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독서가'라는 말이 있는지, 얼마나 유용한 말인지, 그런 신분으로 먹고살 수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책만 읽고 사는 삶으로 전향한 지 몇 년이 지나자 학교와 학원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읽는 습관으로 인문과 자연과학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은 덕분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입시에 필요한 독서 관련 전문가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학교나 학원은 학생들에게 특목고와 전국 단위 자사고는 물론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곳의 입시 전형에서 독서 관련한 면접 질문을 대비해 줄 필요가 절실했다. 학교 교사나 학원 강사들은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탓에 독서와 관련한 전반적인 입시 대비는 불가능한 게 사실이었다. 학교나 학원에 불려 다니며 강연을 하다 보니 가끔은 일반인이 모인 독서 모임에도 초청되어 강연을 했고, 블로그나 SNS를 통해 요청하는 독서 관련 개인 면담도 응했다.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과서에 나오는 책을 더 찾아 읽게 됐고, 시사성이 있는 교양과 상식에도 전문성이 있어야 했기에 대형서점이나 언론에서 공개하는 베스트셀러 혹은 '올해의 책' 같은 목록을 검토하여 골라 읽곤 했다. 유명 강사가 아니므로 강연료는 저렴했으나 기초 생활비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혼자 사는 생활이니 기초 생활비라 해야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마저도 없어 쩔쩔매던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강사의 유명세나 스펙에 비해 강연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이대로 계속 강연을 하면 어느 정도 인지도도 얻어 독서계에서 혹시 내가 유명 인사라도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헛된(?) 꿈에 부풀기도 했다. 다가올 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코로나19의 시작은 미미했다. 유행성 감기 정도로 여기면서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모임이 차츰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공식적인 모임 규제가 발표되자, 하루아침에 강연 요청이 끊겼다. 어쩌다 한 번 하는 강연도 마스크를 쓰고 소수만 모이게 하여 진행했다. 학교나 학원 등에서는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우고 방안을 마련하여 최소한의 일정을 소화해 나갈 수 있었지만, 일개 무명의 강연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고 다시 생활비 걱정의 시간이 찾아왔다. 독서 관련한 한 사설 업체에서 프리랜서 고문 역할 비슷한 임무가 주어져 기초 생활비의 일부를 받으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책을 선택하면서 돈을 초월한 것처럼 호기를 부렸지만 당장 현실 생활에 위기가 반복되자 뼈저린 후회를 하다가, 강연을 통해 어느 정도 생활비가 해결되자 내 선택이 옳았음을 뿌듯해하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 앞날이 캄캄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소신을 지킬 것인가, 적당한 타협을 할 것인가. 여기서의 타협은 독서 관련한 교육 회사에 취직을 하거나 독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을 하는 방안이다. 사실 교육 회사에의 취직은 나이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고, 편의점 같은 곳의 아르바이트 정도는 가능한 상황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최소 하루에 8시간은 해야 한다. 평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하루에 최소 10시간은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하루에 겨우 서너 시간밖에는 책과 함께하지 못한다. 고민이 길어진다. 모래를 씹는 것 같은 숙고의 시간이다.
책을 선택한 이듬해에 개인 사업자(면세사업자)를 냈다. '인문학 연구소'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 소신을 지킨다! 1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대출을 받았다. 다시 책에 몰두했다. 코로나19의 끝이 보였다. 뚝 끊어진 강연 요청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입시 정책의 변화였다. 정성평가에서 정량평가의 확대, 독서 관련 평가는 정성평가이기에 독서는 이제 대학 입시에서도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공정성'이 사회 전반의 화두가 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 같은 객관식 문제 풀이 형태만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인식을 파고들었다. 사실, 나에게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상황을 연출한 공정성 문제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가볍게 압도했다. '조국 사태'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구나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객관식 문제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흔들었다.
힘든 생활고에도 선택한 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는 책 안에서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진정한 자유를 누렸다. 꺾인 희망을 당장 세울 수는 없지만 나만의 자유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결심한다. 책을 선택하면서 고려했던 문제들이 다시 불거진 것에 불과하다는 정도로 나 자신을 위로한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배움의 결과는 그렇게 빈약하지 않을 것이다. 보이는 길을 따라가자. 의지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코로나19를 뒤로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