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품자 갈등이 찾아왔다

낙태 생존자 천재피아니스트 소년의 성장기 7_침묵

by 미안

#1. 침묵


좁은 공간에 책상 하나 두고 나란히 앉은 아이와 나.


아이는 20분 가까이 말이 없다. 아이의 침묵이 버겁고 무겁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다고 듣긴 했으나 그런 유형의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는지라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아이의 가는 숨소리까지 가슴을 저미게 한다. 아이의 보송한 솜털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도 눈에 거슬린다.


미동도 안 하고,

연필을 쥔 손 그대로 문제집 위에 올린 채 정지 상태다.


이제 10대를 갓 벗어난 작은 아이의 기운이 나를 짓누른다.

아이가 나를 침묵에 갇히게 한다. 심박수가 요동치고, 코티졸은 마구 분비된다.

이 아이는 나를 벌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저 해당 단원을 가르쳤으니 문제를 풀어보라고 말한 것뿐인데,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2. 2시간의 인내


섣부르게 입을 열었다가는 주워 담을 수 없을 칼 같은 모진 말들을 내뱉을까 봐

나 조차도 숨을 꼴딱꼴딱 먹으며 침묵을 삼켜낸다.

이럴 때 입을 열면 늘 비수를 꽂게 된다.

기자 20년의 세월은 내 입에 이렇게 촌철살인한 비수를 장착시켰다.

언제나 그렇듯 입을 닫고, 바보 같은 웃음으로 상황을 덮어야 칼을 쓰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또한 쉽지 않아 허탈한 웃음도 내뱉기 어렵다.


사춘기가 극에 달한 듯하다, 아이의 저항이 거세진다.

계획에 따라 몇 개월 후면 검정고시를 봐야 하기에 진도를 빨리 빼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따라오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떠한 말도,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은 채 침묵과 버티기로 2시간을 때웠다.


#3. 내 자식과 남의 자식


나는 나 자신이 꽤나 관대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리 고생하지 않았기에 남자아이 한 명 정도는 충분히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지금껏 그래왔다. 항상 이 아이의 편이 되어주고, 이 아이에게 "맞아~ 네 말이"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다. 꽤나 잘해 왔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버거운 상황에 벌써 직면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보낸 채 버스에 몸을 싣고 또 두 시간을 집으로 가는 길.

그렇지 않아도 예민해져 있는데,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시는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거슬린다. 자식 이야기, 손주 이야기를 하시고 계셨다. 신경이 너무 거슬려 에어 팟으로 소리를 차단하려는 순간이었다.

"남의 자식 이야기라고 그렇게 쉽게 하는 거냐? 남의 자식 이야기는 쉬운 법이지 원래"

뭔가 잘 이야기가 안 통한 듯 푸념 가득 내뱉으시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귀에 꽂힌다.


아...


세상이 말하듯, 나이스하고 쿨하고, 아이의 편이 되어주고, 아이를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그 아이가 남의 자식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자기 자식의 단점을 가장 잘 알고, 자기 자식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부모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란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겉으로는 애써 그리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 부모의 마음은 아마 새까맣게 타들어 갈 것이 분명한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 연석이를 위한 기도도 함께 하고 있었고, 연석이에 대한 이야기가 입에서 끊이지 않고 있었고, 연석이는 어느새 내 삶 가운데 깊이 들어와 있었다. 연석이의 어떠함에 내 마음이 무너지고 버거운 건 내가 연석이를 이미 마음으로, 가슴으로 품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는 어느새 내 마음에 깊게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지나친 감정의 소모다.

다시 그 마음들을 추스른다. 역시 난 새내기 사회복지사가 맞다.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복지학에서는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 간에 감정 교류와 관련, 비에스텍의 7가지 관계형성의 원칙을 가르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클라이언트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전문적 거리를 유지하며

비심판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난 연석이와 함께 그 과정을 걸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연석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연석이에게 너무 몰입돼 있던, 연석이를 나도 모르게 심판하고 있던 그 마음을 주섬주섬 추슬러 거둔다.


내가 화가 나고, 마음이 두근거려서는 안 된다.

다음 수업 때는 7가지 관계형성의 원칙, 꼭 잊지 않고 장착하고 가리라 다짐한다.

나는 전문가니까.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다.

우리의 성장이 아름다우므로 오늘이 푸르다.











작가의 이전글틀이 사라졌다. 줄다리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