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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온 Jan 08. 2024

가족 사진, 오글거림의 미학

이래서 돈 주고 찍나 보다

가족 사진을 찍을 핑계는 널리고 널렸다. 가족이 늘어서, 날이 좋아서, 이 좋지 않아서, 100일이라서, 입학, 졸업이라서, 환갑, 칠순이라서, 크리스마스라서, 여행 왔으니까. 오늘을 특별하게 기리기 위해서 또 한 방 박는다.


이 날, 지금 찍지 않으면 추억도 기억도 다 사라질 것처럼 순간을 고정해 두려 한다. 두고두고 볼 지, 어딘가에 처박힐지 사진의 운명은 모르지만, 찍힘 자체에 의의가 있다. 가족 사진은 자식의 도리이자 다복한 가정의 과시의 기능이 커서 부모님의 선물로 헌사되거나, 부모님의 강요로 만들어지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기념만 되면 되니까 셀카나 삼각대로 우리끼리 조촐하게 찍어도 되련만 자의로는 쉽지 않은 게 또 가족 사진이다. 이 날을 꼭 박제하리라는 엄숙한 의지, 가족들을 집합시켜 몇 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에너지, 에 딱 드는 한 을 건지는 찰나의 기술까지 온 우주의 기운이 필요하다.


누군가 총대 매고 나서야 할 텐데, 그 누군가는 보통 엄마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 집 엄마인 나는 그럴 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온 가족이 나온 사진이 별로 없다. 가족 사진 찍기를 선언했다가는 왜 한 데 모여 요상한 포즈로 찍어야 하냐 마냐 입이 이만큼 나오고 원하는 그림도 안 나올 게 뻔하다. 그냥 내가 찍사를 자처하고 둘이나 셋만 되는 대로 찍어 주는 게 속이 편했다.


우리 집 사정을 알았는지 잠깐 들렀던 카페에서는 주문한 커피와 사진 촬영 쿠폰이 함께 나왔다. 3층에서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 카페였다. 전액 무료는 아닐 거라는 직감으로 비용을 물어봤지만 대부분의 사진관이 그렇듯 작가님과 상의하세요 답이 돌아온다. 인 얼굴이 나온 사진 앞에서 가격 흥정은 힘을 쓰지 못하다는 걸 아는 뻔한 상술이다.


불안한 예감은 접어 두고 내 발로 찾아간 것도 아니고, 가족 사진 찬스가 제 발로 굴러 들어왔으니 안 찍을 수 있으랴, 가족들을 불러 모아 무료 쿠폰을 놓칠 수 없으니 진격 개시를 외친다. 순전히 나의 의지가 아니라 쿠폰의 의지라는 것을 강조해서 거부감을 줄이고 반대 의견 차단에도 성공한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앞으로 암만 좋아져도 인생 네  기기나 포토 스튜디오, 사진 작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이 찍어 주는 사진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작가님의 말 한마디에 세상 순한 양 4 마리로 바뀐다. 사진 찍을 때 엄마의 권위보다 중요한 건포토그래퍼의 지시이다.


작가님의 통솔 아래 앉아 보세요. 붙어 보세요, 하트 해 보세요, 쑥스러운 포즈도 자연스럽게 척척이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 온갖 안면 근육이 다 동원된다. 온 가족이 딱 붙어서 이런 스킨십이 얼마만인지, 처음 짓는 것 같은 행복이 만한 표정은 얼마나 신선한 지 없던 정도 샘솟을 광경이었다. 가족들은 이리 모였다 저리 모였다 흩어졌다 붙었다 무표정이었다가 멋쩍게 웃었다가 오케이 사인을 받고 촬영을 끝냈다.


작가님의 집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버님이랑 아들을 찍을게요 어머님과 딸 한 번 찍을게요. 마지막으로 아버님과 어머님만 나오세요. 짝꿍을 바꿔가며 새로운 콘셉트를 해 본다. 부부컷을 찍을 때는 애들 앞에서 부끄러워서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얼굴을 맞대고 포만 해도 쑥스러워서 간질간질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남편은 그걸 사이라도 읽었나 보다. 당신이 좋아 죽겠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어색한 포즈에 눈까지 질끈 감은 그 사진이 정말 맘에 든다며 흡족해했다. 그렇게 해석하고 자기라도 행복하면 난 괜찮아. 그게 맞는 것으로 생각하자. 진실은 저 멀리에 묻어 게.


예쁘게 보정해 주시겠다는 포토그래퍼에게 막내는 우리 엄마 주름살 좀 없애 주세요 한다. 너는 자라고 나는 늙고 그 세월이 움푹 패인 주름에 있다는 것을 그것들은 더 깊어질 뿐 사라지진 않는다는 걸 네가 어찌 알리. 탱탱하고 매끈한 피부에 가식 하나 없는 포즈, 근심 없는 표정들, 후광이 비추는 너는 모르겠지.


너를 낳고 키우고 지지고 볶아 내느라 메마르고 쭈글 한 피부, 가식 덩어리의 포즈, 웃어도 웃는 게 아닌 표정, 빛이 바랜듯한 배경의 애미 나이쯤 되면 알런가 몰라. 너는 평생 몰라도 되니 그냥 열 살에 머물러 주면 좋겠다. 천진한 그 자체로 빛이 나니까, 그 빛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지난주에 시작한 이 글을 이번 주까지 끌고 온 것은 오글거림 때문이다. 이 글을 쓰려면 가족 사진을 보고 그때 가족들이 어땠나, 무슨 감정이 들었나 상기해야 하는데 그게 참 못할 노릇이다. 내 모습을 보는 것부끄러운데 살 맞대고 사는 생활인이 아닌, 심하게 다르게 박제된 가족을 보는 게 어색하고 간질 간질해서다.


멋있는 척하는 남편, 의젓해 보이는 아들, 세상 밝아 보이는 딸, 어색하지만 행복하다는 나까지 (실제 반대이기도 한) 내가 알던 가족의 모습은 아니니까. 오늘에야 꺼내 보는 사진은 그냥 오글오글하다. 제삼자가 본다면 참 행복한 가정이네, 가족이 잘 나왔네 했겠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우리에게는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겁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 내는 네 명의 하루하루가 있다 사진 속에는 기뻐하고 즐겁고 사랑하는 순간만 있다. 그 장면을 박제해서 얻어 낸 것이 쑥스러움을 참아대가가 아닐까 싶다. 화가 나고 슬프고 밉고 욕심이 나는 그 순간에도 이 사진을 보면서 그래 우리 이렇게 행복했었지. 그래 다시 행복해야지 다짐하게 되는 부적처럼 쓰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글거리지만  간직해 볼 테다. 간지럽지만 똑똑히 마주 볼 테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 사진 속에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 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내 젊은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엄마 꽃 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김진호 노래 '가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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