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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련 Jul 15. 2021

시절이 수상헐 땐 시절이 질이여

- 현명한 바보로 사는 법 [가까운 말들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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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말들03]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방언입니다. 그래서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말은 곧 방언입니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온기, 향기, 열기를 짧은 글 속에 담아봤습니다. 우리 삶의 힘이 될 수 있는 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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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유. 워디 불났슈? 연락두 읎이 불쑥 먼일유?”

“삼 년 만이네요. 다른 데로 옮기셨을까 그만두셨을까 걱정 많이 했어요.”

“욂기긴 어디루 욂겨유. 욂기문 손님들헌티 일일이 전보치야잖유. 울집 욂겼다구. 그거 구찮아서라두 뭇 욂겨유. 그만두면 누가 밥 믹여 주간유?”

“식당도 옛날 그대로네요.”

“그럼 늘쿠겄슈? 늘쿠문 내 일만 느는디. 글타구 남 두구 일허문 남 존 일만 시키는디?”

“참, 한결같으세요. 말투도.”

“그럼 이 나이에 월사금 내구 영어 배겄슈? 꽁꼬로 엄니헌티 밴 우리말 쓰야지. 쏠님두 똑같구문. 말 연구하는 교수래서 그새 딴 나라말루 할 중 알었는디......”


충남 서산의 팔봉산 입구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두 살 터울의 ‘에쎄’ 형님, 늦게 맺은 관계는 대개 일 때문인데 느지막하게 시작한 취미 목공 때문에 알게 된 형님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만나다 보니 멀쩡한 이름 놔두고 ‘닉넴’으로 부른다. 그래도 사연이 깊은 ‘드라이쏠’에서 다 떼 내고 그저 ‘쏠’이라 날 부른다. ‘에쎄’는 카페 가입할 때 외국말로 별명을 지어야 좀 있어 보일 듯해서 눈앞의 담뱃갑을 보고 지었단다.


서산 팔봉산의 봉우리 중 하나, 서산 팔봉 전체가 조용하고 깨끗해서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나이가 많으니까 형님이지 생긴 모습, 일하는 모습, 특히 만드는 목공예품을 보면 새파란 청년이다. 그런데 말은 형님, 삼촌, 할아버지를 넘어 증조할아버지뻘이다. 이렇게 느물느물 충청도 말을 늘어놓는 이는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 속 등장인물들 빼고는 없다. ‘왔슈?’ 한 마디면 될 것을 열 마디 이상 늘어놓는다.


“왜 다꾸 쳐다 보유? 여름이라 난로도 안 때니 얼굴에 숯검댕 묻은 것두 아닐 틴디.”

“……”

“시저리 같유? 이런 시절엔 시절이 질이유.”

“시절? 시절이? 그게 뭐유?”

“엄매? 맨날 사투리 조사 댕기믄서 것두 물류? 그걸 몰름 쏠님이 시절이쥬.”

“아니 시절이든 시저리든 그건 아는데 왜 시절이라 하나구유.”


금세 내 말도 충청도 물이 들어간다. 아니 본래 쓰던 말이었으니 충청도 말이 배어 나온다. 늘 궁금했던 말이어서 물어보는 것일 뿐이다. 당진, 서산, 태안, 예산 등지를 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듣게 되는 말인 ‘시절’ 혹은 ‘시저리’가 궁금해서이다. 뭔가 덜 떨어지는 짓을 했을 때, 어리숙해 보일 때 여지없이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쓰는 이들도 본래의 말이 ‘시절’인지 ‘시저리’인지 잘 모른다. ‘으이구 이 시절아.’나 ‘걘 좀 시저리여.’와 같이 둘 다 쓰이니 그렇다.


시절, 혹은 시저리의 고향 내포, 예부터 이 지역을 내포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에서만 '바보' 대신 이 말을 쓴다.


 충청도 말에도 ‘바보’가 있지만 왠지 책 속에 있거나 서울 깍쟁이들이나 쓰는 말처럼 여겨진다. ‘등신’을 쓰기도 하는데 너무 심하게 느껴진다. ‘병신’이 변한 ‘빙신’도 쓰는데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말 함부로 써서는 봉변을 당하기 쉽다. 이럴 때 맘 편하게 쓸 수 있는 말이 ‘시절’ 혹은 ‘시저리’다. 말하는 이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할 수 있어 좋고 듣는 이는 상처 받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어 좋다. 타지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니 남들 몰래 쓰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에쎄 형님이 시절이? 절대 아니다. 저런 형님 있으면 뭐든지 척척 알아서 챙겨주니 걱정이 전혀 없을 듯하다. 동네에 저런 청년(?) 하나 있으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듯하다. 살아온 내력, 해 온 일이 꽤 화려하다. 누군가는 ‘산자락에 처박혀 칼국수 장사나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선녀같이 고운 형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만 봐도 예사 나무꾼은 아니다.


