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어려운 책은 이렇게 읽었다.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바둑으로 말하자면 꼭 필요한 '정석' 같은 말로 들린다. 대충 읽어서 핵심이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책을 읽은 결과가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이나 사상 혹은 깊이 있는 문학은 물론 자연과학 관련 책 중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이 많다. 어떤 책은 읽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읽기를 포기해야만 그나마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한 챕터는커녕 단 한 쪽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도 수두룩하다. 고전이나 명저로 불리는 책을 내 독해 수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읽기 어렵더라도 꼭 읽고 싶거나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을 필독서로 정한 후, 해당 책을 쉽게 해설한 책을 먼저 읽었다. 입문서나 평론서라 불리는 책을 한 권만 읽어서 부족하면 두세 권까지 읽었다. 그런 후에도 해당 책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는 과감하게 다시 한번 더 읽는다는 생각으로 '수박 겉핥기' 비슷하게 읽었다. 세상에 못 읽을 책은 없다는 심정으로.


지나온 독서 여정을 살펴보면 심각한 고비가 몇 번 있었다. 항상 비슷한 독해 수준의 책만을 읽을 수는 없었기에 조금씩 난도를 높여 도전했고, 그러다 보니 철학, 사상, 문학, 자연과학 중 난도 높은 책 읽기에서 독서 의지를 꺾기에 충분한 상황이 발생했다. 부족한 이해로 인해 진도 나가는 것이 버거워 책 읽는 시간은 고통이었고 완독은커녕 중간에 책 읽기를 포기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관련 분야의 쉬운 책을 읽은 다음에 재도전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어도 쉽지 않았다.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책의 읽기를 포기만 한다면 언제 그 좋은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좋은 책은 많기만 하고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기에 조급한 마음이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의 최선의 선택은 '대충'이라도 읽어서 끝을 보고야 마는 것이었다. 거칠게 읽어도 완독의 결실을 맺는다면 같은 분야의 다른 책을 읽어서 이해의 정도를 높이자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무작정 손에 잡히는 대로 혹은 관심 가는 대로 책을 읽던 습관이 중고등학생 혹은 성인들에게 독서와 관련한 상담 등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생기면서 독서에 대한 계획표를 작성했다. 다양한 분야의 고전이나 명저에 대한 '독서 로드맵'을 만들면서 책 읽기는 일정한 패턴대로 움직이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하는 고난도의 책 읽기 정복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분명한 목적은 난도에 대한 두려움이나 읽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에 맞서도록 했다.


어려운 책을 쉽게 소개하는 입문서나 또는 서평이나 해설서 같은 책을 공략했다. 몇 권의 독서로 '예열'을 한 후였지만 어려운 책은 자신의 영역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부족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읽은 책과 비슷한 영역의 책으로 다시 도전했다. 도전할 때마다 이해의 수준은 분명히 달라졌다. 반복적인 용어나 사건들과 부딪히다 보니, 예전에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박 겉핥기' 식의 독서라도 반복된다면 수박 속까지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입문서를 읽어 이해를 보충해도 어려워서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은 과감히 뛰어넘어 완독으로 향했다. 어떤 책은 앞이나 뒤의 옮긴이나 감수자 및 추천인의 '해제' 혹은 '해설'이 붙어 있어서 해당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본격적인 고난도 독서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달걀로 바위 치기를 하다가 그 바위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설픈 이해의 반복으로 어려운 철학이나 자연과학 책들이 하나씩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 고고하게 보이던 최상급 난도의 책 봉우리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고난도의 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수박 겉핥기' 독서라 해서 아무렇게나 읽어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읽는 중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만 넘어가라는 의미다. 단어와 문장을 대충 띄엄띄엄 읽어서는 안 된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수단이 목적을 방해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곤란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이 존재할 뿐이다.


현재의 독해 수준으로 최선을 다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독해 능력으로 말미암아 낙심이 되거나 중도 포기의 유혹에 빠진다면, 자신의 독해 수준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수박 겉핥기로 읽은 책이라 할지라도 같은 분야의 여러 종류의 책을 읽다 보면 마침내 달콤한 빨간 속을 맛볼 날이 다가온다. '수박 겉핥기'라는 말보다는 '적당한 이해' 혹은 '가벼운 이해' 등의 표현이 더 좋겠다. 어떤 책의 독해 이해 수준 정도가 60~70%만 되더라도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목적 달성에 대한 의지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책도 정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독서 여정은 이어졌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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