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내가 유도를 하는 이유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30여 년 전이었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지하 1층에 위치한 유도관에 불쑥 들어갔다. 두 명의 관장과 한 명의 사범이 반겼다. 서른 살을 막 넘은 나이에 유도관을 찾은 나에게 그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며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칭찬도 덧붙였다. 그렇게 나는 유도에 입문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유도 선수들이 유독 부러웠다. 다른 종목에서도 금메달이 나왔지만 유도 선수들의 패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 친구 한 분이 아들에게 권투를 시켜보라고 아버지에게 권했다. 내 체형이나 눈빛이 권투를 하면 잘할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아버지는 말도 안 된다며 친구분의 말을 무시했고, 나 역시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내가 권투는 무슨 권투냐 하는 생각으로 곧 그분의 말을 잊었다. 유도를 시작했지만 그렇게 오래 하지는 못하고, 2~3년을 했지만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처음 6개월은 열심히 하다가 나중은 가끔씩 유도복을 입고 땀을 흘리는 정도였다. 유도의 참맛을 살짝 맛본 셈이다.


축구나 농구 등 운동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뛰어나게 잘한 건 아니었다. 독자로 자란 탓인지는 몰라도 청소년기의 나는 유난히 매사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가장 활발하게 분출되는 성에 대한 관심이 억압되고 죄의식으로 물들면서 세상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학교 성적이나 교우 관계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마음속에는 항상 불덩어리 같은 화가 잠재되어 있었다. 외동 특유의 기질은 사람들에게 매사에 내가 최고라는 칭찬받아야만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어떤 무리에서든 나는 돋보이고 싶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외모든 최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아실현의 욕망은 실현되지 못한 채 가슴속에 응어리 형태로 밀도는 높아지고 뜨거워질 뿐이었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후 직장 생활을 이어가면서 유도에 입문한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화석처럼 굳어져 있지만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고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나에게 포기란 곧 죽음과 동의어다. 내 의식이 살아 있는 한 최고가 되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을 텐데, 어쩌면 햄릿 같은 마음으로 돈키호테가 품은 망상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60을 넘어 다시 유도관을 찾았다. 책에 파묻힌 지 십수 년이 지나자 조금씩 독서를 방해할 정도로 몸 건강에 이상신호가 울린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으려면 버틸 수 있는 체력 유지는 기본이다. 허리부터 어깨, 목덜미, 눈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책 읽기에 문제가 생긴다. 산책과 달리기, 등산 등 건강을 위해서는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았지만 뭔가 부족했다. 30여 년 전의 그때가 떠올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건강은 물론 재미까지 다 잡았던 유도를 했던 시절이다. 유도를 하기에는 고령이기에 퇴짜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래도 입회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다행히 30여 년 전에 유도를 2~3년간 했다는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젊은 관장은 나의 입회를 허락했다. 다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유연한 몸이어야만 다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몸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한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처음 듣는 이야기'를 쓴 우치다 다쓰루는 합기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는 본문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도장(道場)이라는 말은 원래 종교 용어입니다. 수행을 하는 곳이죠. 무도 수업의 목적은 근골을 강하게 하거나 움직임을 기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양도체(良導體)'로 만드는 것입니다. 양도체란 경직되고 막히고 느슨한 곳이 없이 갖추어진 몸을 뜻합니다. 그 신체를 통해서 거대한 자연의 힘 에너지가 발동합니다. 신체는 '힘의 심연'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목입니다. 아집을 지우고 투명한 심신을 만드는 일, 그것이 바로 무도 수업입니다. 그 점에서는 종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유도는 상대와의 대결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우치다 다쓰루의 말처럼, 내가 하는 유도는 내 몸과 정신을 단련하기 위해서다. 몸 안에서 어떤 에너지 곧 기운(氣)이 자유롭게 흐르기를 원한다. 몸에 혈액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듯 기운도 몸 전체를 자유롭게 흐르면서 정신의 활동을 돕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인간의 조상인 호미닌은 몸을 움직여 사냥하고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았다. 인간의 몸은 머리 또는 정신의 보조물이 아니다. 정신과 몸은 협동체로 하나가 되어 생명을 유지한다.


종교의식을 치르듯 유도장으로 가 몸을 단련한다. 잔부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큰 부상만은 피하려고 유도에서 가르치는 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기에 매진한다. 정신과 몸의 활력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유도를 통해 몸의 다양한 움직임을 연습하고 훈련한다. 건강한 몸과 정신을 언제까지나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 거릴 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유도를 하는 이유다.

수, 일 연재
이전 16화16. 동영상 vs.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