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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Oct 22. 2022

<서평>-헤어질 결심 각본(정서경,박찬욱, 을유문화사)

- 영원한 사랑 - 


<헤어질 결심 각본> - 정서경, 박찬욱(을유문화사)


2022년 6월 개봉 영화,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박찬욱 감독) 수상작, 8월에 나온 그 영화의 각본으로, 나는 아마도 각본을 처음 읽는 것 같다. 앞으로 가슴 저리게 보았던 영화는 반드시 각본을 찾아볼 것 같다. 영화는 물론, 이 각본까지 나에게 강렬함을 선사한다. 영화에서는 그냥 지나쳤던 내용과 상황들이 상세하게 나온다. 영화 장면을 복기하면서 읽는 맛이 제법이다. 미장센을 하나하나 그려보면서 활자와 비교한다. 놓쳤던 복선이, 감독의 의도가, 배우들의 감정이 새삼스럽게 나타난다. 어느 것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이 영화는 나에게 화인처럼 남겨진다. 



서래(탕웨이)의 마음을 좇아가는 데 최선을 다한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을 위해 노력은 할 수 있다. 그녀는 어떻게 노력했는가. 서래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해준(박해일)의 마음도 불쑥 튀어나온다. 그 둘의 관계는 숙명 혹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입으로는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다. 하지만 가슴은, 마음은 감추거나 속일 수 없다. 감추거나 속이려고 애쓰면 쓸수록 오히려 본심은 더 드러나기 마련이다. 살인자 서래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했다기보다는 주위의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탕웨이는 서래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과장되거나 인위적인 말과 행동 및 눈빛과 몸짓을 거부하면서 말이다. 상대역인 박해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둘의 호흡은 최상이다. 보는 내내, 읽는 내내 그 둘의 결합이 그리웠던 이유다.  



부산경찰청 서부경찰서 형사과 강력2팀장 장해준 경감이 구소산 비금봉 정상에서 떨어져 죽은 60살 기도수의 사체가 널브러진 현장을 오수완 경사와 함께 방문한다. 그의 손목시계는 월요일 10시 2분에 멈춰있다. 시체안치실에 30대 후반의 서래가 온다. 형사들은 그녀가 기도수의 딸인 줄 알았으나 아내란다. 왼손등엔 반창고를 붙인, 조선족인지 한족인지 모를 중국인인 서래는 한국말을 떠듬떠듬한다. 그녀는 남편이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지만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고 말하면서 해준과 수완을 당황하게 만든다. 왜 실종 신고를 3일 만에 했느냐는 질문에 태연하게 답을 하는 서래는 조서 작성 중 보여준 남편의 눈 뜨고 죽은 사진을 보여주자 토한다.  서래의 몸에는 처참하게 멍들고 찢어진 상처가 많다. 골반 위에는 'KDS'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서래를 진찰했던 의사는 서래의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는 그녀가 제대로 웃지도 못했다는 말을 전한다.  



이포의 사리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해준의 아내인 정안이 따로 산다. 부산에 사는 해준과 발전소에 근무하는 정안은 주말부부인 셈이다. 간호사 출신인 서래는 간병인 소개소를 통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기 다른 독거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사건 당일인 월요일에는 이해동 할머니네에 있었고, 소개소 담당자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서래가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기도수는 생전 '기도수TV'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 기도수의 손톱 밑에서 다른 이의 DNA가 검출되어 서래는 경찰서에서 DNA 채취에 응한다. 서래 허벅지에 6개의 손톱자국을 찍는 해준, 남편이 산에 가자는 걸 싫다고 했는데 남편이 알아듣지 못해 자해를 했다고 해명하는 서래. 그때 도수가 말리다 자기 손등에 상처를 냈다고도 말한다. 2015년 8월 17일, 해경은 평택항 불법 입국 중국인들을 적발하여 37명을 추방했지만, 유일하게 서래만 남은 사실을 알고 서래에게 추궁하지만, 서래는 자신의 외조부가 만주 조선해방군 계봉석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말한다. 이후 기도수 덕에 건국훈장까지 받았단다.  



