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결혼했습니다!
<16. '소음'과 함께하는 책 읽기>
소음이란 대개 듣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짜증을 부를 수 있는 소리를 말합니다만, 네이버 지식백과에 보니 소음의 유형에는 음높이를 유지하는 '칼라소음(color noise)'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white noise)'으로 나뉘며, 백색소음은 우리 주변의 자연생활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리라고 합니다. 비 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백색소음이라는 말입니다. 항상 들어왔던 자연음이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습니다. 방음이 완벽하게 된 장소에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면 독서 역시 다양한 소음이 들려오는 곳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책 읽기 환경에 맞는 최적의 소음 장소란 어떤 곳일까요?
소음이 적어 독서에 몰입하기 좋은 도서관의 열람실보다는 카페나 커피숍 같은 곳에서 공부나 책 읽기가 더 잘 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페에서의 소음은 자연음은 아니더라도 일정한 높이로 반복되기 때문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입니다. 어느 정도의 소음이 주의를 산만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어폰을 끼거나 헤드폰을 쓰면 어떨까요? '익스텐드 마인드'(애니 머피 폴, 이정미 옮김, RHK, 2022년 10월 출간)라는 책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서 조금 길지만 유용한 것 같아 인용합니다.
"헤드폰을 쓰면 어떨까? 헤드폰을 쓰면 문제를 우리 귀에 직접 집어넣는 셈이 된다. 우연히 듣게 된 대화와 마찬가지로 가사가 있는 음악은 읽기와 쓰기 같은 언어를 수반하는 활동과 경쟁해 정신적 자원을 차지하려고 한다. 음악은 어렵거나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에 해를 입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도 마찬가지다. 단지 노래 가사 때문만이 아니다. 반복되는 리듬과 악절을 가진 음악은 우리의 관심을 계속 붙들고 놓아주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연구에 따르면, 높은 강도, 빠른 템포, 잦은 변주가 특징인 음악은 느긋하고 절제된 음악보다 더 우리의 집중을 방해한다.(한 연구자는 힙합과 같은 고강도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혀 '주의력 배수 효과'라고 불렀다.) 음악은 성인들의 인지 기능을 방해하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의 인지 기능을 방해한다. 아마도 가장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지적 작업을 수행했을 때의 성과가 싫어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 작업을 수행했을 때의 성과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소음이 사람에게 불규칙하게 들리거나, 혹은 어떤 '정보'로 들리면 주의 집중을 방해합니다. 그런 소음은 백색소음이 아닌 것이지요. 넓은 공간에서 일정 정도의 소음이 지속되면 백색소음과 비슷한 작용을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바로 옆에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들린다면 집중하는 데 방해를 받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하게 들리지 않으면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사람의 목소리가 웅성웅성 낮게 들린다면 공부와 독서에 집중이 가능합니다.
저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걸 가장 선호합니다. 칸막이가 있는 좌석에서 독서대를 사용하여 올바른 자세로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다음으로 선호하는 장소는 아무도 없는 집안의 제 방, 넓은 공간의 카페나 커피숍 순입니다. 도서관 열람실이 가장 좋은 이유는 조용한 장소 때문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뭔가를 열심히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있다는 것 자체에 자극을 받음과 동시에 나태해질 수 있는 정신자세를 다잡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것을 최고의 힐링이라 생각합니다. 낯선 곳의 경치와 주변 환경 및 사람들의 일상을 감상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마음의 평온을 얻습니다. 그 상황에서 책까지 읽는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산이나 바닷가 및 강가에서 하는 독서만큼이나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외국, 특히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의 독서는 할 만합니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카페 같은 시끄러운 곳에서 책을 읽어도 백색소음의 환경과 비슷하여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가 있죠. 영어권 나라도 사실 제 영어 리스닝 실력으로는 괜찮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약간은 들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의 독서 환경이 더 좋습니다.
독서 환경에서의 소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책 읽기에서 눈은 항상 글을 보아야 하지만 귀는 열려 있습니다. 조명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좋고 나쁜 책 읽기의 환경은 바로 소음이 결정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독서 습관을 제대로 들이려면 책 읽는 환경에 대한 세밀한 조건이 중요합니다. 장시간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활동인 까닭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적정한 소음이 있는 곳, 그곳이 최고의 독서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