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희망이 자라면서도 걱정이 앞서다.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기대만큼 삶의 원동력이 되는 건 없다.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버티면서 인내하는 이유는 보다 나은 내일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실질적으로 더 나은 내일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기대하는 마음 그 자체가 삶을 이끌어간다고 말했다. 나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도 내일에 대한 기대는 강렬했다. 오늘보다 내일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가 된다는 기대가 자란다. 오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지적 유희와 희열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는 마음은 커져만 간다. 오늘을 즐기면서 내일까지 기대한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책 읽기의 큰 장점은 지금 이 순간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는 데 있고, 정신의 아카이브에는 자신이 될 만한 보물이 쌓인다는 데 있다. 하지만, 돈을 벌며 생활을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커다란 벽처럼 느껴진다. 독서를 하며 자라는 기대 심리는 현실에서 무참히 박살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과 함께하는 시간의 달콤함에, 나른한 쾌감에, 치열한 정신적 투쟁 속에서 포기하지 않았다는 뿌듯함에 책을 버릴 수가 없다.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학문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깊은 사색과 숙고로 인한 성찰을 위해, 정신적 혹은 지적 유희를 위해, 인생의 깊은 의미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모든 이유를 아우르는 공통점은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은 '나'가 될 수 있고 이전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뛰어난 '나'로 몰라보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살기 위해 책을 선택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밑천이 전혀 없어 독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좋아했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읽기 전의 내가 아니다. 이 불가역적 변화는 읽기의 소재인 글과 더불어 시간으로 만들어진 나이테가 켜켜이 쌓인 결과물로써 나타난다. 나무를 자르지 않으면 나이테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독서 후의 변화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이지만 그로 인해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이 다르게 보인다. 글을 읽었는데 세상을 읽은 것으로 결과가 나타난다. 신기하지 않은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건 더 많아지고 읽고 싶은 책들은 더욱 늘어난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뭘 좀 안다는 것이 '모르고 있'는 걸 안다는 의미이면 더 좋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두세 권의 책을 더 읽어야 하는, 아니 어느 경우에는 수십 권의 '필독서'가 늘어나는 부담이 생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기의 여정은 한 곳을 향하지 않고 산탄총의 발사처럼 여러 곳으로 분산되기도 한다. 다양한 목적지가 생겼다가 유난히 가고 싶은 곳이 생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결국은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정착지에 다다르게 된다. 한 권의 책을 정복한 뿌듯함은 자부심으로 발전하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 만큼 겸손함을 갖는 것은 필수다. 아무리 읽어도 줄어들지 않는 '필독서' 목록을 보면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책이 좋아서 읽고 있는데 이제는 책 때문에 존재하는 내가 되어버렸다. 책이 없는 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만큼 책과 관련한 일이 아니면 나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살기 위해 선택한 책이 나로 하여금 진짜로 살게 했다. 사실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추론과 상상을 거듭하며 비판적 사고와 열린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책 읽기의 힘 때문에 나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았다. 이제는 존재의 이유를 넘어 삶의 의미와 목표를 더욱 확실하게 하면서 주위에 선한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한다. 책으로 인해 삶의 희망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버는 것만 빼면 말이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벅찬 희망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게 한다. 흐르는 세월과 관계없이, 늘어나는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에 상관없이, 침침해지는 눈과 내려앉는 잇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책을 만나는 순간은 늘 새롭고 설레며 희망이 부푸는 시간이다.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는 사람 간의 사이에서는 아무리 친밀해도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책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 나와 책 사이에는 좁은 틈도 없어 보인다. 이처럼 친밀한 관계가 또 있을까? 지구 위에 홀로 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선택한 결과에 만족한다. 지금 다시 그 당시로 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하고 싶다. 인공지능과 동영상의 전성시대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인공지능에 맡기면 훨씬 매끈하고 설득력 있는 글이 나올 수 있는 시대다. '인간적인, 더 인간적인' 글을 읽고 쓰기 위해 오늘을 산다.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내일을 준비한다. 희망을 품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잊었다. 독서를 하면서 세상 고통을 견디고 즐거움을 누렸다. 나에게 치유와 몰입을 선사한 책이다. 이제는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인생의 반려자로 선택한 책 때문에 살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문제가 앞을 가로막는다. 책을 더 제대로 읽고 글도 더욱 잘 써야 한다. 책과 글과 강연으로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희망과 동시에 걱정이 앞서는 양가적 감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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