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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Oct 20. 2022

<서평> - 계속 가보겠습니다(임은정, 메디치)

- 함께 가겠습니다 - 


<서평> - 계속 가보겠습니다(임은정, 메디치)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으로, 2022년 7월에 당차게 나온 책이다. 저자는 2001년부터 검사로 일하면서 그야말로 낯설고 기괴한 현실을 보고 듣고 겪었다. 2012년 9월에는 '과거사 반성' 논고문으로, 같은 해 12월에는 백지 구형을 따르지 않고 무죄 구형하면서 일약 검사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이 책은 그 이전의 추잡한 검찰의 모습을 포함하여 임 검사가 차이고 밟히며 겪은 21년의 기록이다. 사선(死線)에서 전선을 밀어붙이고 있는 저자는 검찰의 내부 고발자로서의 이 같은 중간보고를 통해 계속 가겠다고 하니, 나는 저자를 계속 지지하겠다. 우리 모두 임 검사와 함께 갑시다! 


함께 꾸는 꿈의 힘을 믿는 저자는 2012년 문제 검사로 급전 직하하였지만, 2009년 법무부 발령을 받으며 실질적인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검찰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유는 검찰 조직은 절대로 스스로 바뀔 수 없고, 검찰을 바뀌게 할 마땅한 견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때려봐야 흔들리지 않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사 조직을 더욱 견고하게 할 뿐이다. '검찰청장'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으로 부르는 검사 조직의 수장을 정점으로 하여 피라미드형 조직체는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움직인다. 상명하복에 우선하는 정의로서의 법과 원칙은 허울에 불과하다. 



책 읽기를 좋아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특히 동양 고전에 대한 인용 및 비유가 저자의 글에서 빛이 난다. 명문의 논고문이나 칼럼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 깊은 호소력, 성찰의 힘을 지녔다.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 우리 사회의 분노와 자책,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충고를 대신한 임 검사의 문장을 통해 사법정의와 더불어 상식과 공정을 되짚어본다.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하는,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라는 검사 선서의 일부를 바탕으로 말이다. 


1부 '난중일기'는 검사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e-PROS)에 올린 글을, 2부 '나는 고발한다(J' Accuse)'는 경향신문 '정동칼럼'에 연재한 글을 모아 뒷이야기를 붙여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2007년, 저자는 광주 인화원 성폭력 사건의 공판검사가 되어 일명 '도가니 검사'로 많은 환화와 격려를 받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2012년 4월부터 검찰의 부조리함을 성찰하는 글을 검사 게시판에 올림으로써 임 검사는 검사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2012년 9월, 민청학련 배후로 15년 선고를 받은 박형규 목사의 재심에서 저자는 무죄 구형을 하면서 '과거사 반성'을 담은 법정 최정 의견(논고)를 진술한 것도 검찰 내에 심각한 파동을 일으킨다. 



2012년 12월 故 윤길중의 과거사 재심에서의 일은 임 검사가 완전히 검찰 조직의 바깥으로 떠밀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판부장은 임 검사에게 '백지 구형'('판사님이 알아서 판단해 주십시오')을 지시하고, 임 검사는 그를 실행하지 하고 마치 예수가 골고다를 향해 걸어가는 심정으로 무죄 구형을 한다. 저자의 행위는 검사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를 반성하는 일이었으나, 결과는 정직 4개월이라는 처벌이 내려진다. 저자는 그에 굴하지 않고 징계 취소 소송을 시작하였고 5년 만인 2017년 10월에 징계 취소를 확정받는다. 하지만 결과에 따른 지위권 오남용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떤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다시 임 검사는 2019년 4월,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2022년 현재도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공식적으로는 상하 간 원활한 소통을 강조하는 검찰은 개인 의견을 막는 쪽지와 부서 회의를 통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검찰 내부의 사건은 철저하게 숨기고 조작하면서 말이다. 검찰의 곪은 부위를 드러내고 검찰을 감시하는 CCTV가 될 각오로 공익 신고와 고발을 이어가는 임 검사는 7년 마다의 적격 심사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 2017년,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바뀐 정권의 코드를 맞추려 노력한다. 임 검사가 했던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무죄 구형과 항소 포기를 당연시하는 것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르기 전에도 저자는 추잡스러운 일을 직접 보고 겪었다. 2003년 5월에는 임 검사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던 부장검사는 사표 수리 정도로 정리되었고,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스폰서에 의한 성매매를 일삼은 부장검사는 2007년 임 검사를 꽃뱀 여검사로 규정하였다. 그때 임 검사는 선배 여검사 등에게 알렸으나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그야말로 검찰 전체의 조직적 일탈이 분명하다. 2012년부터 저자가 검사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올린 것은 미력하나마 검찰 개혁이 검찰 내부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회유, 징계, 협박은 물론 동료들의 모욕과 조롱이 대부분이었다. 임 검사가 계속 가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이유다.    