“시저리 맞죠. 여전히 나무 그릇 만드시는 걸 보니. 사는 사람도 없고 여기저기 줘서 남 좋은 일만 시키고.”

“그런 내가 쇠그릇 만들겄슈? 이깝이 있어야 괴기가 꾀쥬. 내가 그렇게 만들어서 주니 쏠님두 여기 다시 찾은 거 아뉴.”

“그런데 나무 그릇 만든다고 그렇게 나무를 죄다 파내면 아깝지 않아요? 난 그래서 못하겠던데.”

“그래서 시절이라구유? 덜어내야 채우쥬. 그릇이 비었으야 먹을 걸 채우쥬. 파낸 나무 어디 가겄슈? 어차피 다 흙 속으로 갈 건디.”


나무로 깎아 만든 그릇의 최고봉인 스님들의 발우, 그런데 그릇 안팎의 빈곳은 나무를 죄다 깎아내서 만든 것이다.


에쎄 형님의 목공 주전공은 목선반이다. 나무를 빙글빙글 돌리며 칼을 대서 깎아내는 나무 그릇을 만든다. 그런데 나무 그릇을 만드는 작업은 ‘보태기’의 작업이 아니라 ‘덜어내기’의 작업이다. 나무를 이리저리 잘라 붙여서 뭔가를 만드는 것이 보태기의 작업이라면 나무의 속과 겉을 다 파내야 하는 이 작업은 덜어내기의 작업이다. 나무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먼지도 심하게 날려 피하고 싶은 작업이다.


그런 작업에 빠져 있는 에쎄 형님의 말에 뼈가 있다. 나무 그릇은 많이 덜어낼수록 많이 채운다. 아깝다고 덜 덜어내면 덜 채워지니 그게 시절이다. 덜어낸 칼밥은 닭장 바닥에 깔아준다. 달포 가량 지나면 닭똥과 잘 섞여 이만한 거름이 없다. 덜어낸 나무는 그렇게 흙 속으로 다시 가니 너무도 경제적인 순환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느물느물 뱉어내는 이는 결코 시절이 아니다.


“땅 보러 왔슈? 기냥 가유. 땅은 농사짓는 사람이 임자여야지 펜대 굴리는 사람이 탐내믄 봉변 당해유. 혹시 땅 팔러 왔슈? 먹구 살 거 있이믄 기냥 둬유. 땅은 도깨비두 뭇 뗘 가유. 기냥 냅두는 게 질이유.”


삼 년 전 가을날 팔봉산 주변을 차로 한 바퀴 돌 때의 풍경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노년에 한적한 곳에 정착하고 싶다면 딱일 그런 곳이어서 농담 삼아 물었다. 고향에 조금 있는 땅을 팔아 팔봉의 땅을 사면 어떻겠냐고. 본전은커녕 한 시간 동안 설교만 들었다. 땅에 욕심내지 말라는. 그때 욕심냈으면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경찰서에 불려 다녔을지 모를 일이긴 하다.


“나뭇결 님 공방에 가 봤어요? 기가 막히게 잘 꾸며놨던데.”

“비트코인인지 먼지 팔아서 대박 났대문서유?”

“나뭇결 형님이 하잘 때 같이 하지 그랬어요. 그럼 같이 대박 났을 텐데.”

“그거 몰류? 잃는 사람이 있어야 따는 사람두 있는 거? 나뭇결 님이 딴 돈은 워디서 왔겄슈. 어떤 시저리가 잃은 돈이겄쥬? 나더러 그런 시저리가 되라구유?”


역시 본전도 못 건질 대화였다. 역시 취미 목공으로 알게 된 이 중의 하나가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돌았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최신식 기계와 설비로 공방을 차렸다. 부러울 법도 한데 이 시저리 형님은 시절 같은 소리만 계속 늘어놓는다.


“예수님 본업이 뭔 중 알유? 목수유 목수. 비트코인이 아니라 그 할배에 할배가 판을 치더라두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을규. 기도할라구유? 아뉴. 나무 만질 목수가 필요해서유. 그러니까 이런 시절엔 칼국수 쓸면서 나무 파내는 시절이가 질이유.”


정색을 하고 말을 하니 웃자고 하는 소린지 진심인지 잘 모르겠다. 확실히 저 형님은 시저리다. 나름대로 도가 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깊고 무겁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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