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발전' 아닌 '변화'를 추구한다.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by 나승철

'자기 계발서'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한 19세기부터 그런 책들은 고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얄팍하거나 단순한 요약과 발췌 수준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정신의 바닥까지 고민한 흔적이 부족하다. 삶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강박'에 이끌리어 너무 무리한 답이 적힌 답안지를 제시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어떤 결정적인 갈등을 풀기 위해 뜬금없이 신을 기중기를 사용하여 무대로 올려 위기를 해결하는 '기계 장치로 내려온 신'을 의미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어느 순간에 '깨달음' 비슷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본문 내용에 큰 감동을 받아 무릎을 칠 정도로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며 불타오르는 듯한 감정에 휩싸인다. '득도'를 하는 경험은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런 상태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해에 나온 사무엘 스마일스의 '자조론'을 읽고 그의 대표작 몇 권을 더 읽으면서 나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불타는 가슴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보다 먼저 읽었던 노먼 빈센트 필이나 지그 지글러의 작품들을 무색하게 하는 독서 경험이었다.


하지만, 내 주변의 모든 갈등과 문제가 한 번에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단 '1'도 변하지 않은 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온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후로도 곤경에 처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기 계발서를 찾았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고, 가벼운 분량이어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읽을 만한 수준의 책들이 있다. 자기 계발서 탐닉은 플라톤의 저서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고전들과 사서삼경 같은 동양 고전을 읽으면서 멈출 수 있었다. 본격적인 철학과 사상서들을 접하자 자기 계발서의 허술한 구성과 논리가 빈 껍데기처럼 보였다. 인생의 문제와 의문을 풀어주는 동시에 청중들에게 진한 감동과 삶의 통찰을 선사한다며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강사들의 허접함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자기 자신도 실행하기 어려운 내용을 묶어 그럴듯한 퍼포먼스로 포장하여 인생론과 행복론 및 삶의 가치론을 펼치는 그들의 얄팍한 상술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19세기부터 나온 역대 자기 계발서들의 핵심을 적당히 요약하고 발췌하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는 내용을 현시대의 상황에 맞게 적당히 버무리면 훌륭한 강연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 책과 관련 강연은 인생이 겪는 여러 질문에 대해 정확한 해답이라는 것을 제시하는 까닭에 읽고 보는 사람들은 저자와 경연자의 주장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저자와 강연자 자신도 실천할 수 없는 대부분의 내용을. 얼마든지 실행 가능한 이론과 실천 방안이라고 주장하지만, 단순한 사변적 내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천하기 힘들고, 왜 그렇게 실천이 어려운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저자와 강연자 자신도 모른다. 수많은 성공사례의 공통점만을 발췌하여 정리한 '성공 공식'은 너무나도 훌륭한 이론이다. 다만, 그렇게 완벽한 성공 공식을 따를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뛰어난 인재들은 대개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특출 나게 발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탁월함'은 타인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성질의 내용이 아니다. 간혹 출세한 사람이 직접 자신의 성공 사례를 털어놓는 자기 계발서도 있는데, 그런 책을 읽어보면 자신의 성공 이유를 엉뚱한 논리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자신도 자신이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소화가 안 될 때나 머리가 아플 때에는 소화제를 먹고 진통제를 먹어서 해결하기도 하는 것처럼, 어떤 막막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에는 가벼운 자기 계발서 읽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미증유의 상황에 처했거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야에 발을 옮길 때에도 자기 계발서가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나 탐구는 바람직하지 않다. 각자의 개인이 삶에서 닥치는 심각한 문제들은 대개 짧은 시간에 혹은 아주 오랜 시간에도 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인생의 짐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을 멀리서 보면서 대충 고민해서 만든 답을 던지는 책은 멀리해야 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나오는 첫 문장도 기억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인생의 고민과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쉽게 답을 주지 않는, 깊은 사색을 유도하는 독서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고학년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독자를 배려하여 쉽게 쓰인 자기 계발서에 대한 중독은 독해력이나 문해력 면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자존감, 힐링, 뇌 과학, 경영과 영업의 달인, 글쓰기 및 책 발간하기 등의 주제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채 독자들을 현혹하는 자기 계발서는 무조건 거른다.


자기 계발서 읽을 시간에 소설을 읽는다. 내 수준에 맞는 철학과 사상서에 도전한다. 인생의 의미와 행복 또는 방향을 제시하는 문학과 비문학 및 예술의 깊이에 빠진다. 오늘도 그런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 어제의 나보다 '변화'된 오늘과 내일을 맞기 위해서.


수, 일 연재
이전 22화22. 진정한 변화는 상상과 추론의 힘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