살인범 이지구를 잡으러 '오빠피시방'에 출동한 해준과 수완은 격투 끝에 체포에 성공한다. 신문실에서 장소를 엿들은 서래는 검거 현장의 골목 끝에 차를 몰고 와 서있고, 해준은 그녀를 발견한다. 산오가 범인이라고 말하는 지구다. 수완은 서래를 살인 피의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CCTV를 통해 알리바이가 입증됐다고 해준은 거부한다. 아파트 집 안의 서래를 쌍안경이나 망원 렌즈 카메라로 감시하는 해준. 서래는 아침에 출근하다가 잠복 차 안에서 자고 있는 해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길고양이 밥그릇에 먹이를 주는 서래, 고양이가 밥그릇 곁에 죽은 까마귀를 물어다 놓은 걸 보고 녹색 플라스틱 양동이로 놀이터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 까마귀를 묻는다. 고양이에게 서래가 하는 말을 몰래 녹음하는 해준은 통역기를 사용하여 무슨 뜻인지 확인한다. "꼭 선물하고 싶으면 그 친절한 형사 심장을 가져다 달라." 



중국에서 문서가 형사들에게 날아든다. 서래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살인 용의자라는 사실에 형사들은 긴장한다. 돌아가면 최소한 무기징역감이다. 해준의 추궁에 서래는 중병의 엄마가 자신을 죽이고 외할어버지 고향 산인 호미산으로 가라고 했으며, 엄마의 소원대로 펜타닐 네 알로 보내드렸다고 털어놓는다. 서래 엄마의 친부모도 항일운동가였고, 그들이 일본군에게 죽자 계봉석이 자신을 입양했다고 한다. 이후 펜타닐 네 알을 더 챙겼다는 서래는 기도수는 자살이라며, 뇌물 받고 부적격자의 귀화를 도운 사실에 대해 그동안 기도수에게 온 협박 편지들을 보여준다. 25년 근속 공무원의 명예를 잃어버리는 일이기에 절망한 기도수는 결백을 입증하고 명예를 회복하려 다짐하는 편지를 직장인 부산출입국에 남겼지만 죽었다는 것이다. 기도수는 밀입국 시 처참한 모습을 한 서래의 말을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어서 서래의 선택에는 미련이 없었다.  



의심을 버리지 않는 수완에 비해 해준은 사건은 종결되었다며 서래에게 기도수 유품을 전달한다. 해준은 자신의 집에서 서래에게 유일한 중국 음식이라면 새우볶음밥을 만들어주는데, 서래는 해준의 방 벽에서 그동안 미결 사건에 대한 많은 사진을 들여다 보다 남편 사진들은 물론 자신의 그것들도 발견한다. 이제 그 사진들은 떼어야 한다는 해준은 서래에게서 산오를 검거하는데 힌트를 얻는다. 해준이 산오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목을 가위로 그어 생을 마친다. 그는 오가인이라는 여성이 결혼하면서 자신과의 연락을 끊자,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오가인과 동거 중이었다. 심장이 갖고 싶었냐고 묻는 해준에게 서래는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절에 함께 간 서래는 해준에게 그가 품위 있어서 처음부터 좋아했다고 고백한다. 서래 아파트에서 음식을 준비하다 자신의 휴대폰 잠금 번호가 '150724'(서래 엄마가 돌아가신 날)임을 기억하는 해준은 놀라는 서래에게 그런 숫자는 기억해 놓으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서래의 부탁으로 월요일 할머니인 이해동 할머니 집에 가서 서래의 녹색 공책에 적힌 내용을 읽어드리는 해준, 할머니 휴대폰이 서래와 똑같은 사실을 알아챈다. 할머니 휴대폰의 앱 중 '계단 오르기' 앱을 보니 어느 월요일에만 '138층'이 기록되어 있다. 할머니는 10년째 집에만 있었는데 말이다. 월요일 할머니 아파트 입구, 등산복의 해준은 서래가 한 그대로 '13시 6분'을 오전 6시 53분으로 수정하여 전화를 바꿔치기 한 시간 7분 후 구소산으로 출발하여 08시 35분부터 등반을 시작한다. 09시에 간병인 소개소에서 온 확인 전화를 받았을 서래, 어려운 루트로 정상에 오른 기도수와 달리 쉬운 루트로 오른 그녀의 휴대폰 앱에는 '138층'이 기록된다. 10시, 비금봉 정상, 앉아 위스키를 마시는 도수를 아래로 밀어버리는 서래의 손등에 도수의 손톱 끝이 스친다. 서래에게 할머니 전화를 꺼내 '138층'을 보여주는 해준. 맞으면서도 참은 이유는 도수가 중국으로 보낸다는 협박 때문이었고, 협박 편지들은 서래가 직접 썼으며, 남편이 유서로 느끼게 한 직장에 보낸 편지도 역시 서래가 썼다. 그전에 서래는 해준의 녹음 파일을 지우고 해준의 방에 있던 사진도 태워버린 적이 있다. 



