식인들이 만든 가장 위대한 행복추구수단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바라보고 있는 저 바다 건너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에피쿠로스의 행복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정신적 행복을 얻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사회적 강자에 속하는 지식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역사의 제단에 희생한다는 스토리텔링으로 수많은 지식인들을 빨아들여 이 역사적 실험에 뛰어들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선하고 프롤레타리아는 시대정신을 갖고 있다는 사회주의의 가정은 소련에서 공산당의 관료화와 폭력화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지배계급을 만들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결론을 소련의 패망으로 보여주었다.

나도 이들 커플과 마찬가지로 발칸을 건너서 터키를 거쳐 그리스에 왔다. 나는 비엔나에서 헝가리를 거쳐 루마니아를 따라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열차 화장실에는 집시들이 앉아서 유령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사회주의 패망이라는 지정학적 비극을 피해 발칸 반도 여기저기로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집시들의 슬픈 눈빛에서 사회주의의 마지막 임종을 목격했다. 기차에서 만난 몽고인 학생들이 감기가 심하게 걸린 나를 불가리아의 해외유학생 기숙사 단지에서 간호해 주었다. 루마니아에서 불가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루마니아 대학교수는 전자제품을 팔고 다니고 있었다.

그는 발칸을 떠도는 보따리 장사였는데 루마니아에서 차우셰스쿠의 독재를 저항해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감옥을 갔다 온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경제적으로 눈부시게 성공한 한국에서는 왜 젊은이들이 실패한 사회주의 사상을 추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발칸에서 사회주의는 독재와 부패 그리고 인권탄압의 의미를 갖고 있다. 텔레비전으로 한국 학생들이 길거리에 나와 데모를 하는 장면을 자주 보았는데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왜 사회주의를 따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각국의 시간은 다르듯이 역사의 시간도 다르다. 루마니아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주의가 기득권 보수 세력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이 사상이 진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사회주의 권력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므로 사회주의가 타락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민주주의, 휴머니즘, 사회주의, 인권, 공정, 자유 이런 추상적인 개념들은 그 시대의 독특한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용하면 다 거짓말이고 이런 개념을 가지고 떠들면 다 헛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때부터 개념만 나열하는 정치학보다는 그 개념의 형성과정과 그 개념을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의 갈등과 전쟁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카푸치노를 한 잔 더 시켰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프리카에서 꽃피운 비잔틴 문명 국가인 에티오피아 음료의 기원을 아세요? 이것은 콘스탄티노플의 갈타타 지역에 가까운 페라의 정원에 살던 베네치아 대사가 가져와서 카페 플로리나를 열게 되었고 교황은 이 이교도의 음료를 기독교인들이 마시지 못하도록 금지했지만 베네치아는 상인들이 만든 국가여서 이 커피를 못 마시게 하는 교황의 음모를 현명하게 물리치고 커피를 종교에서 해방시켜 우리 테이블에 가져올 수 있게 해주었죠. 베네치아가 건설한 식민도시들보다 이 커피의 자유가 더 소중한 것이죠”

이것은 이 한적한 누드비치에서 사회주의 패망이라는 주제 때문에 생긴 어색함을 메꾸기 위한 실없는 소리일 뿐이었다. 마르코는 발칸에서 전쟁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사회주의 데모가 처음에는 민주적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었지만 점점 더 민족주의적인 것으로 변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발칸의 복잡한 인종과 민족갈등에 비추어 언어와 종교적 충성심과 같이 생물학적이고 원초적인 본능이 전면에 나오게 되면 다민족 국가인 유고는 결국 내전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혼자말로 계속해서 사회주의는 죽었다고 얘기했다. 마르코는 깊고 신중한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 사회주의가 죽었다는 말은 내 마음 속에 더 와 닿았다. 클라우디아는 백사장으로 가서 수영을 하자고 제안했다. 클라우디아와 마르코는 아무도 없는 약간은 외롭고 차가운 립시의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 로마의 고대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미남인 마르코가 가느다란 허리의 클라우디아를 들어서 앉고 바다로 들어가서 껴안고 키스를 했다.

우리는 저녁에 다시 만나 그 선착장 앞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이 지방의 특산물이라고 하는 쌀을 집어넣어서 만든 부드러운 빵은 잊을 수 없는 향미를 갖고 있었다. 이런 빵을 만드는 섬의 음식은 다 맛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이 맞았다. 함께 여러 가지 해산물과 다양한 그리스 음식들이 나왔다. 나는 가지를 볶은 요리를 먹었고 오징어 튀김과 양고기 요리도 먹었는데 모든 요리에 올리브 기름을 사용해서 그런지 그런 음식을 먹을 때 마다 지중해를 더 음미할 수 있었다. 나는 소의 피처럼 붉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밤공기를 마시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선가 흥겨운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그리스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언덕위의 포도밭에서 들렸다. 그날은 립시의 포도주 축제가 있는 날이다. 마을사람들은 다 모여서 이 섬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마시면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다리를 흔들고 그러다가 한 사람이 중간에 들어와서 율동을 하는 그리스인 조르바식의 춤을 추었다. 5달러 정도의 그리스 돈을 내고 립시 섬이 그려져 있는 컵을 사면 밤새도록 와인을 마실 수 있다. 클라우디아가 피곤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일찍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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