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문학의 쓸모'(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뮤진트리, 2025년 4월 출간)에는 자신의 삶이 문학 작품인 양, 한 편의 소설을 쓰듯이 인생을 살자고 권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자 한다. 내 인생 전체가 한 권의 소설처럼 말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이어도 좋다. 적어도 독자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수많은 역경과 환희는 물론 허무와 지루함으로 가득 찬 평생이다. 대하소설쯤은 안 돼도 장편 소설로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희망은 있다. 아직 내 소설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사실, 누구의 인생이나 한 편의 소설쯤은 된다. '소설' 같은 인생만 돋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소설에 다섯 가지 구성 요소(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가 있다면, 지금 나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위기일까, 아니면 절정일까, 그것도 아니면 결말로 가는 중일까. 발단이나 전개는 아닐 테니 그 셋 중 하나일지 모른다. 내 인생은 꺾이고 또 꺾여 마지막으로 가는 나이이지만 다섯 가지 구성 요소가 시간의 절대적 구분은 아니기에 이제부터 벌어지는 일에 따라 얼마든지 내 장편 소설의 구성은 달라질 것이다. 어느 구간에 위치하든 해피엔딩을 위해 달리면 된다.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면 또 어떤가. 지나온 세월이야 어쨌든 진실한 마지막을 맞이하면 될 일 아닌가. 책을 선택한 이유가 헤피엔딩이든 아니든 나름대로의 의미를 간직하면서도 멋진 결말을 위한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사람들은 부와 권력과 명예의 쟁취를 인생 목표로 삼으며 살지만 결과는 실패가 대부분이며, 그렇고 그런 삶을 살다가 세상과 이별하고 만다. 세상은 목표를 이룬 성공한 사람들만 주목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긴다. 그런 삶만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인생을 주제로 삼은 책은 '인간 승리'의 표본을 보여준다.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동기부여를 얻고 삶의 지혜를 탐구하여 모방하려 애를 쓴다.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 또 다른 성공에 다다를 뿐, 대부분 실패의 잔을 마시지만 모방은 인간의 본능이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이어진다. 세상의 주류는 이른바 성공하지 못한 '루저'들인데도 성공한 자만을 떠받든다. 우리 모두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스토너'(존 윌리엄스, 김승욱 옮김, RHK, 1965년 원작, 2020년 6월 출간)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교육자의 열정으로 한평생을 살았고 우정과 사랑도 강렬히 원했다. 그는 자신의 책을 펼쳐보면서 생의 마지막을 마감한다.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눕힌 스토너의 삶이다. 열정을 간직한 채 그 누구에게도 원망의 칼을 휘두르거나 표적으로 삼아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 스토너의 삶은 실패했는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끝까지 그 일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스토너는, 교육자 또는 사랑의 쟁취 등의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하지는 못했다. 계속 참기만 하다가 결국은 극적인 반전 없이 자신의 책을 손에 쥔 채 65세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읽는 내내 '뭔가 반전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지만 허무하게도 스토너에게 바라는 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라는 말이 한숨과 함께 입속에서 새어 나온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스토너와 비슷한 삶을 살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대체로 순응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말이다. 클라이맥스나 큰 반전 없는 소설을 읽기는 쉽지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스토너의 삶을 보면서 내 인생을 반추해 보기도 하며, 나도 스토너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책을 선택한 이후로 정체성이나 가치관 및 세계관의 다양한 변화를 마주한다. 당장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달라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책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생과 사회의 모습이 내 가슴속을 파고들며 정신과 태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런 변화가 나로 하여금 인생의 성공 지점을 향해 달리게 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단지, 책 좀 읽어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허구와 거짓말은 훤히 보인다.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변적 지식이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례도 가끔은 발견하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직도 책이 허락하지 않는 내밀한 속과 그 속을 둘러싼 벽은 존재한다. 지식과 지혜의 아성으로 가는 길에 놓인 다양한 장애물도 넘어가야 한다. 결국에는 미치지 못할 경지인 줄은 알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지치지 말고 멈추지 말자. 내게 주어진 운명의 끈을 붙잡고 방향과 속도는 내가 정한다. 치열하게 살아낼 것이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내 인생 자체가 소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놀라운 반전은 없지만 인생의 밑바닥을 어느 정도 경험했다고 자부하기에 올라갈 일만 남았지만, 그렇다고 보장된 건 아무것도 없다. 소설을 쓰고 있다는 자체가 위안이 된다. 책을 선택한 독서가의 인생을 다룬 소설이다. 재미도 보장할 수 없다. 시시한 이야기로 가득 찬 소설을 누가 보겠냐만은, 이런 인생도 있음을 보여주는 정도의 특별함은 간직한 소설이다.