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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Oct 24. 2021

19. 여행의 끝

핀란드 공항에서 경유 중 만난 첫 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또 다른 설렘의 시작인 것 같아. 엄마는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에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하기 시작했어. 겨울에는 마당과 정원에 할 일이 없으니 홀가분하게 떠날 거라고 했던 엄마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지. 가면 해야 할 집안일들이 뭐가 그리 많은지. 그래도 엄마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어. 돌아가면 그 누구보다 반가워하며 맞이해 줄 아빠가 기다리고 있어서 일까.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설레고 들떠 보였어. 나는 여행이 무사히 끝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면서 홀가분해졌어. 비록 엄청나게 좋은 숙소와 음식이 함께 했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엄마와 실컷 웃고 떠들고 투닥거리며 나름 재미있게 보낸 여행이라고 생각해. 엄마에게도 즐겁고 유쾌한 여행이 되었을까. 다음에 또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는 이제 아빠와 함께 오자고 이야기하더라고. 아무래도 이제 엄마와 아빠는 완벽한 서로의 반쪽이 되어 버렸나 봐.


 여행 첫날, 핀란드 공항에서 엄마가 아빠의 털신을 살지 말지 고민했던 거 기억해? 우리 돌아올 때 사자고 했잖아. 그런데 암스테르담에서 떠나는 비행기가 조금 연착이 되어서 경유지인 핀란드 공항에서는 조금 서둘러야 했어. 마침 우리가 내리자마자 일본 단체 관광객들도 우르르 내리는 거야. 저 사람들보다는 무조건 빨리 환승 게이트에 가야 한다며 면세점 코너와 털신이 있던 가게를 그냥 지나치며 뛰었어. 다행히 단체 관광객들보다 우리가 먼저 줄을 서서 환승 시간에 늦지 않았지만, 엄마는 아빠의 털신을 사지 못했다며 너무 슬퍼하더라고. 엄마가 튤립을 사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와 흡사 같은 표정이었어. 그렇게 슬퍼할 줄 알았으면, 첫날 미리 사둘걸 그랬어.


  청주로 돌아와 아빠를 만난 엄마는 언제 떠났었냐는 듯 벽난로의 장작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집과 마당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어. 여행을 다녀왔던 것이 마치 한 밤의 꿈이 되어버린 것 같았어. 15일 동안 오직 둘만의 이야기로 가득했던 여행을 뒤로한 채, 엄마와 나는 금세 현실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어.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작은 건축사무소의 인턴을 시작했고, 엄마는 아빠와 함께 아직 끝나지 않은 뒷마당에 대한 계획들을 세우기 시작했지.


  한동안 감동적인 여행의 후기를 나누거나, 스펙터클 했던 여행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시간 같은 건 없었어. 그래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두고두고 펼쳐보는 것을 보면 그만큼 네덜란드로의 여행이 단지 짧은 추억이 아니라, 엄마와 오랜 시간 함께한 기억으로 내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나 봐. 우리가 네덜란드로 떠난 이 여행은 낯선 곳에서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붙어 다닐 생각에 시작했지만, 오히려 서로를 마주 보게 되는 시간을 선물해 준 여행이었어.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엄마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을 잠시 접어두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 엄마가 가고 싶은 곳, 엄마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계속 궁금해하고 또 물어보고,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더욱 소중했어. 다음 여행에는 조금 더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길고 긴 편지를 마무리할게.


엄마를 사랑하는 딸내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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