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휴대폰과의 적절한 타협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시간과 주의를 빼앗아가는 스마트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 어떡하든 덜 쓰려고 노력하는 걸로 타협점을 찾아햐 했다. 이로움과 해로움의 경계에 섰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증명할 수 없는 시대다. 인터넷이 모바일에 탑재된 이후와 그 이전을 비교하면 독서량이나 책 읽는 시간에 엄청난 변화가 있다. 책을 읽다가 어려운 단어나 용어가 나오면 '전자사전'을 이용해 해결한 때가 불과 십여 년 전이었다. 전자사전은 필요한 내용만 검토하고 이내 책으로 돌아오는데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바일 즉 휴대폰을 사용한 후에는 바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뉴스를 비롯해 여러 흥미로운 내용을 클릭하여 들어가고 다양한 소셜 미디어까지 섭렵한다. 자신의 몸을 기둥에 묶게 하여 '세이렌'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오뒷세우스처럼 뭔가의 대책이 절실하다. 이대로 스마트폰에 붙들린 채 독서가로 살 수는 없는 까닭이다.


휴대폰의 효용성은 지금 시대에 거의 절대적인 수준으로 올라가 있다. 휴대폰 하나면 세상 모든 뉴스와 지식을 볼 수 있고 금융 거래와 쇼핑을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더 큰 충격에 빠질 정도다. 모든 소중한 정보를 잃어버리는 동시에 대처할 방법까지 잃어버리니, 손과 발이 잘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책을 읽을 때에도 휴대폰은 사실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단어나 용어 검색은 물론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여러 가지 배경지식 같은 정보를 얻으면 책 읽기가 훨씬 수월해지면서 술술 읽을 수 있게 된다.


문제는 휴대폰 사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책에 집중했던 정신이 산만하게 흩어진다는 데 있다. 휴대폰 사용 시간이 독서 시간을 잡아먹어 독서량이 줄어드는 정도의 폐해에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책에 몰입하는 시간을 방해하여 몰입 시간이 줄어들거나 아예 몰입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스마트폰은 시간과 정신을 잡아먹는 에리식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인물)이다.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는 늪과 같다. 탁월한 독서가라 하더라도 책을 읽는 순간마다 책에 몰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도 지루한 대목이 있을 수도 있고 관심이 덜 가는 부분은 그를 문장에 몰입하기 어렵게 한다. 몰입은 책 읽기 시작할 때부터 찾아오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다른 일을 하다가 글 읽기로 돌아오면 잠시 동안의 '예열' 시간이 필요하다. 잠깐 동안의 휴대폰 사용이라 하더라도 그 시간이 바로 몰입으로 들어가는 단계를 방해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시동을 켠 차가 갑자기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릴 수 없듯이 몰입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전 시간이 필요한데 휴대폰 사용이 그 시간을 한없이 늘린다. 책을 계속 읽고 있어도 몰입으로 들어설 만하면 휴대폰을 만지게 된다면 아예 몰입으로 진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휴대폰 사용 시간만큼의 손해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의미다.


독서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게 해 주지만 그에 그치지 않는다. 생각하는 시간, 깊이 숙고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깊은 생각은 여러 가지 상상과 추론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질문을 비롯한 비판적 사고와 열린 사고까지 다다르게 한다. 인공지능이 웬만한 것을 다 처리해 주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것이 독서만큼 사고력을 키우게 할 수 있을까? 깊은 사고는 책만 읽는다고 할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여행이나 대화나 토론 같은 방법으로도 가능하지만 글에, 문장에, 논리에, 스토리에 푹 빠질 때에 우리는 사고의 세계로 침잠한다. 몰입의 세계로 말이다.


놀이에 빠진 아이들은 놀이 자체에 몰입하고, 몰입은 그 자체로 정신적 유희를 선사한다. 몰입은 인간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유도한다고 배웠다. 긍정적인 몰입과 더불어 도박 같은 부정적인 몰입이 있다면 독서는 단연 긍정적이며 창의적인 몰입이다. 사고의 깊은 지점에서 놀지 못하고 나를 잊어버리는 몰입에 이르지 못하는 책 읽기는 독서의 진정한 재미와 가치를 알지 못하게 한다. 나를 잊어버리고 무아지경에 드는 정신적 유희 또는 쾌락으로 삶의 주름은 어느덧 펴지며 삶의 얼룩이 지워지는 상황('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북로망스)을 기대한다.


휴대폰에 빠지다 보면 또 다른 폐해가 닥치는 데 바로 눈의 피로다. 안 그래도 저녁이나 밤이 되면 눈이 침침해져서 책 읽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휴대폰까지 눈의 혹사에 가담한다면 독서의 질과 양은 떨어질 게 분명하다. 10여 년 전에 한 노(老) 교수가 주도하는 소규모 스터디 모임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80세가 넘은 노교수는 두 개의 안경을 번갈아 끼면서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내었다. '아, 나도 저분처럼 늙어야겠다.' 평생 공부에 나이는 장애물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계기가 되었다. 글 읽는 눈을 지키기 위해서도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휴대폰 사용 시간을 줄이기 전략에 돌입했다. 화면 색상이나 밝기 조정부터 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흑백으로 바꾸고 밝기는 최대한 어둡게 설정했다. 각종 알림 설정은 최소화하고 무음으로 하여 확인 횟수를 줄였다. 앱의 재배치를 통해 화면에서 보이는 앱의 개수를 줄였다. '휴대폰 사용 덜하기'라는 문구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다양한 방법이 나온다. 유용해 보이는 방법을 따라 하지만, 무엇보다 하루 중 휴대폰 사용을 줄이겠다는 단단함 마음을 먹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휴대폰에서 떨어져 자유로운 나를 상상한다.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더욱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휴대폰은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독서와 글쓰기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눈을 뜨면 글을 찾고 읽으면서 글이 나를 찾아와 자연스럽게 쓰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글에 대한 감각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몸을 만들고 유지한다.


'휴대폰으로부터의 자유'를 실현시키는 중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또 다른 적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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