검찰은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될 위기가 닥치면 전체가 한 몸이 되어 조직적으로 대응하면서 집단행동도 불사한다. 검찰이 반대하는 부분이 바로 검찰의 급소다! 거대한 악에 맞서 임 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부 규정을 최대한 활용하여 세상에 외치는 것뿐이다. 2019년 1월부터 경향신문의 '정동칼럼'에 연재를 시작한 이유는 주권자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검찰은 책임을 묻는 조직이지 스스로 책임을 지는 조직이 아니다. 자신들은 법을 지키지 않았고, 그걸 처벌할 기관이 없었다. '검사내전'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웅의 비겁한 변화 역시 그런 차원에서는 이해가 간다. 



상사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검사도 처벌받을 수 있도록 임 검사는 대 검찰 선전포고를 날린다. 고발, 공익 신고, 국가배상 소송 따위로 말이다. 하지만 검찰은 그런 임 검사에게 정치와 출세에 욕망이 있다는 식으로 폄하한다. 2019년 7월에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내정자에게 e 메일을 보낸다. 주위에 있는 정치 검사들을 버리라는 내용이었지만 보스형 검찰 조직론자인 윤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2021년 2월에 다시 보냈지만 열어보지도 않은 그는 다음 달에 정치를 위해 사퇴해버렸다. 저자는 결국 '한명숙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과 관련하여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조남관 전 대법원 차장을 고발한다.  



노무현 정부 때는 정치 독립을 외치던 검찰은 '이명박근혜' 정부 때는 호위무사가 되었다. 소위 검사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제도인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제도를 법무부와 대검이 비공개 예규로 만들었는데, 저자는 그 예규를 정하고 만든 한동훈 등의 관련자들의 이름을 공개했다. '얼치기 운동권형 검사'(조선일보), '막무가내 검사'(동아일보), '부끄러운 검사'(중앙일보)라는 이름을 붙여준 건 소위 보수 언론이 앞장섰다. 사회의 공기여야 할 언론은 공익의 대표자 가면을 쓴 검찰과 한통속이었고, 부조리의 데칼코마니였다. 지속적인 오보와 그 오보에 대한 정정 요청을 무시하자, 저자는 2021년에 조선일보와 TV조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검찰 간부들의 감정 실린 보복 배당에 고통받은 임 검사는 사건 배당과 지휘 감독 간부의 저울에 오염된 검찰 조직의 민낯을 생생하게 바라본다. 서울남부지검 성폭력 은폐와 부산지검 고소장 위조 은폐 같은 일을 저지르면서도, 정경심 교수 사건에는 반부패부 여러 검사실이 동원되어 광범위한 압수수색 등 쓸 수 있는 모든 화력을 집중시킨 검찰이다. 상급자 뜻을 거스르는 수사는 불가능하고 비밀 유지 의무로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검사가 검찰 비리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은 그나마 뜻있는 언론뿐이다. 아무리 내부 비리에 대해 감찰을 요구해 봐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리가 없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다. 한명숙 모해위증 교사 의혹과 관련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조남관 전 대검 차장은 공수처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의 주권자인 국민에게 임 검사는 검찰을 고발한다.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된 세상에서 '검찰 공화국'이라는 현실은 숙명처럼 보인다. 2천 명이 넘는 검사들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 한복판에 임 검사가 있다. 내부 고발자로서의 중간보고서에 힘이 실리길 간절히 바란다. 한 사람의 힘으로 전선을 밀어붙일 힘이 주권자에게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21년 동안의 검사 생활에서 얻은 통찰이 그의 앞길을 밝혀주길 바라며, 임 검사의 다짐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처방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계속 지켜보겠다, 함께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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