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아 둔 건 많았다
난 담아 둔 걸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숨기기 시작한 날은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짐작하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혼자서 많은 걸 담았다는 것과, 지금까지 난 담아둔 속마음을 빼낸 적이 거의 없다는 것뿐. 그렇기에 지금까지 내가 쓴 글 속에 담긴 속마음들은 정리되지 않은 서투른 글이거나 어두운 내면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오래 담아 둔, 지금은 다르지만 한때 어두웠던 내 그림자 속 이야기. 기억하기 싫은 내면이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달랐다. 마치 무언가가 내면을 파고들어 어두운 면으로 물들여지는 느낌이나 갑자기 눈앞에서 빛이 사라지는 기분. 지금은 지워버린 기억이지만 중학생 때는 같은 반 친구들이 갑자기 그림자로 보이는 기분이 들어 수업 시간에 복도에 혼자 머물러 있던 적이 많았다.
중학생 때 내 마음은 어두웠다. 내 마음에 내가 잡아먹힐 것 같은 느낌은 지겹게도 적응되지 않았다. 어둑서니처럼 그림자에 덮여 잡아먹히거나, 어둠을 쫓아내거나. 두 가지 선택지 중 아마 난 어둠을 쫓아내는 쪽을 선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의 불안정, 심리 검사의 결과는 늘 좋지 않은 결과로 나오곤 했다. 지금 내 기분과 마음 상태까지 검사로 알아낸다니, 딱히 믿지도 않는 얘기였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뭘 검사한다고 알리면 조금 싫은 마음이 들곤 했다. 지금 내 마음을 가장 찌르고 있는 게 학교 안 사회생활인데 학교에서는 틈만 나면 심리검사를 한다고,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주고 적절한 조치를 해 준다고 한다는 게 가장 싫었다.
내 상태를 알아서 뭘 어쩌려는 건지 학교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담아 두는 편을 택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는 건 어려웠다.
다 자라지 못한 아이는 학교생활을 서툴게 보냈다. 날것 그 자체인 감정을 혼자서 누르고, 어디서든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지는 존재감. 그런 나에게 슬픔이라는 감정은 벼랑 끝에 있는 것 같은 내 마음을 잡아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울고 싶을 때는 아무도 없는 장소를 찾았다. 그렇게라도 마음속의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고 가벼워졌지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울어도 가급적 빨리 수습해 다시 일상 속으로 녹아들어 가기. 사람들은 누가 울면 지나치지 않고 말을 걸어 주었고, 그게 나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지나치면 되는 걸 어째서 타인의 눈물만 보면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세상은 슬픔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가끔이라도 그림자에 잡아먹힐 것 같다면 내가 좋아하는 걸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달과 별이 잘 보이는 밤, 조용한 장소에 있는 걸 좋아했다. 혼자 평화롭게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가끔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 어두운 내면을 보인 나도 가끔은 웃는 아이였다.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