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독서만이 줄 수 있는 몰입과 치유와 사고력 성장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독서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정신적 유희를 즐기며 성숙한 자아를 만들고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성찰할 수 있게 하고, 모든 공부의 기본이며 시작점이자 과정이며 끝이기에 그 어떤 분야의 공부도 가능하게 한다. 추론과 상상에 의한 창의력 제고는 지금 시대가 원하는 인재가 갖추어야 할 그 무엇보다 훌륭한 삶의 기술로 발전할 수 있어 더욱 관심이나 주목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책을 읽는 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청소년들조차 책 읽기를 멀리하고, 상급학교 입시에서도 독서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동영상과 인공지능은 필요한 책을 요약해서 사람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추론과 비판적 사고는 어떤 도구를 이용해 기를 수 있을까. 사고력은 또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정신적인 또는 마음의 병은 어떻게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혼자가 되었을 때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에서 몰입하거나 빠질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에서 책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책을 읽으면 절망에서 허우적대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믿었다. 책을 읽어보고 그래도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그때 가서 세상을 버려도 되리라 생각했다. 온갖 나쁜 생각들이 정수리 위에 꽈리를 틀고 앉아 있을 때 책 속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어서 독서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다. 비틀거리는 나 자신을 기댈 무언가가 필요했다. 결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끝까지 읽을 때만큼은 나 자신은 물론 세상도 잊을 수 있었다. 모든 잡념이나 고민거리가 책과 함께한 시간에는 자취를 감췄다. 삶을 압박하며 짓누르던 걱정거리와 스트레스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책에 몰입만 했을 뿐 그 어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사로잡던 문제로부터 일정한 거리가 생겼다. 그 문제의 실체가 보이기도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지만 느끼지 못했다. 절대적인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면서 시간의 값을 치르지는 않았다. 비싼 물건을 구입했지만 돈은 지불하지 않은 경우와 같았다. 결국 상대적일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의 비밀을 들여다본 느낌까지 들었다. 어린이가 놀이에 몰입하듯 책에 빠지고 말았다.


책을 잡고 있으면 저절로 몰입의 시간이 찾아왔다. 몰입의 강도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걱정거리와 같은 마음의 찜찜함은 쉽게 사라졌다. "한 시간 정도만 책을 읽어도 마음의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라고 말했던 몽테스키외가 생각났다. 몰입은 곧 정신의 치유로 전환되었다. 육체의 질병은 진료를 통해 약이나 시술 및 수술로 치료될 수 있지만, 정신적 치유는 몰입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를 갉아먹고 몸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몰입이 아닌 뇌를 편안하게 하고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는 몰입을 경험했다. 명상이나 종교적인 행위에도 몰입의 효과는 드러난다. 한 번 몰입에 들었다 해도 순간순간 몰입에서 빠져나올 때가 있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책 읽는 시간이 길어지면 몰입의 시간도 늘어난다. 몰입을 정신적 의료 행위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독서로 인한 정신적 치유는 분명하다. 내가 그렇게 치유를 받았으니까.


몰입의 강도와 지속 여부는 읽고 있는 책의 내용에 달려 있다. 자신의 관심사나 취향에 맞고 감당할 수 있는 분량과 독해 수준을 바탕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거나 빠져들게 하여 뒷장을 얼른 보고 싶어 조바심마저 들게 하는 책, 한꺼번에 주욱 읽어 내려가기 아까울 정도로 내용이 좋아 문장을 곱씹을 정도로 반한 책, 결론을 알거나 짐작하면서도 얼른 확인하는 순간의 쾌감을 기다리게 하는 책, 알고 싶었던 지식의 상찬이 차려져 벅찬 감격으로 글을 읽게 하는 책, 읽는 즉시 지성이라는 지평의 한계가 확장되는 게 단번에 느껴지는 책, 감정을 극한으로 치닫게 하여 오감에 전율이 들게 하는 책을 읽을 때에 몰입은 깊어진다. 그러나, 읽고 싶은 모든 책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는 꾸역꾸역 읽어내야 할 책도 있다. 왜 그런 책을 읽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내 수준에 맞지 않아도 지식이나 지혜를 얻기 위해 의무감으로라도 읽어야 할 좋은 책도 존재한다. 그럴 때는 물입의 순간에 젖어들기가 쉽지는 않다. 모든 책을 몰입의 상태에서 읽을 수는 없다. 치유 역시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몰입과 치유와 사고력 증대로 가는 중간 단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 장 한 장이 정말 어렵게 넘어가는 책이 있다. 몰입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의 시간이다. 어떻게든 끝까지 읽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발현이 없으면 완독 할 수 없는 경우다. 읽은 것 자체에 큰 의미가 부여되는 책은 얼마든지 몰입의 기쁨이 적다 해도 마지막까지 읽어낼 수 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라이프니츠의 '변신론' 같은 책이 그랬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불만은 지속되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찾아오는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책의 완독은 '독서가'로서의 자부심을 넘어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치열한 전투에 여러 번 참여한 적이 있는 군인의 정체성은 그렇지 않은 군인의 정체성과 많이 다를 것이다. 주로 '고전'에 해당하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독서가로서의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몰입과 인내의 시간이 반복되는 과정이 어쩌면 책 읽기의 전부인지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얻는 선물이 치유이고 사고력 증진이다. 한 권의 책을 몰입으로만 읽을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의 몰입이라도 경험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단 몇십 분이라도 몰입이 없었던 책은 아마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몰입 경험은 정신과 몸을 건강하게 하느냐, 상하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분류할 수 있다. 독서가 주는 몰입은 분명히 정신적 유희는 물론 치유까지 가능하게 하고 사고력을 높여준다. 독서의 가치이기도 하다.


독서의 가치는 책 읽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은 후의 독후 활동에 따라 가치의 정도는 달라진다. 독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내가 사용한 방법은 '초서'와 '질서'였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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