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결혼했습니다!
<19. 두꺼운 책 읽기 전략과 치열한 과정!>
책의 두께, 즉 분량은 책을 선택하고 읽는 데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적 호기심 충분하고 관심 분야이며 독해 수준까지 맞는 책이라면 얼마든지 분량이 많아도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만, 읽어야 할 책이 모두 그런 경우는 아닌 까닭에 일단 500쪽이 넘으면 부담스럽고 1,000쪽에 육박하는 책들은 웬만한 욕심이 없이는 쉽게 잡을 수 없습니다. 대하소설이나 몇 권이 한 세트인 책은 더 힘들죠. 책과의 결혼 생활이 원만하려면 가끔 읽을 필요성을 느끼는 두꺼운 책과의 관계도 좋아야 합니다. 상당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책 읽기에서는 어떤 유용한 방법이 도움을 될까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읽어야 할 책들을 지적 호기심이나 관심사 등을 기준으로 구분해 보면 여러 단계로 나누어진 역삼각형 모양이 연상되는데, 호기심이나 관심이 최고인 사다리의 맨 꼭대기 층에 속하는 책들은 분량이 많아도 그나마 힘을 덜 들이며 읽어낼 수 있지만, 호기심과 관심 분야가 아니면서도 필요한 지식 습득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분량이 많다면 끝까지 읽는 데에 엄청난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책과 '결혼'을 결정한 계기는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과정에서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서평이 중고등학생과 그들의 학부모에게 도움이 된다며 학교에서 강연 신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학생들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의 교과서 뒤에 기록된 교과서 저자들이 참고한 '참고문헌' 목록의 책들을 본격적으로 읽었습니다. 자연과학 도서는 각 교과별로 과학 관련 단체나 학회에서 추천하는 책들을 저의 도서 목록에 올렸죠. 그렇게 정한 인문, 자연 필독 도서 목록에는 저의 관심사가 아니어도 읽어야 할 책들도 쌓이기 시작했고, 관심사도 아니며 분량도 많은 책 읽기에 대한 별도의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이제는 관심사를 떠나 각 교과나 분야의 책 중에서 학생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 위주로 읽습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책이라면 학문의 폭이 넓을 뿐이지 대개는 교양 도서 수준이니까 제가 읽지 못할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려면 교양 수준을 넘어 심화된 내용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두껍거나 세트로 구성된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두꺼운 책을 읽을 때는 '무작정 읽으면 된다'라는 생각보다는 반드시 완독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다가올 파고의 높낮이를 예측하면서 읽기에 돌입하고, 읽는 중에 몇 가지 전략을 세워 실행하면 조금 더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두께의 부담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처음은 쉽게 읽힙니다. 책을 선택한 동기와 목적, 또는 기대가 아직 식지 않을 때이고, 도입부인 까닭에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한 십 분의 일까지는 괜찮지만 이 이후로 넘어갈 때부터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하고 남은 분량의 무게가 서서히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이걸 언제 다 읽지?' 하는 마음과 함께 포기하라는 유혹까지 거세집니다.
완독으로 가는 길의 초반부터 어려운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좀처럼 읽은 분량은 불어나지 않고 정체된 것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장 수 가운데 한 장 한 장 넘기는 탓에 분량에는 전혀 표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하게 합니다. 장거리를 뛰는 것처럼, 마라톤을 달리는 것처럼 순간순간 포기의 그림자가 책장 위를 덮칩니다. 그래도 선택한 책의 가치 때문에, 악착같이 행간에 구멍이 나도록 글자를 따라갑니다. 초반의 이런 고비를 넘지 못하면 중반은 또 어떻게 넘길까요. 극강의 인내의 시간은 책의 절반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다가, 드디어 절반을 넘어서부터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조금만 힘을 내면 끝까지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여기서 멈추면 읽은 게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 초반에 자주 들었던 포기라는 생각은 버리고 진도에 박차를 가합니다.
절반 이후의 책 읽기의 속도는 확실히 이전보다 빠릅니다. 저자의 문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낯선 용어들이 반복되면서 이해도 빨라집니다. 넘어간 책장의 분량을 보면서 뿌듯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지속되는 것도 속도에 영향을 줍니다. 읽은 분량과 남은 분량을 수시로 비교해 보면서 힘을 더 냅니다. 이제 조금만 더 인내를 발휘하면 마침내 이 두꺼운 책을 완독 할 수 있다는 뿌듯한 성취감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립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라는 관념적 문장까지 곱씹으며, 남들에게 이렇게 두꺼운 책도 읽었다고 뽐내는 상상을 하면서 흐뭇해합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난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의 다 끝났다고 생각한 읽기 여정이 여간해서 마지막 장에 이르지 못합니다. 대단원을 장식하기에는 책의 분량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끝날 듯, 끝날 듯한 상태에서 책장을 넘겨보지만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의 끈기를 정신에서 짜내기 시작합니다. 뿌듯함이나 성취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냥 한 장 한 장 넘기는 데에 집중합니다. 결론으로 달리는 저자의 주장에 웬 사족이 그렇게 많은지 원망을 토합니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내용이 너무 많아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며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씁니다. 기어코 마지막 장에 다다릅니다. 비로소 완전히 해냈다는 성취감이 온몸을 감쌉니다. 마지막 부분의 집중은 독서 중 최고의 몰입 시간입니다. 올림픽 마라톤 게임에서 스타디움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선수가 두 시간 이상 뛰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을 내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드디어 대견하게도 그 두꺼운 '벽돌책'을 돌파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두꺼운 책을 읽을 때 저처럼 비슷한 경험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책을 많이 읽어왔지만 두꺼운 책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제가 아직 '진정한' 독서가가 되지 못하여 두꺼운 책을 읽느라 쩔쩔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의 방법이 효율적이거나 탁월한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래전입니다만, 운전면허를 딴지 알마 안 되어 도심에서 운전을 하려니 너무 정신이 없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다가 고속도로를 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무려 부산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운전대가 뽑히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긴장을 하면서 어찌어찌하여 왕복에 성공했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도심에서의 운전이 예전 같지 않게 너무나도 수월해진 것입니다. '벽돌책'이나 대하소설 읽기를 제가 경험한 고속도로 주행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 단행본 읽기가 너무 수월해진 것이지요. 세상 그 어떤 좋은 책과의 조우를 기다립니다. 아무 두려움 없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