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결혼했습니다!
<15. '어려운 글' 읽기 도전!>
'한국적 글쓰기'의 큰 스승이신 이오덕 선생, 국문과나 문예 창작과 출신도 아니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시민 씨의 글의 특징은 독자가 정말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복문보다는 단문, 수식의 절제, 짧은 문장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글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의 글은 또 어떤가요. 사변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을 지양하면서도 사람의 속 깊은 감정을 움직입니다. 글쓰기를 본받고 싶은 분으로 김훈 작가를 빼놓을 수는 없죠. 간결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그의 글은 '노는 물'이 달라 보이며, 단계나 등급이 있다면 단연 최고의 자리에 위치할 것입니다.
이중 수식이나 이중 부정 따위의 문장을 피하며 간단명료한 글이면서도 한 문장 안에 하나의 주장을 담는 등의 분명한 핵심을 전달하는 방법을 우리는 훌륭한 작가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읽기 쉬우면서도 논리적이며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을 쓰는 것은 글 쓰는 모든 사람들의 욕망일 겁니다. 무턱대고 쉽게만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 은유, 직유, 대유, 풍유, 중의 등 다양한 비유법들을 소홀히 대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창작의 영역이니 쉽게 쓰든 어렵게 쓰든 예술 작품이 될 만한 가치를 지녀야 할 겁니다.
문제는 좋은 책 중에서 읽기 어려운 책이 많다는 점입니다. 어려운 책이라고 해서 읽기를 포기한다면 책과 결혼한 저의 원만한 결혼 생활은 불가능하겠죠? 쉬운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있지만 어려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이나 사상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사회과학 책 중에서도 고전이나 명저라 불리며 읽기 어려운 책들이 꽤 많습니다. 고전 중에는 명성이 높을수록 어렵기도 합니다. 자신의 독해 수준과 맞지 않는 책은 읽기를 포기해야만 할까요? 아니면 어려워도 도전해야 할까요? 읽다가 도저히 더 나아갈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려운 글을 읽지 못하면 고전부터 수많은 명저들을 놓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읽고 싶어도 막상 읽으려고 하면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어려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는 이유가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어쩌면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자기 계발서'가 많이 읽히는 이유 중 하나도 읽기 쉽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독서에는 어려운 글을 읽을 수 있어야만 하는, 높은 수준의 독해력이나 문해력을 요구하는 단계가 존재합니다.
쉬운 글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작가는 어렵게 글을 씁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지적 수준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최소한의 표현으로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함일 겁니다. 읽기는 좀 어렵더라도 최대한 '밀도 있는' 글을 쓰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의 수준을 고려합니다. 혹시 고려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어떤 수준의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글을 쓰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읽기 어려운 책을 만난 독자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첫째는 배경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문제이고, 둘째는 복문이나 연결사로 길게 이어진 문장과 더불어 어려운 단어나 용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공부와 학습에 필요한 책들 대부분은 일정 수준의 독해력이나 문해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충분한 배경지식과 전문 용어의 이해는 물론, 여러 가지 의미를 섞은 긴 문장을 읽는 속도 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술적인 책들의 난도는 상당한 수준의 독해 실력이 있어야겠지요. 철학이나 사상을 비롯해 종교나 심리 관련 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글로 쓰인 책은 좀 덜합니다만, 번역물 중에는 난도가 상당한 수준의 책들이 많습니다. 번역도 창작의 일부이지만, 대부분의 번역가들은 원전의 내용을 한글로 읽기 쉽도록 만들기보다는 최대한 내용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하게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려운 글을 쉬운 글로 '의역'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탓입니다. 한글로 번역한 어떤 글을 보면 어색함을 넘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꼬인 문장이지만, 더 낫게 번역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출간했을 수도 있습니다.
독서 교육, 즉 읽기 교육은 학창 시절에 배워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금은 나아지고 있기는 하나 '문제풀이식' 독해에만 집중하느라, 책을 읽는 과정을 교육으로 전환하여 가르치기는 아직 한참이나 부족해 보입니다. 어려운 글도, 어려운 글이 쓰인 책을 읽을 수 있는 별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글 읽기 과정을 소홀히 하면 수많은 고전과 명저들의 독서를 포기해야만 할 겁니다. 자신의 읽기 수준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글을 읽으면서 조금씩 난도가 높은 책들에 도전해야 합니다. 정독을 기본으로 하면서, 어려운 글을 만나면 충분한 이해를 위한 '슬로 리딩'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말이지요.
책을 많이 읽는 저에게도 부족한 배경지식과 어려운 전문 용어 및 긴 복합 문장 때문에 읽기 어려운 책을 읽을 때면 저는 몇 가지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일단 그런 책을 쉽게 해설하는 입문서 혹은 평론서를 몇 권 골라 읽습니다. 입문서 역시 여러 단계가 존재하니, 여러 권을 비교하면서 저에게 맞는 수준을 골라 읽은 후에 어려운 책 읽기로 돌아갔습니다. 처음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어려운 책이 읽어지더군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을 때는 아예 설명서 혹은 해설서로 불리는 책을 두 권 골라 '자본론'과 함께 병행 독서를 했습니다. 결국 3천 쪽에 가까운 그 '어렵고 지루'한 책을 읽을 수 있었죠.
또 한 가지 방법은 좀 무모한 방법이긴 해도 아무리 어려워도 꾸역꾸역 읽는 겁니다. 반드시 읽어야 하겠다는 목표가 생기면 부족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읽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면서 읽습니다. 어려운 용어는 사전을 찾으면서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끝까지 읽어갑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때도 있지만 밀어붙입니다. 기어코 마지막 장까지 넘깁니다. 책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며 책의 가치를 느꼈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뿌듯함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했기 때문에 그 책과 비슷한 내용의 다른 책을 좀 더 수월하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분야의 또 다른 책을 읽을 때면 이해도가 훨씬 나아지니까요.
저 같은 '책벌레'의 독서 과정에도 '고비'는 때때로 찾아옵니다. 특정 지식이나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읽지만 재미없어서, 평소에 꼭 읽고 싶었지만 책이 너무 어려워서, 읽기도 쉽고 필요한 정보도 얻을 수 있지만 책 분량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나만의 방식으로 고비들을 잘 넘겨왔습니다. 시행착오가 없을 리 없었고, 좌절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저서 '순례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책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어려운 책도 읽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