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나는 그 사람을 아직도 잊지 못할까

버리고 싶은 기억 끝에 남는 감정의 정체

by 김기덕


도대체 왜 나는 그 사람을 아직도 잊지 못할까

잊고 싶은데, 자꾸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만 아파보고 싶은데, 생각은 멈추질 않는다.

도망치고 싶어도, 문득 떠오르는 장면 하나에 다시 붙들린다.


왜 우리는 잊고 싶은 기억의 끝에서조차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걸까.




아무리 지우려 해도 마지막에 남는 건

기억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네 이름을 불렀다.

살아보려고, 마음을 붙들어 보려고.


이쁜 기억만이라도 건져 올리고 싶어서,

이미 끝난 감정에 애달파하면서도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마음.

사람은 이렇게 서툴게, 오래도록 사랑을 붙든다.


그런데 너는 어느 날, 태연하게

현재의 연인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잘해 봐”,
“포기하지 마."


행복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도 쉽게 작아진다.


입술은 계속해서 “행복하라”고 말하는 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너무 아쉬웠다'는 문장이

조용히 새어 나온다.




사람은 미련을 감추기 위해

“그땐 어렸어” 같은 변명을 꺼내든다.
비겁해지지 않으려 애쓰다가

또 비겁해지는 게 사랑의 방식이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다시 돌아오기를',

'어쩌면 아직 나를 잊지 않았기를'

하는 마음이 피어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모든 '어쩌면'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비극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끝나면 우리는

비극의 장면만 지우고 싶어 한다.

행복했던 순간만 기어이 붙들며


마음은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선택적 추억 상실증' 같은 방식을 택한다.


우리는 생각 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만, 이 사실까지 인정해야 비로소

다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이 긴 감정의 여정을 지나며

조금씩 배워가는 것도 있다.


우리는 사랑을 완전히 잊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조금씩 덜 아파지는 존재라는 것.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놓을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이해하려고 하면 더 아프고

억지로 잊으려고 하면 더 또렷해지지만,


시간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자기 자리를 바꾸며 단단해진다.


언젠가 다시 마주해도

흔들리지 않으만큼 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완전히 잊어내는 게 아니라,


나에게 남아있는 '아직'을 인정하는 일.


그 미련이든, 잔재든, 아프던 사랑의 조각이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그런 마음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그 기억이 더 이상 상처가 아닌

내가 '잘 지나온 사람'이라는

아주 작지만 강한 증거가 될 테니


오늘의 너도,

그 과정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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