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그런 딸
"제 정신이야? 다치거나 진통 오면 어쩌려고. 무모한 거 아냐?"
배우 이시영이 임신 9개월에 내장산 등산을 해서 이슈가 되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몸 관리를 놓지 않던 그녀다웠다. 소식을 들은 나만 가슴이 철렁했다. 만삭의 몸으로 무리이지 않았을까, 태아도 괜찮았을까. 혹여 컨디션이 안 좋았다면 다른 등산객에게 민폐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배려가 부족하지 않았나, 출산 후에 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염려와 질책 그 어디쯤에 가 닿았다. 그녀가 임산부가 아니었다면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겪어 본 선배 맘으로서 만일의 사태가 상상 되어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펼쳐지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복잡한 심경이 가시기도 전에, 속 마음에도 취소 버튼이 있다면 바로 누르고 석고대죄를 하고 싶었다. 아차하고 생각 난 일화에서, 그 무모하고 지탄받아야 할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임신 8개월에 한라산 영실코스까지 갔다 온 용감무쌍한 애미요, 우리 둘째로 말할 것 같으면 태아 때 한라산에 오른 남다른 아이다. 이시영처럼 평소에 체력을 키워서, 제대로 장비 갖추고, 사전 계획 하에 오른 것이 아니고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매년 제주로 여름 휴가 가던 우리 가족은 그 해에는 색다른 거 없나, 한라산 구경이나 가볼까, 잠깐 산책이나 하고 오자하고 가뿐하게 한라산 입구에 당도한다.
정상을 향해 열심히 오르는 등산객들 사이로 '조금 걷다 내려 올 거에요. 마실 나왔어요' 온몸으로 말하듯 행색부터 튀었다. 나풀거리는 블라우스에 통굽 크록스를 신은 8개월 임산부, 그 옆에 슬리퍼 질질 끌고 나온 동네 아저씨 행색의 남편, 까불까불 나대는 세상아 덤벼라 모드의 4살짜리 첫째 아들. 등산화에 등산복 하나 걸치지 않은 우리는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영실코스도 만만하지 않으며, 그 곳이 우리가 낄 자리가 아니었음 을.
영실 코스의 대부분은 매끈한 데크로 되어 있어 착장 불량의 우리 가족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었다. 마치 준비가 안 된 우리에게 깔아 준 레드 카펫 같아서 뒷동산이라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어느 새 오르다 중반을 넘었나 보다. 우르르 따라 오르는 분위기가 한 몫 했고, 가을처럼 메마른 가지가 나왔다가, 해외같은 푸르른 초원이 나왔다가 세상 처음 보는 풍경에 지루할 틈이 없이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정상이 목전이었다.
이제 결단을 해야 했다. 등산이냐, 하산이냐? 애초의 한라산 산책이라는 목표는 달성했으니 내려갈 것이냐, 이왕 온 것 끝을 볼 것이냐? 고갈되지 않은 체력은 괜찮다 올라가라 하고, 남산만한 배는 임산부가 이만해도 잘한 거라며 무리하지 말고 내려가라 했다. 똘끼 충만한 우리 부부는 이상한 포인트에서 단합이 잘 되곤 하는데 여기까지 온 게 아깝잖아, 끝까지 가즈아! 이왕 온 거 못 먹어도 고!를 외쳤다. 나와 남편은 일심, 나와 둘째는 동체로 산책에서 등산으로 태세 전환을 했다.
다시 전진이었다. 임산부가 등산하는데 쓸데없이 노빠꾸 정신까지 동원하여 발이 닿는 데까지 높이 가보기로 한다. 다행히도 오며 가며 마주치는 등산객들은 내가 이시영에게 했을 법한 말들은 가슴 속 깊이 넣어 주셨고, 대신 격려와 응원을 보내 주셨다.
"임산부가 대단하네. 건강한 아이가 나오려나 봐요."
말 없이 박수를 쳐 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누군가 임산부 주제에 가지가지한다고 했다면 기가 죽어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철 없이 오른 임산부를 많은 분들이 산처럼 품어 주시고 미소로 화답해 주시고 멋지다며 치켜 세워 주셨다. 응원에 힘 입어서 백록담 바로 밑의 윗세오름까지 갈 수 있었다. 그 곳 대피소에서 먹었던 컵라면은 임산부에게 다시 없을 최고의 만찬이었다.
다행히 남벽분기점까지 가는 길은 폐쇄되었고, 이 코스의 정상까지 간 셈이었다. 그럭저럭 잘 올라왔으니 내려가는 건 더디였지만 더 만만했다. 다시 덕담과 박수를 받으며 쉬엄쉬엄 내려 오니 여름 해가 지고 하루가 다 갔다. 호기심에 구경 한 번 갔다가 6시간 정도 산에 있었나 보다. 제 3 세계에 발 끝만 살짝 담갔는데 시공을 초월해서 쑥 빨려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묘한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2달 뒤 둘째 딸이 태어났다. 한라산으로 태교한 이 아이가 심상치가 않다. 돌이 지나고 성깔이 나오는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난리가 났다. 한 번은 시장에서 볼 일을 보고 오던 남편이 멀리서 땅 바닥에 누워 떼 쓰는 아이를 보고서 저 아이 엄마는 참 힘들겠네 했는데 그게 나였다. 패피를 자처하는 딸내미는 한 여름에도 인조 모피 조끼를 걸치는가 하며(팔이 없으니 반팔이 란다), 호피 무늬 옷들도 즐겨 입는다. 때로는 그것도 위, 아래 세트로 깔맞춤까지 해서 말이다. 남들의 시선이 어떻든 본인만 좋으면 그만인 아이였다. 학교 갔다 오는 아이를 보면 치타가 탈출했나 싶어서 웃음이 난다.
좋아하는 동물들도 어쩜 치타, 표범, 호랑이류이다. 호피 무늬 옷을 입고 동물원에 가서 표범을 구경하는 딸이 남의 아이였다면 아이고 귀여워, 깜찍하네였겠지만 내 애라서 웃긴데 슬프고, 슬픈데 웃기고 표정이 애매하다. 유리창에 딱 붙어서 호랑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다니며 눈 싸움까지 하는데 겁이 하나 없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고집이 황소같고 옷도 과감하면서 양말부터 속옷까지 네 맘대로 다 골라 입어야 직성이 풀리는 너, 어머님이 누구니?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끔 남편에게 하소연한다.
"그 때 한라산에 가는 게 아니었나봐. 백록담 호랑이 기운을 심하게 받았잖아. 어떡하지?"
만약 둘째가 의견이 없고 우유부단하고 개성도 없고 겁도 많았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 가졌을 때 한라산에 가서 기운이라도 받았어야 했나봐"
가끔은 버겁지만 기운 팔팔, 위풍 당당, 불도저같은 미워할 수 없는 매력 덩어리의 너. 순두부 같은 나를 닮았으면 그건 그것대로 속이 많이 터졌을 것 같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속이 타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다. 나와 한라산의 합작품, 똥고발랄 내 사랑 뽕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