여자에 미쳐 수사를 망쳤다고 자책하는 해준은 할머니 휴대폰은 바꿔드렸으니 이전 폰은 바다에 버리라고, 그래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라고 서래에게 말한다. 이때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서래, 어느 호텔에서 사철성에게 두드려 맞고 있다. 남편이 있는 곳을 대라며 때리는 철성은 서래의 남편이 자기 어머니 돈을 사기 쳤다며, 그래서 어머니가 큰 병을 얻어 살 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았음을 절규한다. 자기 어머니가 죽으면 즉시 남편을 죽이겠다는 공언과 함께. 서래와 새 남편인 주식 투자 애널리스트인 임호신은 이포 재래시장에서 해준 부부를 만난다. 서래가 이포로 이사를 온 것이다. TV에도 나온 걸 아는 정안은 호신과 명함을 교환하는데, 얼마 후 고급 펜션에서 임호신이 21군데나 칼에 찔린 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다. 최초 발견자는 아내인 서래다. 죽은 호신의 손목에는 서래의 전 남편인 기도수의 롤렉스 시계가 새 유리를 한 채 채여 있다. 서래는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재혼을 했다고 해준에게 말한다. 해준을 만나려고 이포에 왔다는 말과 함께. 그 방법만이 유일하게 해준을 만날 수 있었기에.  



서래로부터 살인 과정을 듣는 해준은 서래를 살인 용의자로 체포하지만, 또 다른 용의자로 지목된 화교 무덤에 어머니 시신을 묻는 사철성을 해준과 어연수 경사가 체포한다. 철성의 어머니가 호신에게 맡긴 돈은 무려 2억 7천만 원, 이혼한 화교 여자가 철성 하나만을 키우며 악착같이 번 돈이었다. 그래서 철성은 호신을 죽였고, 절대로 서래가 시킨 짓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호신은 죽기 전 해준의 부인인 정안에게 두 통이나 전화를 했다. 정안은 혹시 당신과 서래가 호신을 죽였냐고 해준에게 따져 묻는다. 호신이 죽음을 맞는 동안 서래는 호신의 휴대폰을 해녀불턱 바닷가에서 바다로 던진다. 할머니의 휴대폰이 아닌 호신의 휴대폰이다. 서래의 스마트워치의 녹취록을 읽는 해준은 서래가 호신에게 한 해준에 관해 말한 내용임을 발견한다. 호미산에 있는 서래를 찾아가는 해준. 엄마와 외할아버지 골호를 가져온 서래는 해준에게 뿌려달라고 부탁하여 해준이 대신 뿌려준다. 사백이 일 동안 서래를 좋아했다고 고백하는 해준에게 서래는, 해준이 바다에 던지라고 했던 이해동 할머니 휴대폰을 주면서 재수사를 촉구한다. 둘의 긴 키스. 자기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자기만 생각하라는 서래는 떠난다. 서래에게서 받은 할머니 휴대폰을 절벽 아래로 던지는 해준이다.   



정안이 짐을 싸서 젊은 주임이라는 이준과 함께 집을 떠나는 장면을 해준은 지켜본다. 서래가 바다에 던진 휴대폰을 찾아 복구에 성공한 해준은 서래와 호신의 대화창을 본다. 호신은 정안에게 녹음된 '음성파일'을 들려주려고 전화했었다. 해준은 파일을 열어보지만 아무 내용도 없음을 발견한다. 서래는 병원에 있는 철성 어머니를 찾아가 정성스러운 간호 모습을 보여주면서 철성을 안심 시킨 후 철성 어머니에게 펜타닐을 먹인다. 철성은 자신의 어머니가 병으로 죽은 줄로만 안다. 녹색 플라스틱 양동이를 든 서래는 표시해 둔 바닷가 모래를 깊고 넓게 퍼내고 그 속에 들어가 술 몇 모금을 마신다. 서래가 자신의 차에 두고 간 휴대폰의 파일을 열어 내용을 듣는 해준.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서래 이름을 목놓아 외쳐 불러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어느새 서래가 들어간 모래 구덩이 위로 밀물이 들어 차 아무 흔적이 없다. 그렇게 사랑은 완성이 되는가.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좋은 영화, 가슴에 새겨진 영화는 꼭 각본을 찾아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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