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책만 읽고 생활은 어떻게 하나?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도서관에 정착하여 독서에 매진하면서 이제는 처음부터 걱정했던 생활 문제가 수면에 떠오른다. 요즘 같은 물가에 아무리 혼자여도 기초 생활비가 적지 않게 들어간다. 책 읽기가 인풋(Input)이라면 글쓰기, 발표, 대화, 토론 등은 아웃풋(Output)인데, 이 정도 읽기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아웃풋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앞날이 깜깜해지기도 했다. 일단, 독서를 통한 많은 인풋을 쌓아가며 그와 비례한 아웃풋을 발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읽은 후에는 적당한 독후 활동을 하고 싶어서 손과 입이 근질근질해지기도 했다. 컵에 물이 차면 넘치는 것처럼, 많이 읽으면 그만큼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것일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독서로 인한 소소한, 아주 기초적인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시간만큼이나 독후 활동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사색은 책을 읽으면서 할 수도 있고 다 읽은 다음에도 할 수 있다. 책 읽기와 사색은 결코 떨어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사색 없는 독서는 전자 기기와 같은 상품에 딸린 매뉴얼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독후 활동 역시 사색을 바탕으로 실행한다. 여러 작가들이 '책의 완성은 독자'라는 말을 했다. 개별 독자의 사색으로 책 읽기는 완성된다. 독서로 인한 정신적 변화의 동력은 지식보다 사색이 우선이다. 책 읽기에 사색을 더해 독서를 완성하면 그다음에는 사색을 동반한 독후 활동이 이어진다. 책을 읽은 후의 독후 활동 중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서평 쓰기였다.


글쓰기 실력은 책을 읽는 만큼 바로 늘지는 않았다. 아무리 글쓰기가 독서와 관련된 활동이라도 어느 정도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의미이겠다. 글쓰기는 기술 혹은 예술의 영역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서평부터 평론, 에세이, 논술, 소설 등 다양한 글쓰기 종류 중에 가장 어려운 분야는 소설이고 가장 쉬운 분야는 서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정답은 아니다. 서평을 담은 책을 읽다가 해당 책을 나도 읽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놀라운 서평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명문장을 발췌하기는 쉬워도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서평 쓰기는 정말 어렵다. 읽은 만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썼지만 아직 글쓰기에 대해서는 큰 만족을 못 느끼겠다. 아니, 늘기나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문예 창작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글쓰기와 관련한 책만 수백 권을 읽었는데도 글쓰기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독서가'로서의 면모는 어느 정도 갖추었다 하더라도 '작가'로서의 면모는 한참이나 부족함을 실토할 수밖에 없다.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호기롭게 또는 설마 그럴리야 있으랴 하는 건방을 떨며 노숙자가 돼도 괜찮다는 다짐은 나를 민망하게 한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책 좀 본다고, 서평 좀 쓴다고 밥벌이가 쉽지는 않았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자면 주로 대학교에서 '국문과' 또는 '문예 창작과' 같은 곳에서 글쓰기 관련하여 '전공'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런 전공을 하지 않았는데도 잘 쓰는 사람도 많다. 부러움과 함께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 이유다. 나는 '문과' 성향을 지녔지만, 집이 가난하여 취직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도 공대를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내 성향이 어떤지 알았고, 결국은 졸업만 겨우 했다. 전공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이건 성향이 맞지 않아 '못한' 탓도 있지만, 전과를 하거나 다른 방안을 찾지 않은 게으름이나 나태함이 더 크다) 전공 관련한 직장은 들어갈 수가 없었고 결국은 이것저것 전공과 관련 없는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다. 학창 시절의 공부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책을 더 악착같이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책벌레'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점은 글쓰기 실력이 원하는 만큼 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글로는 먹고살기 어렵다는 결론 아닌가?


글쓰기의 욕구는 부족한 실력이나마 서평으로 어느 정도 해소를 했지만 당장 돈이 될 수는 없었다. 블로그에 읽은 책에 대해 꾸준하게 서평을 쓰면서도, 책을 함께 읽고 서로 대화하는 읽기나 독서 동아리 같은 모임을 찾아 가입하여 활동을 병행했다. 고전을 주로 읽는 모임에서는 지속적으로 열심히 활동하였고, 몇 년 전부터는 밴드나 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운영했다. 그러는 와중에 독서 관련한 강연 요청이 블로그와 밴드를 통해 간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아주 적은 돈이지만 독서가 기반이 된 활동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학교나 학원에서 요청하는 강연이면 강연료와 상관없이 무조건 다녔다. 중고등학교나 대학 입시에서 독서 관련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우선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암흑세계가 나의 강연 생활을 마감하게 했다. 입시 제도 역시 공정성을 이유로 대학에서 자기소개서가 없어지는 등, 정성 평가에서 정량 평가로 기우는 정책 때문에 학교와 학원에서의 강연 요청이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서평 쓰기는 독후 활동 중에 가장 기본으로 하는 글쓰기이다. 서평을 잘 쓰기 위해서는 책을 읽으면서 병행하는 핵심 요약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독서 일지를 정성스럽게 작성했다. 주로 독서 노트에 기록하는데, 집이나 도서관에서는 노트에 직접 쓰고 전철 안에서처럼 독서 노트를 펼쳐놓기 곤란한 경우를 대비해서는 이면지와 연필('샤프'라고 불리는)을 가지고 다니면서 핵심 내용을 적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따로 적은 요약과 발췌를 바탕으로 온전한 문장의 서평을 블로그에 올렸다. 매년 150권에서 20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썼으며, 블로그에는 10년 조금 넘게 올렸으니 이제까지 쓴 서평은 약 2천 권 정도다.


SNS를 통해 간혹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상담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는 무료로 진행했다. 독후 활동이 서평 쓰기와 강연으로, 개인 상담으로 이어진 셈이다. 글쓰기에서 발견한 아쉬운 점을 강연이나 상담을 통해 상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글쓰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책 읽기를 통해 글쓰기 실력은 손톱만큼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글쓰기는 훈련이나 연습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글쓰기도 독서만큼이나 비중을 두면서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 지면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글쓰기의 훈련이고 연습이며 가열찬 노력 중 하나다.


2022년 5월에는 '세기의 책 - 문학 편 1'(공저, 디페랑스)이라는 서평을 모은 책의 공저자로 참여해 첫 책을 출간했다. 책을 선택한 대가가 조금씩 결실로 다가오며 삶의 벼랑 끝에서 희망이 조금씩 자랐지만 그게 전부였다. 책만 읽고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진행형이다. 강연과 책 출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독서가는 다른 직업이 있어야 한다. 책만 읽고 살 수는 없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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