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허리를 세울 동력은?

낙태 생존자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의 성장기 8_꿈

by 미안

#1. episode


"He likes a baseball"

그는 야구를 좋아한다.


이 문장을 잘 구사하는 아이. 그동안 원어민 선생님과 꾸준히 화상수업을 해 왔다더니 영어는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간단한 문법을 체크하기 위해서 "연석아, 여기 like에 s가 왜 붙지?"라고 묻자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 알고 보니 아이는 likes의 원형이 like라는 사실도, like의 뜻도 모르고 있었다.


또 하나.


How ( ) pencils ~

How ( ) money~


괄호 안에 many, much 중 무엇을 넣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유형의 문법 문제다.

아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답을 달았다. 심지어 중등졸업 영어 기출문제를 풀렸더니 96점이나 받는다.

국어 지문의 뜻이 이해가 잘 안 간다고 겨우 40점 턱걸이하는 아이가 이게 가능한 건가?

연석이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연석이는 영어 습득에 있어서도 공부하지 않아도 천재적인 능력이 있는 거 같았다.

거참 신기할 노릇이다. 내가 문법 위주로 공부해 온 세대라서 그런가? 어떻게 단어의 뜻도 모르고, 단어가 연결되어 문장이 된다는 기본적인 구성도 인지하지 못한 채 영어 문장은 구사할 수 있는 거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기 시작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난감했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문장 구성부터 be동사, 조동사 등을 알려주기 시작하니 아이는 어느새 자기 만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실 문법을 이렇게 가르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목적이 중졸 검정고시 합격이니 그냥 이대로 시험 봐도 아이의 영어 성적은 곧잘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배우던 시대와 영어 공부의 패턴이 이미 달라지지 않았는가. 내신이 중요한 아이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와의 줄다리가 버거웠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일반 학교를 진학시키겠다고 하고, 중학교 다니는 다른 친구들은 이미 습득하고 오는 기본 개념들을 모르고 적당히 시험 보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일단 단어 위주로 외우게 하자는 생각으로 나의 타협점을 찾았다.

현재, 과거, 과거분사형을 적어주며 기본 동사들의 기능과 형태를 외우게 했다.

아이의 저항이 시작되려는 찰나.

"연석아, 너 피아노 치잖아. 서양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나라에 가고 싶고, 그 나라에서 공부하고 싶고 그렇게 되게 돼 있어.

그러면 연석이한테는 영어 공부가 정말 중요해. 영어 공부를 기본으로 프랑스어와 독어와 이탈리아어와 이런 언어들도 공부해야지"라고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그런데, 놀랍게 아이가 이 말에 반응한다.

아이 눈에서 갑자기 반짝하는 무엇인가가 지나간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자세를 고쳐 앉는다. 단어를 외우기 위해 노트하는 손가락과 글쓰기에 힘이 실린다.


얼마 못 갈 각오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놀라웠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던 연석이에게 잠시라도 의지를 심어주고, 눈을 빛나게 한 것이 있었고,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에서였다.


#2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그럴듯한 직업이었을까?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었으니 명예였을까? 기자라는 사명감이었을까?

아니면

매달 통장에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 때문이었을까?


아이가 반응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포인트에 머물자. 또다시 나도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아이는 너무나 순수하게 꿈에 반응하고 움직이고 있다.

마냥 글쓰기가 좋고, 책 읽기가 좋아 국어국문과를 나온 나의 꿈은 원래 작가였다. 시를 좋아하고,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IMF시기 대학 시절을 보낸 나에게,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나에게.

돈을 벌 수 없는 작가의 길이란 사치였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기자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직업을 선택했고,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내가 이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대기 시작했다.

마땅한 명분이 없으면,의미가 없으면 움직이기 힘든 사람이라도 된 마냥

이직도, 직업도, 작은 결정 하나를 할 때도 스스로 납득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마치 세상에 대단한 정의감이라도 갖고 있는 것 같은 마음(사실은 나 하나 올바로 서기에도 벅차면서)을 명분으로

기자로의 삶을 살아왔고, 그 명분으로 치열했고, 뜨거웠다.


그러면서 그 시간 동안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들을 돕고 싶어 사회복지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럴듯한 명분으로 움직이던 내게

명분이 없어지는 삶은 참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어떻게든 나의 삶 한 순간 한 순간이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나를 묶고,

이 강박적 생각들은 의미 없게 느껴지는 나의 한 순간, 한 순간을 견디기 힘들게 만든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글을 쓰고, 월급통장에 찍히는 돈 한 푼 없이도 2시간 거리의 미혼모 기관을 돕기 위해 가는 나는 왜 이렇게 걷고 있는가.


수많은 인생들 가운데, 나의 작은 움직임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

이젠 모르겠다. 그 끝에 뭐가 있을지도 나는 모르겠다.

그냥 연석이가 꿈에 그러했듯 나는 연석이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2시간씩 연석이에게 오가는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으며

힘들어도 오늘 걸어갈 뿐.


분명한 건. 내가 연석이의 움직임에 기대가 되고, 가슴이 잠시 뛰었듯

이유와 동력을 알 수 없는 나의 이 움직임에 누군가의 마음이, 누군가의 심장이 반응할 수도 있겠다 하는 기대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연석아... 다시 힘이 없어지고, 다시 공부하기 싫어져도


하루, 아니, 10분의 허리를 다시 세울 꿈이 있으니 살 만하다.

너를 보며 나도 오늘의 무릎을 다시 일으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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