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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련 Jul 13. 2021

오래오래 앉으세요

- 노년의 삶에 띄우는 축사 [가까운 말들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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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말들02]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방언입니다. 그래서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말은 곧 방언입니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온기, 향기, 열기를 짧은 글 속에 담아봤습니다. 우리 삶의 힘이 될 수 있는 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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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틀림없이 이 노래가 나와야 할 시점이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연길시에 사는 박 아바이(박씨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에 가족들과 친지들이 모였다. 밥과 술이 돌고 적당히 분위기가 오르자 당연한 순서로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다. 박 아바이의 삼남일녀, 그 수에 곱하기를 두서너 번 해야 할 만큼의 손자와 손녀,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까지 모두 나서니 좁은 무대가 꽉 찬다. 그런데 울려 퍼지는 노래는 전혀 딴판이다.


오늘은 온 집안에 기쁨이 넘치는 날

어머니를 높이 모신 환갑날이랍니다

아아아아 어머니 오래오래 앉으세요


모두들 아는 노래인지 무대의 가족들은 물론 자리에 앉은 모든 이들이 ‘떼창’을 한다. <아빠의 청춘>밖에 모르는 몇 사람을 빼고는.


고생 끝에 락을 보신 우리 어머니

넘쳐나는 이 술잔을 어서 받으세요

아아아아 어머니 오래오래 앉으세요


‘고생 끝에 락’에 이르러서는 박 아바이 내외는 물론 가족들까지 눈물을 글썽인다. 방언조사를 하는 기간 내내 들었던 박씨 소년의 기구한 이야기, 어렵사리 만나 가정을 꾸린 박씨 아즈바이(아저씨)의 짠내 나는 삶이 떠올라 이방인의 눈에도 눈물이 살짝 비친다.


노랫말 속의 아버지들은 서럽다. ‘어머니’와 ‘엄마’를 그리는 노래는 수없이 많은데 아버지들은 <아빠 힘내세요>와 <기러기 아빠>로 만족해야 한다. <아빠 힘내세요>를 들으면 제목 그대로 힘이 나야지만 노랫말 속에 담긴 아빠의 모습이 짠하다. <기러기 아빠>는 제목과 달리 노랫말을 보면 아빠가 세상에 없다. 그리고 현실의 ‘기러기 아빠’에게는 가족이 곁에 없다. 그런 아버지가 늘그막에 듣는 노래가 <아빠의 청춘>인데 그 가사가 고약하다.


이 세상의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 영감인데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영감’이라 부른다. 심지어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아직까지 청춘’이라고 항변하며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다. 환갑부터 칠순, 팔순 잔치까지 빠지지 않고 나오는 노래인데 굳이 노랫말을 뜯어보자면 그렇다. 물론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부르고 듣지만.


그런데 중국 땅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다른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은, 단순하고 쉬운 노랫말의 노래이다. 1981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1966년에 나온 <아빠의 청춘>보다 훨씬 더 청춘이다. 쉽고 단순하지만 그래서 국민가요, 아니 ‘민족가요’가 되었다.


부르고 듣는 가족들은 ‘고생 끝에 락을 보신 우리 어머니’에 이르러 감정을 최대로 끌어올리지만 방언조사를 온 이방인의 귀에 꽂힌 것은 바로 ‘오래오래 앉으세요’ 이 부분이다. 왜 하필이면 ‘앉으세요’일까? 순간적으로 ‘아침에는 네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떠오른다. 


기다, 걷다, 힘들게 걷다. 스핑크스가 포착한 사람의 삶은 이렇다. 그런데 스핑크스는 틀렸다. 헤엄치다, 눕다, 기다, 걷다, 뛰다, 걷다, 눕다. 이것이 인생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헤엄치다 세상에 나와서는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후 기를 쓰고 기다가 좀 더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 다시 천천히 걷는다. 그마저도 어려우면 눕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앉다’가 묘하게 이 사이에 끼어든다. 기다가 앉으면 편안하다. 걷고 뛰다가 앉으면 역시 편안하다. 서서 일하는 직업보다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더 선호하는 이유 역시 편하기 때문이다. 바쁜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앉다’는 휴식의 순간이다. 주저앉는 것만 아니라면 어느 자리에든 앉는 것은 역시 삶의 계단을 오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절묘하다.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래오래 서세요’라고 하는 것은 짐을 지우는 것이다. ‘서다’는 곧 ‘일하다’의 의미이니 노년에도 밥벌이를 하라는 말이다. ‘오래오래 누우세요’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눕는 것이 편하다지만 나이가 들어서 눕는 것은 곧 아파서 눕는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은 오래오래 아파서 자리보전하고 있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오래오래 앉으세요’는 다르다. 노랫말대로 고생 끝에 락을 보았으니 이제는 일 안 하고 편히 쉬어도 좋다는 뜻이다. 아파서 눕지 말고 건강하게 남은 삶을 누리라는 말이다. 편안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뒷세대들을 바르게 이끌어 달라는 바람이다. 오래오래 앉는 것은 그래서 좋다.


현실에는 오래오래 서고 싶은 이들이 많다. ‘아직까지 청춘’이라 여겨지는 예순 언저리에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이들이 그렇다. 아직은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을 못하게 하는 게 억울하기도 하다. 성장이 느린 후손들을 캥거루 뱃속에서 더 키우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으니 걱정이 될 법도 하다. 아무래도 후자 때문에 전자라 우기는 것일 테니 더 서럽다.


그래서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르신들의 설 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쉴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면 앉기를 마다할 이가 없다. 그것은 후손들의 몫이기도 하고 사회 전체가 만들어야 할 복지 체계의 몫이기도 하다.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면 ‘오래오래 앉으세요’는 노녀의 삶에 띄우는 최고의 축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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