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소음과 책 읽기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소음이란 대개 듣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짜증을 부를 수 있는 소리를 말하지만, 네이버 지식백과에 보니 소음의 유형에는 음높이를 유지하는 '칼라소음(color noise)'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white noise)'으로 나뉘며, 백색소음은 우리 주변의 자연생활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리라고 한다. 비 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백색소음이다. 항상 들어왔던 자연음이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는다. 방음이 완벽하게 된 장소란 찾기 어려우며 대개 우리는 다양한 소음이 들려오는 곳에서 책을 읽는다. 나에게 책 읽기 환경에 맞는 최적의 장소란 어떤 곳일까? 이제껏 많은 곳을 다녀보았지만 도서관보다 더 나은 장소는 찾지 못했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책상이나 의자 등 여러 사물과 부딪히거나 끌리는 소리 등은 조금은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 가라앉는다. 학생들 시험 기간이 아니면 도서관은 대체로 조용하거나 때로는 고요하기까지 하다. 책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떤 작업을 거쳐 우리에게 왔는지 알게 하는 풀 냄새나 잉크 냄새가 강한 새책 냄새에 더해, 오래된 책의 퀴퀴하고 꿉꿉한 냄새가 공중에서 서로 엉킨 도서관 특유의 냄새는 자분자분한 소음과 함께 도서관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소음이 적고 정적인 분위기여서 독서에 몰입하기 좋은 도서관의 열람실이나 자료실 탁자보다는 카페나 커피숍 같은 곳에서 공부나 책 읽기가 더 잘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카페에서의 소음은 자연음은 아니더라도 일정한 높이로 반복되기 때문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고, 어느 정도의 소음은 주의를 산만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사실 내 방과 함께 두 환경을 다 좋아한다. 적막한 도서관도 좋고 활기찬 카페도 좋다.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열람실에서 커피 같은 음료 마시는 게 금지되어 도서관 이용 시간이 줄었고, 그 대신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 뜨거웠다가 식어가는 커피와 함께 책을 읽을 때는 입으로는 커피를 마시고 눈으로는 글을 마시는 셈이다.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이어폰을 끼거나 헤드폰을 쓰는 젊은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집중하고 몰입하는데 도움이 될까? '익스텐드 마인드'(애니 머피 폴, 이정미 옮김, RHK, 2022년 10월 출간)라는 책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헤드폰을 쓰면 어떨까? 헤드폰을 쓰면 문제를 우리 귀에 직접 집어넣는 셈이 된다. 우연히 듣게 된 대화와 마찬가지로 가사가 있는 음악은 읽기와 쓰기 같은 언어를 수반하는 활동과 경쟁해 정신적 자원을 차지하려고 한다. 음악은 어렵거나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에 해를 입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도 마찬가지다. 단지 노래 가사 때문만이 아니다. 반복되는 리듬과 악절을 가진 음악은 우리의 관심을 계속 붙들고 놓아주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연구에 따르면, 높은 강도, 빠른 템포, 잦은 변주가 특징인 음악은 느긋하고 절제된 음악보다 더 우리의 집중을 방해한다.(한 연구자는 힙합과 같은 고강도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혀 '주의력 배수 효과'라고 불렀다.) 음악은 성인들의 인지 기능을 방해하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의 인지 기능을 방해한다. 아마도 가장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지적 작업을 수행했을 때의 성과가 싫어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 작업을 수행했을 때의 성과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소음이 사람에게 불규칙하게 들리거나, 혹은 어떤 '정보'로 들리면 주의 집중은 방해를 받는다. 그런 소음은 백색소음이 아니다. 넓은 공간에서 일정한 정도의 소음이 지속되면 백색소음과 비슷한 작용을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바로 옆에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들린다면 집중하기 어렵다.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하게 들리지 않으면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사람의 목소리가 웅성웅성 낮게 들린다면 공부와 독서에 집중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온갖 망상이나 잡생각이 떠올라 집중하기 어렵다면 오히려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학생들은 대개 그런 상황을 빗대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책은 읽어야 하는데 유난히 집중하기 어렵다면, 그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 귀에 음악을 꽂는다. 나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쓰고 음악 듣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게 가장 좋다. 칸막이가 있는 좌석에서 독서대를 사용하여 올바른 자세로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다. 다음으로 선호하는 장소는 아무도 없는 집안의 내 방이고, 그다음이 넓은 공간의 카페다. 도서관 열람실이 가장 좋은 이유는 조용하기도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뭔가를 열심히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있다는 것 자체에 자극을 받음과 동시에 나태해질 수 있는 정신자세를 다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타인의 몰입이 나를 자극하고 그에 동참하게 한다.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것도 멋진 일이다. 여행 자체보다 여행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여행을 선호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곳의 경치와 주변 환경 및 사람들의 일상을 감상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그 상황에서 책까지 읽는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우리나라의 산이나 바닷가 및 강가에서 하는 독서만큼이나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외국, 특히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의 독서는 황홀하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카페 같은 시끄러운 곳에서 책을 읽어도 백색소음의 환경과 비슷하여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가 있다. '가난한' 내 영어 리스닝 실력을 감안하면 영어권 나라도 괜찮지만, 약간이라도 무슨 말인지 들리면 집중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의 독서 환경이 더 좋다.


독서 환경에서의 소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책 읽기에서 눈은 항상 글을 보아야 하지만 귀는 열려 있다. 조명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좋고 나쁜 책 읽기의 환경은 바로 소음이 결정한다. 독서 습관을 위해서는 책 읽는 환경에 대한 세밀한 조건이 중요하다. 장시간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활동인 까닭이다. 나에게 맞는, 책 읽기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음을 찾아 독서가의 방랑은 계속된다.

수, 일 연재
이전 17화17. 내가 유도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