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자연스러운 이름으로...

낙태 생존자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의 성장기 9_"너를 포기하지 않아"

by 미안


ep1. 질문에서 인식의 한계가 드러나다


탤런트 신애라 씨와 인터뷰 중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입양하는 데 있어서 부모님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이 질문에 신애라 씨는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낳을 때 부모님 허락받고 낳나요? 아이를 낳는 건 그냥 축하받을 일이죠. 입양이라고 다르다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입양에 대해 나는 열려 있다고 생각했고,

입양을 할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었고,

입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존경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의 질문은 정말 너무나 일천(日淺)했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하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아이를 위탁해 키우고 있는 한 업체 대표님과의 인터뷰에서

"입양한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의 마음이 어떠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대표님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입장에서 아내 뱃속에서 10개월 있다가 출생된 아이를 안는 것과 입양하는 아이를 안는 건 다른 점이 없지 않겠어요? 그냥 내 아이라고 하니까 내 아이라고 인지하는 거고, 아이를 처음 안아볼 때의 그 감격은 똑같은 거죠.


그래. 그렇겠다.

10개월을 내 뱃속에서 품다가 낳은 엄마와는 입장이 다를 수 있다.

편견 없이, 그냥 처음 안아보는 '내 아이'라고 말하는 같은 아이일 수 있겠다.

그렇게 가슴으로 아이를 품은 부모들은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을 그렇게 어떤 프레임도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ep2. 사랑으로 묶인 부모와 아이들


연석이와 연석이 어머니, 아버지도 그러했다

.

연석이의 좋은 모습을 열심히, 어떻게든 찾아내 보려고 하고,

전 인격을 다해 가장 선하고 착한 모습과 에너지를 다 끌어올려보려고 애쓰는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연석이 앞에서 끊임없이 말조심을 하는 나와 달리

연석이에게 날 것의 언어를 사용하시는 모습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연석이를 힘겨워하는 모습도 주변 가정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처럼 연석이도 그랬다.

엄마, 아빠 앞에서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한다. 워낙 많은 아이들을 입양해 함께 키우고 있다 보니 엄마, 아빠로서 불가피하게 정해놓은 규칙(예를 들면, 함부로 다른 형제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다, 자신이 먹은 음식과 만든 쓰레기는 자기가 치운다. 다른 형제와 함께 먹어야 하는 간식을 혼자 꺼내 먹지 않는다 등등)을 지키는 것 말고는 별다를 것이 없다. 이런 규칙은 아이가 많은 집이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당연한 규칙일 테니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연석이를 가르치기 위해 이곳을 드나들면서 점점 '미혼모' '낙태생존자' '입양아' 등에 대한 모든 프레임과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이 무너지게 된다. 그냥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아이를 품은 부모'일뿐인 이들이다. 사랑으로 묶인 이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정을 이루고 함께 더불어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연석이 예민하고, 좀 많이 힘든 아이죠" 연석이 아버지의 토로에 사랑이 한가득 묻어난다.


ep3. 부모-자녀, 선생-제자... 그 자연스러움의 이름으로


반짝 열심히 하는 듯싶었던 연석이가 오늘 컨디션은 말이 아니다.

숙제 채점을 위해 20분 먼저 도착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인가? 인사도 없이 교실로 들어와 털썩 앉더니 그 다음부터는 또 정지 상태다. 절대 모를 리 없는 문제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 나도 이제 제법 여유가 생겼다. "연석아~ 너 오늘 진도 다 안 나가면 선생님은 너 피아노도 안 보내고 계속 가르칠 거야. 대신에, 빨리 잘 풀면 빨리 끝낼게" 괜스레 자존심 부리며 콧방귀도 안끼는 척하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문제를 풀고 있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연석이가 자꾸 말을 안 듣자, 연석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께서 조용히 이야기를 건네신다. "그동안 연석이 가르쳐주시려고 오시는 선생님들 몇 분 계셨는데, 다 연석이한테 질려서 도망가셨어요. 선생님 연석이 잘 봐주세요. 죄송해요. 부탁드려요"

아 그랬구나... 마음 한편에서 지잉~하고 울림이 생긴다.

많이 불안했겠다. 그 느낌 별로였겠다. 누군가가 나에게 질려서 도망가버리는 그 느낌. 너무 싫었겠다.




가슴으로 태어난 아이들, 가슴으로 아이를 품은 부모들이 이 기관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며, 서로를 포기하지 않듯이, 나도 연석이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바뀌는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처럼 나도 자연스럽게 상황이 허락되는 그때까지 연석이와 함께 해야겠다.


그러려면

나 역시도 이 곳 부모님들처럼, 아이들처럼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애써 좋은 선생님인척, 애써 나는 착한 사람이기에 이 곳까지 오고 있는 사람인 척 옷을 입으면 절대 연석이와 함께 갈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가장 ' 나 다운' 자연스러움이 필요하다.


가장 자연스럽기에, 서로가 각자 가장 '나 답기'에 서로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기관의 '가족'들. 그렇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고, 있는 그대로 주고, 서로 품는 이 가족들의 모습 속에 이렇게 가장 '나답게' 존재할 나 자신의 모습도 조심스럽게 그려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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