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동영상 vs. 동영상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지금의 내 블로그에는 약 2천여 권의 서평이 담겨 있다. 책을 선택하자마자 서평을 쓰지는 않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뿌듯한 느낌과 함께 어딘가에 짧은 독후감 혹은 감상문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의지가 점점 강해졌다. 블로그에 짧은 한두 줄에서 대여섯 줄의 감상문을 썼다. '벽돌책'을 읽고 난 후에도 그렇게 짧은 독후감을 올리려니 뭔가 허전했고 아쉬웠다. 본격적인 서평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서평을 쓰려면 핵심 내용은 물론 주제와 관련한 여러 가지 요약된 내용이 필요하다. 독서 일지를 만들어 책을 읽으면서 중요 문장의 발췌와 더불어 요약한 내용을 쓰기 시작했다. 학문 분야별로 독서 일지가 필요했고 블로그 역시 독서 일지 분야를 바탕으로 비슷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만의 블로그 서평 시대를 열었다.


500권쯤의 서평을 쓰니 구독자가 제법 모였고 1,000권을 넘어가니 어느덧 나는 독서가 또는 서평가가 되어 있었다. 학교나 학원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독서모임에서도 나를 불렀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기 전의 일이다. 대면보다는 비대면이라는 '뉴노멀' 상황에서 밴드를 만들어 회원들과 소통했다. 독서와 관련한 개인 혹은 소규모 모임에서의 강연은 나름대로 반응이 좋았지만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줌 같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 비대면 강연을 시작했지만 대면 강연에 비해 효과는 떨어지고 힘만 들어서 한두 번 하다가 바로 포기했다. 블로그 구독자나 밴드 회원들이 유튜브를 해보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반복했다. 독서가로서 과도한 동영상 시청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인데 유튜브를 해야 하다니! 고민은 길어졌다. 그렇게 1~2년이 흐르고 결국 시대의 흐름에 굴복한 채 유튜브 채널('교짜'-교양의 골짜기)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휴대폰이 제1의 적이라면 유튜브 동영상은 제2의 적이다. 휴대폰으로 주로 읽은 책 소개인 독서 관련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면서 다른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곤 했다. 유튜브 제작에 관한 정보 영상은 큰 도움이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는 경우도 많았지만, 유튜브 세상에는 넋을 놓고 몰입하게 하는 수없이 많은 재미있는 동영상이 널려 있었다. 독서의 가치는 물론 독서 시간까지 빼앗는 동영상의 세계에 푹 빠진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동영상을 안 만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알고리즘의 유혹의 늪에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유튜브채널을 계속 운영할 것이냐, 아니면 아예 접을 것이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동안 주위의 조언처럼 기대했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구독자 수는 물론 시청 시간도 미미했다. 시간이 지나면 구독자 수가 늘고 시청 시간이 늘어 강연 수입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간은 물론 주의집중력까지 빼앗겨가며 채널을 운영할 이유가 없었다. 휴대폰 하나가 제작 도구의 전부인 데다가 영상 제작에 필요한 기술 부족으로 뛰어난 영상은커녕 민망한 수준의 영상의 질임을 감안하더라도, 남들이 잘 보지도 않는 채널을 위해 적지 않게 들어가는 제작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고, 영악한 알고리즘의 노예가 될 수는 없었다. 당장 그만두자!


그런데 지금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단 한 가지의 특별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중의 '초서와 질서'는 내가 '독서 중' 활동의 기본 중 기본이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독서 일지에 발췌와 요약한 내용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서평을 온전한 문장으로 써서 올린다. 영상을 녹화할 때는 블로그의 서평을 읽는 수준이며 앞뒤로 몇 마디 첨가한다. 즉 영상 녹화는 대부분 블로그의 서평을 소리 내어 낭독하는 과정인데, 서평을 다시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책의 핵심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학습 효과가 나타났다! 영상 제작의 이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동 자막을 깔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내용을 검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영상 제작으로 인하여 읽은 책 내용을 복습하며 자연스러운 공부로 이어지는 효과를 보았다. 유튜브 채널 운영을 지속하기로 했다. 남이 보든 안 보든 내 공부가 우선이다. 십수 년 전에서 최근까지 읽었던 책의 감동이 영상 제작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되살아나고, 핵심 내용을 곱씹는 과정과 더불어 새로운 사색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제작해서 검토하는 차원으로 보는 동영상과, 유튜브 알고리즘의 유혹에 빠져 시청하게 되는 동영상 간의 선택적 시청이 반복되었지만 내 채널 제작 및 운영은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최대한 다른 영상은 보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으면서 말이다. 제발, 내 의지가 알고리즘의 유혹을 뿌리치길 간절히 바란다. 내 채널이 좀 더 사람들에게 노출된다면 더욱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블로그의 글쓰기로 만든 '서평 아카이브'처럼 유튜브 채널에 수많은 서평 동영상을 올려 하나의 '동영상 아카이브'를 만든다면 유튜브 시청자들에게 책과 독서의 가치에 대해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동영상 대 동영상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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